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⑦ 전방위 예술가 문순우의 안성 고칠현삼(古七現三)





옛것과 새것이 모여 이야기 넘치는 공간이 되다



문순우는 자신의 집을 ‘커다란 원룸’이라고 했다. 작은 침실과 암실,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벽이 없다. 구역에 따라 주방, 미니바, 음악감상이나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다.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은 식탁이자 작업 공간이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비밀을 담고 있다. 그 비밀은 쉽사리 개념화할 수 없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느껴지지만 언어에는 담을 수 없는 것, 그걸 위해 태어난 장르가 예술일 것이다.



특히 이미지와 상징을 담고 있는 추상회화들이 의식 아래 가라앉은 오래된 비밀들을 슬쩍슬쩍 건드린다는 걸 나는 제법 여러 번 경험했었다. 이미지를 통해 자기 안의 신성과 소통한다고 할까.



화면 앞을 떠나도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다.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에 있는 전방위 예술가 문순우(65)의 집안은 그런 이미지와 상징의 집합소였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김성룡 기자



온갖 이미지와 상징의 집합소









고칠현삼의 외관. 목조 단층 건물로 내부면적은 200㎡ 정도다.





문을 열자 숱한 형상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문 밖의 세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하자면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쯤에 놓인 공간이 거기 있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의 형상들, 흙으로 빚은 천사들, 바닥에 깔린 눈이 흰 여인들, 커다란 난로와 오븐,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앤티크 스피커와 앰프들, 그리고 천장 아래 매달린 수많은 와인잔과 프라이팬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전혀 어지럽지 않았다. 거의 정연할 정도의 질서와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물건에 칼 같은 질서를 유지하는 힘은 당연히 주인인 문순우의 예민함과 부지런함일 것이다.



이 집을 소개한 사람은 소설가 송기원이었다. 이야기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흘러 넘치는 집이 있다고 알려준 전화번호로 당장 연락했더니 “내일 딸의 결혼식 참석차 캐나다로 가서 열흘 뒤 돌아온다”고 했었다. 문순우의 이름 앞엔 어떤 모자도 씌울 수 없다. 회화·사진·조각·도예·디자인의 장르를 넘나드는 건 그렇다 쳐도 그는 꽤 글 잘 쓰는 오디오 평론가였고 재즈클럽 주인이었으며, 또 목수였다. 집은 물론 제 손으로 지었다. 남의 손에 맡겨서 만족할 문순우가 아니다. 밖에서 보기엔 커다란 창고 같은 약 200㎡ 규모의 집은 간단하게 뚝딱 지었다고 말하지만 쳐다보는 천장의 다층적이고 심층적인 구조는 그의 무의식 구조를 조형으로 펼쳐놓은 듯하다.



천장 위에 모든 것이 있다. 바닥에도 그런 켜와 깊이가 있다. 역시 한 인간 안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집이다. 돈은? 얼마가 들었는지 모호하다. 대개 헌 물건을 주워 와 만들었기에 돈 주고 산 게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고칠현삼(古七現三)이다. “그게 가장 조화로운 비율이거든. 새 물건이 많으면 속돼서 못 써. 70%는 헌 물건으로 채워야 안정감이 생기지!” 이게 그의 인생관이고 예술철학이다. 물건이 사람 곁에 오래 머물면 슬쩍 피돌기를 시작한다는 걸 실은 나도 안다. 손때 묻은 물건을 어찌 함부로 버릴 수 있으랴. 내 손때가 아니라 남의 손때라도 소중하긴 마찬가지인 것을.









1 고칠현삼의 대문은 문순우가 직접 짜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2 피자구이용 오븐도 이탈리아 피자를 제대로 굽고 싶어 그가 직접 만들었다. 3 침실은 침대 하나 들어가면 가득 차는 작은 공간이다.





솜씨 좋은 건 목수였던 아버지의 내림이다. 못 쓰는 막대기를 자르고 구멍 뚫어 식탁 위에 가로 걸리는 등을 만든 솜씨를 보아라. 헌 나무들은 덧대고 오려져 문짝이 되고 식탁이 되고 찬장이 되었다. 그의 집엔 기성품이 별로 없다. 이미 만들어진 것은 낡을 대로 낡아 ‘기성’의 때를 지운 것들뿐이다. 문짝에는 신화 속에나 등장할 동물과 식물들이 뛰논다. 새와 말과 꽃과 나무들. 창문에는 허공을 유영하는 물고기가 붙어 있다.



