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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신해년(辛亥年)의 보로(保路)혁명

1949년 10월1일 신중국이 성립되고 중국 서남부의 내전상황이 마무리되는 그해 12월 덩샤오핑은 쓰촨성에 철도부설을 건의하였다. 이 지역 출신인 그는 예부터 “촉도난난우상청천(촉도로 가는 길이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 蜀道難難于上靑天)” 이라고 할 정도로 사천성의 교통이 불편함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덩샤오핑은 신해혁명의 실마리가 된 1911년 10월의 쓰촨성의 철도투쟁을 생각했을 것이다.

류보청 (유백승∙劉佰承)장군의 서남관구 인민해방군 3만과 농민공 10만명이 동원되어 청두와 충칭간의 철도가 1950년 6월 착공 2년만인 1952년 7월 개통되었다. “개로선봉(開路先逢)”의 기치로 신중국 성립후 최초로 건설된 철도이지만 신해혁명의 정신을 이어 받은 민족 단결의 의미도 컸다.
중국은 청일전쟁에 패배함으로셔 1898년부터 서양의 열강에게 많은 이권을 빼앗겼다. 그 후 1905년부터는 민간자본으로 철도부설권을 회수하여 외세를 배제하고 중국인의 손으로 철도를 부설코저 하였다. 당시 사천성 호북성 광동성등의 민간 호상(豪商)들은 주식회사를 만들어 사철(私鐵)건설을 착수하였다. 천한선(川漢線)(청두-우한)과 월한선(粤漢線)(광저우-우한)등이 그것이다.

한편 청(淸)의 조정에서는 외국의 자본을 끌어 들여 대대적으로 철도부설을 계획 영 불 독 미등 은행과 차관교섭을 하고 있었다. 서양의 은행들은 담보를 요구하게 되고 정부는 철도를 국유화하여 이를 담보로 하였다. 이미 출자하여 철도를 부설 중에 있는 민간인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정부와 마찰이 발생하자 민중들은 이른 바 보로운동(保路運動) 즉 철도주권보호 투쟁이 시작되었다.

孫文이 이끄는 동맹회(同盟會)등을 중심으로 사천성의 격렬한 보로투쟁(쓰촨폭동四川暴動)은 후베이의 군대가 파병되어 진압해야 할 정도였다. 우창의 군대도 긴급 파병되었다. 이 기회를 이용 우창의 보로운동 동지들도 궐기하였다. 100년전 1911년 10월10일 밤 무기고를 습격하고 다음 날 우베이 정부를 수립 중국에서 처음으로 무장봉기에 성공하였다. 우창봉기(武昌起義)를 시발로 반청운동의 불길은 결국 청의 마지막 황제 부의 선통제(宣統帝)를 퇴위시키고 중국은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된다. 신해년의 사천성에서 시작된 철도 보로혁명이 총조를 무너뜨린 것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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