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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38) 뤄이눙 체포 보고받은 장제스


▲1927년 3월 장제스가 지휘하는 북벌군을 맞이하기 위해 저우언라이, 뤄이눙, 자오스옌 등은 중공 중앙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국민당과 함께 무장폭동을 일으켜 군벌부대를 격퇴하고 상하이 특별시 임시정부를 구성했다. 임시정부 1차 상무위원 회의에 참석한 뤄이눙(앞줄 왼쪽 셋째). 1927년 3월 23일 상하이. [김명호 제공]

애인 허창(賀昌·하창)이 모스크바에 가 있는 동안 주유룬(諸有倫·제유륜)은 뤄이눙(羅亦農·나역농)과 가정을 꾸렸다.

뤄이눙은 장모, 처제와 한집에 살았다. 장모는 아줌마 티가 전혀 나지 않는, 전형적인 쓰촨(四川) 미인이었다. 나이도 젊고 게다가 홀몸이었다. 처제 주유진(諸有金·제유금)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해만 지면 고위 당원들이 찾아와 무장폭동을 논의하고 뤄이눙의 장모와 마작판을 벌였다. 예쁜 처제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청년당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허창은 뤄이눙의 잘못을 열거하느라 한동안 분주했다. 중앙당 서기처 비서를 역임한 지하공작자 황무란(黃慕蘭·황모란, 몇 달 전 105세 생일을 마치고 사망)의 세 번째 남편이 될 때까지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애인을 도둑질당한 것은 뤄이눙의 죄상에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체면은 크게 상하지 않았다.






뤄이눙은 장모와 처제가 쓰촨으로 돌아가자 주유룬을 모스크바로 보냈다.“저우언라이 등과 무장폭동을 준비하며 허창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추측에 불과하다.

모스크바는 묘한 도시였다. 한번 갔다 하면 멀쩡하게 돌아오는 여성이 거의 없었다. 연원은 알 수 없지만 중국 여자유학생들을 러우바오쯔(肉包子), 고기만두라 부르던 고약한 곳이었다. 청년당원들은 뤄이눙을 걱정했지만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주유룬이 떠난 후 주유진이 형부를 돌보겠다며 뤄이눙을 찾아왔다. 뤄이눙은 주유진도 모스크바로 보냈다.

주유룬의 삶은 처참했다. 모스크바에서 공산당 원로 사오리쯔(邵力子·소력자)의 아들 사오즈강(邵至剛·소지강)과 열애에 빠졌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928년 여름,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희미한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못하고 객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초기 중공당원들의 회고록에 의하면 동생 주유진도 소련에서 익사했다고 한다.

뤄이눙은 아주 독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과거를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의 고향이나 출신성분을 몰랐다. 후난(湖南) 사투리가 심하다 보니 다들 후난사람이겠거니 했다. 무산계급 출신이 아닌 것을 숨기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실제로 뤄이눙은 농민 집안 출신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차이허썬(蔡和森·채화삼)과 동향이었다.

뤄이눙의 마지막 여인은 신중국 수립 후 민주동맹 부주석을 지낸 리저스(李哲時·이철시)였다. 두 사람은 1927년 8월, 우한(武漢)에서 처음 만났다. 주유룬이 모스크바에서 딴살림을 차리고, 소련 유학 시절 과일 싸 들고 병문안 왔던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무력으로 국공합작을 파열시킨 직후였다.

뤄이눙은 리펑(李鵬·이붕)의 이모 자오스란(趙世蘭·조세란)의 뒤를 이어 비서가 된 리저스를 데리고 상하이로 잠복,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4개월 후 뤄이눙은 회의장에 가던 도중 체포됐다. 밀고자는 주더(朱德·주덕)의 네 번째 부인과 그의 정부(情夫)였다. 덩샤오핑은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했다. 보고를 받은 장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즉각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처형당한 뤄이눙의 모습이 신문에 크게 실렸다. 리저스는 뤄이눙이 자던 침대를 바라보며 한동안 오열했다고 한다.

얼마 후 덩샤오핑이 오밤중에 당원들의 집을 노크했다. “내일 아침 신문을 자세히 봐라.” 연신 눈물을 훔쳐대고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이튿날 조간 구석에 “여관에 투숙 중인 남녀가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졌다”는 기사가 있었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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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