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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치가 평화의 발목 잡을 때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지난 9월 23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수주 안에 이에 대한 총회와 안보리 결정이 있을 예정이다.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행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발이 거세다. 원칙적으로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에 찬성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민주적 통치와 법치주의 등 전반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반이스라엘’ ‘반유대’ 정서가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킬 경우 이스라엘의 안보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5월 남부 레바논, 2005년 9월 가자지구로부터의 철수 이후 자국의 안보가 더 위태로워졌다는 게 이스라엘 측이 제시하는 방증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치정부의 국정 능력은 현저히 향상됐고 116개 국가가 이미 독립국가로 인정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점령 상태가 아니라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고 이스라엘과 마주해야 대등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간 팔레스타인이 견지해온 기본 입장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협상을 벌였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오히려 동예루살렘과 요르단 강 서안 지역에 유대인 정착촌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평화에는 관심이 없고 협상이란 미명하에 시간만 끌며 유대 정착촌을 확대해 팔레스타인 영토를 잠식해 나가고 있다’는 반박이다.

 유엔의 판단은 어떨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독립된 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의 국가로서의 지위를 지지한다. 오히려 너무 오래 지체됐다고 본다”며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회원국이 되려면 기존 회원국 130개 나라 이상이 참석한 총회에서 절반 이상의 지지를 획득하는 동시에 안보리에서 9개국 이상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물론 어느 상임이사국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불가능하다. 일단 총회에서의 지지획득은 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10월 5일 유네스코 집행위원회가 팔레스타인의 가입 신청을 압도적 다수표로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미 거부권 행사를 천명해 놓았음을 감안하면 안보리를 넘어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유엔 회원국 가입이 좌절될 경우 중동 정치에 미칠 후폭풍은 사뭇 심각하다. 당장 이스라엘의 고립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실각했고, 또 다른 우호국인 터키와의 관계 또한 가자지구로 향하던 터키 민간 구호선박에 이스라엘 군이 무차별 공격을 가한 사건으로 인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시민혁명에 따른 아랍의 정치지형 변화 또한 이스라엘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아랍 국가 모두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거부한 이스라엘에 더 예리한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미국의 처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2010년 유엔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우리는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을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식언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이집트·리비아·시리아의 민주화를 그토록 옹호하던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자유와 독립을 외면할 경우 이중 잣대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시민혁명과 민주화의 격랑 속에 있는 아랍 세계에서 미국의 평판과 정통성은 크게 위협받고, 반미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미국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명분과 실리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은 반대 입장을 왜 이스라엘과 미국은 고집하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국내 정치다.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리쿠드당 중심의 보수연정은 세속적 극우 민족주의 정당과 신정정치를 추구하는 유대 원리주의 정당에 지지 기반을 두고 있다. 이념적 배경이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연계고리는 팔레스타인을 흡수해 ‘대(大) 이스라엘’을 건설해야 한다는 영토적 집착과 국가안보 우선주의다. 우리가 평소 알고 있던 자유·정의·관용의 이스라엘과 거리가 먼 것 같다. 유대계 단체들의 로비가 의회와 행정부를 볼모로 삼고 있는 워싱턴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제제 때문에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는 이 허망한 아이러니는, 정치가 안보와 평화의 발목을 잡는 일이 밤낮으로 벌어지는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함의도 크다 하겠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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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