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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결혼, 그 쓸쓸함에 대하여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오랜만에 찾아온 제자가 어렵게 주례를 부탁해 왔다. 말이 제자이지 사십대 대학원생이니 같이 늙어 가는 처지다. 하루간의 말미를 부탁한 나는 곰곰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의 결혼이 재혼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자신의 지인 중에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유연하다고 생각해 찾아온 것 같고, 그런 그에게 재혼을 축하해줄 의무감 같은 것을 문득 느꼈다. 수락 의사를 전해 들은 그는 무척 기뻐하는 눈치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나는 늘 가슴에 의문을 담고 있는 것이 있다. 결혼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대학에 있는 탓에 제자들로부터 적잖이 주례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일년에 단 한 번 주례를 받아들인다. 아무리 간절히 부탁해 와도 나는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채운 일년에 한 번 하는 것만이 나의 정성을 전할 수 있다는 나름의 계산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주례를 부탁하기 위해 결혼을 미루는 제자도 나타난다. 주례를 수락한 밤은 늘 허전하고 쓸쓸하다. 나는 얼마만큼의 행복감으로 가정을 꾸려 왔을까.



 결혼을 앞둔 시절, 나는 지금의 아내에게 “사랑이란 이름 아래 이뤄지는 그 모든 것을 보장하겠다”고 어디서 들은 구절로 뻥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 초기 아내가 내놓은 된장국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아뿔싸, 파와 마늘잎을 구별 못하는 아내는 마늘잎을 파로 알고 쓱쓱 썰어 넣어 된장국을 끓였던 것이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파와 달리 마늘잎은 익히면 질기다 못해 아예 씹혀지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내가 스스로 파·마늘잎을 구분하기까지는 반년이 더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반년 동안 나는 마늘 된장국 맛에 매료되었으며 남몰래 무척 너그러운 남편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외출을 서두르는 나에게 아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바지가 구겨져 흉하니 다려 주겠다고. 한 시간을 끙끙 다림질 끝에 내놓은 바지는 훌륭하다 못해 놀랍다. 처음 다려 보는 남자 바지, 아내는 바지 주름을 외려 구김살로 알고 땀을 뻘뻘 흘리며 판탈롱 바지처럼 좍 펴 놓았다. 결혼은 현실인가.



 어제 화장실 하수구가 막혀 우리 가족은 하루종일 쩔쩔매며 지냈다. 사람을 불러 고치면 되지만 아내는 완강했다. 아내의 결기에 눌린 식구들은 그나마 물이 찔끔 빠지는 다용도실을 들락거리며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다. 저녁에 돌아온 아내는 물을 펄펄 끓여 배수구에 붓기를 서너 차례 하더니 아예 철사를 구해다가 배수구 구멍에 집어 넣고 열심이다. 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식구들은 점점 더 눈치만 본다. 자기 전 배수구에 케미컬까지 부어 넣은 아내는 나에게 엄숙하게 명령했다. 혹여 뚫리지 않더라도 돈 들여 사람 부를 생각은 아예 말라며 내일 퇴근해 다시 시도해 보겠다고 선언한다. 오늘 새벽, 살짝 테스트해 보니 물이 잘도 빠진다. 갑자기 울컥 아내가 존경스럽다. 오 용감한 나의 아내여!



 가을이 깊어간다. 나는 주말 예정된 주례사를 메모하며 어두운 창밖을 보았다. 창 저편 네온사인 사이로 내가 결혼해 산 이십여 년의 세월이 어린다. 젊은 날, 호기롭게 던진 수많은 말들을 나는 얼마만큼 지켜왔고 얼마만큼 버리며 여기까지 온 것일까. 철없이 시작된 결혼생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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