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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19) 별들의 고향(하)




신성일·안인숙 주연의 영화 ‘별들의 고향’(1974). 둘은 과감한 러브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중앙포토]


1970년대 초 여동생 같은 처녀들이 여직공·버스 안내원 등이 되기 위해 시골에서 상경했다. 소외 받는 사람도 생겨났다. 도시 뒷골목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거친 발길에 차이는 호스티스다. 바로 ‘별들의 고향’의 경아다.

 암울한 정치상황과 경제성장은 주변부 인생을 불러왔다. 모두 돈만 좇는 사이에 누군가는 쓰러지고 있었다. 최인호 원작 ‘별들의 고향’은 산업사회 속에서 ‘도시가 죽인 여자’의 이야기다. 나는 8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캣츠’의 그리자벨라를 보며 경아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경아가 살아있다면 그리자벨라 같은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캐릭터를 누가 맡을 것인가. 초보감독 이장호와 화천공사는 내 상대역을 신인 공모했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이장호가 경아 역으로 보아둔 신인 탤런트가 있었는데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 다음 카드는 신인 탤런트 김영애였다. 화천공사는 김영애를 거부하고, 아역 출신 안인숙을 추천했다. 이 역을 간절하게 원한 안인숙은 일명 ‘노 개런티’, 무료 출연을 선언했다. 아역 배우로 유명한 그의 첫 성인물 도전이었다.

 나는 경아와 동거하는 화가 문호 역을 맡았다. 감독은 내게 “입술과 입술이 닿은 형식적인 키스 말고요…”라며 대담한 키스신을 부탁했다. 자신이 여배우에게 직접 요구하지 못하겠으니 내게 설득해달라는 말이었다. 이장호는 ‘별들이 고향’의 키스신이 그 때까지의 영화 중 가장 실감났다고 지금도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건 사실과 조금 다르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체’하는 것을 싫어했다. ‘체’하는 연기로 어떻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66년 ‘종이배의 연정’ 촬영 때도 그랬다. 상대 여배우 이빈화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였다. 나는 키스신을 앞두고 “여기는 허가 받은 자리입니다. 마음껏 키스합시다”라고 했다. 이빈화는 “동생, 맞다. 맞아”하면서 응했다.

 ‘별들의 고향’에서 유행이 된 대사 중 하나가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였다. 경아가 문호에게 입에서 입으로 술을 넘겨주면서 하는 대사였다. 또 다른 유행어 ‘경아, 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처럼 실감나는 연기가 화제가 됐다.

 ‘별들의 고향’ 키스신은 문화공보부 검열에서 거의 커트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키스신이 상당 부분 편집된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원작에 대한 호감이 검열관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이 무렵 재미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별들의 고향’과 신상옥 감독·선우휘 원작 전쟁영화 ‘13세 소년’ 촬영장을 오가고 있었다. 고아 같은 소년이 전쟁의 포화 속을 헤매는 이야기였다. ‘조약돌’로 유명한 가수 박상규가 내 부관 역으로 이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 내 뒤를 따라오던 박상규는 포탄이 터지자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함께 있던 아역 출신의 13세 소년 김정훈은 멀쩡했다. 김정훈이 “아저씨가 기절했어요”라고 하자, 스태프가 모두 웃었다.

 ‘별들의 고향’은 105일 동안 국도극장에서만 약 40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초보감독 이장호가 필름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한 것도 용서됐다. 제작 관련자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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