문짝마다 도드래가 달려 문을 열면 낚싯줄에 매달린 망치나 펜치들이 주르륵 끌려 올라온다. “자동문이니까 그렇지 뭐….” 진지한 표정을 짓지만 장난스러움을 버리지 못한 그는 생래적으로 유랑인이다. 한자리에 붙박이는 것을 못 견디고 평생을 떠돌았다. 월남전에 참전했고, 프랑스에 오래 머물렀다. 파리에서 강원도 원통으로 직행해 십수 년을 살다가 경기도 이천을 거쳐 안성으로 온 지 5년째, 이제 환갑을 넘겨 꽁지 머리가 희끗희끗해졌으니 이곳에 정착하는 것일까.



물건과 나누는 대화, 그게 예술



그림을 보면 문순우는 아직 모험심과 에너지가 넘친다. 요리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그는 우리 일행 넷의 점심을 싱겁게 프라이팬 몇 번 뒤적이더니 뚝딱 지어냈다. 그런 다음 음악을 켜고 식탁보를 깔고 촛불을 켜고 와인을 따른 후 음식 접시를 들고 왔다. 물론 자신이 만든 접시였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임을 모토로 삼는다더니 과연 뜰에서 따온 바질이 얹어진 파스타 맛은 특급이었다. “요리는 미리 주문하는 게 아니거든. 그 사람의 성향과 빛깔에 맞는 재료를 찾아서 즉석에서 만들어야 해!” 한때 유도선수였고 건달로도 제법 족보를 세웠으며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당대 고수들과 예를 갖추는 사이였다는 그가 이토록 섬세한 요리철학을 펼쳐놓는다.



고등학교 때 최종태 선생이 미술교사로 부임해 와 그림에 흥미를 가졌고 서울 와서는 시인 김관식과 이웃에 살아 시 읊는 재미를 익혔으며 파리에서는 소나무 그룹의 화가들이 사진과 조형의 열정을 일깨워줬다. 그는 평생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다녔다. 극도의 탐미주의다. 감관이 발달한 자들은 겉보기에 아무리 가난 속에 빠져 있어도 온갖 호사를 누릴 줄 안다. 회화와 사진 말고도 건축·음악·식물·음식·와인·커피에 두루 자신의 예민한 더듬이를 갖다 대던 문순우가 편애하는 것이 바로 낡고 오래된 물건들이다. 그림도 따로 캔버스가 없다. 버려진 라디에이터 철판 위에, 볼링장을 뜯어낸 판자 위에, 못 쓰는 타일 위에, 쓰고 버린 폴라로이드 필름 위에, 와인을 거르던 필터 위에, 헌 다리미판 위에 그냥 그린다. “예술가는 시대를 반영하는 사람이지. 폐기물이 가득 널린 시대를. 그런데 들여다보면 버릴 게 아무것도 없거든.” 그래서 그의 집 당호도 ‘고칠현삼’이다.



스피커 60개… “이래저래 배치하며 몸으로 듣죠”













문순우가 안성 집을 꾸미는 데 신경 쓴 부분 중 하나는 오디오다. 저음에서 고음까지 다양한 음역대의 크고 작은 스피커들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60개 정도 된다고 했다. 웨스트레이크오디오 TM-3, 가우스(gauss), JBL 등 브랜드는 다양하다. 학창시절부터 수십 년간 하나하나 모은 것이다. 일부 스피커는 틀(프레임)을 직접 만들었다. 그림을 그려넣은 것도 있다.



 그는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듣는 것이라고 했다. 큰 소리로 마음껏 듣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원음에 최대한 가깝도록 재생할 수 있는 음향시설을 갖추고 싶었다고 했다. “이곳은 외딴 공간이라 풀 볼륨으로 들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좋다. 그게 나의 복”이라고 말했다. 스피커 배치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다. “설치한 후 6개월 정도 들어본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모두 재배치한다”고 했다. 요즘 그가 즐겨 듣는 것은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다. 스피커가 놓인 벽면 한쪽에는 드럼과 축음기도 놓여 있다. 드럼은 후배들이 찾아왔을 때 가끔 친단다. 손으로 돌려 작동시키는 축음기는 지금도 종종 듣는다. 문순우는 한때 오디오 평론을 했고, 서울 삼청동에서 재즈클럽 ‘라 끌레’를 운영하기도 했다. 카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몇 년 전 접었다. 그는 “모든 예술의 기반은 음악이고 소리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