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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뒤꼍서 ‘서울 황실배’ 따지요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먹골농원에서 정현호씨가 수확한 ‘황실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배나무 뒤로 중계동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강정현 기자]

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의 먹골농원에선 배 수확이 한창이었다. 1000여 그루의 배나무에는 잘 익은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무에서 배를 따는 정현호(57)씨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흠집이 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배나무만 보면 영락없는 시골 과수원이었지만 1만9800㎡(약 6000평)짜리 농원 뒤로는 중계동 아파트 단지가 병풍처럼 서 있었다. 정씨는 도심에서 배를 키우는 ‘서울농부’다. 정씨는 나무에서 막 따낸 배를 가리키며 “서울에서만 나는 황실배”라며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농사짓는 땅이 따로 있겠느냐”며 “아파트가 주변에 있지만 사질토(모래성분이 많음)로 된 땅이라 물이 잘 빠지고 양분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1980년대만 해도 건어물가게 주인이었다. 하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 배농사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고향(중랑구 묵동)에서 보고 자란 것이 배밭과 배나무였기 때문이다. 23년째 배를 키우고 있지만 농사일은 녹록지 않다. 봄이면 1000그루가 넘는 배나무의 가지를 하나하나 쳐야 한다.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해충이 생기면 손으로 잡아야 한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농사를 그만하라”고 성화다. 그러나 정씨는 배농사를 고집한다. “힘들 때는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우리 황실배만 찾는 단골들 생각하면 농사를 포기할 수 없지요.”

 빌딩과 아파트, 아스팔트길로 상징되는 서울에도 논과 밭을 일구는 농부들이 있다. 모두 1만3670명이다. 9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는 여의도 면적(840㏊)보다 넓은 930㏊의 농경지가 있다. 이 중 밭은 612㏊, 논이 318㏊다. 주로 벼농사를 짓거나 채소·과일 등을 생산한다.







 생산량은 많지 않다. 쌀은 전국 생산량의 0.03%, 잎채소류는 0.1%, 과수 0.01%, 화훼류는 2.44%에 불과하다. 지난해 서울에서 생산된 쌀은 1161t , 서울시민 1000만 명이 단 두 끼만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하지만 친환경 농법을 채용하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살아남기에 나섰다. 대표적인 것이 정씨가 심는 ‘황실배’와 ‘경복궁쌀’이다. 황실배는 주로 중랑구와 노원구 일대에서 재배한다.

 경복궁쌀은 서울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브랜드 쌀이다. 김포평야와 맞닿은 강서구 일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생산량이 적어 유통되는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현장에서 바로 도정해 팔기 때문에 밥맛이 좋다는 평가다. 경복궁쌀을 생산하는 전우신(64·강서구 개화동)씨는 “강서구는 흙과 물이 좋아서 벼가 자라기 좋다”며 “밥맛도 경기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황실배=서울시의 배 브랜드. 서울 배의 역사는 조선 세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종이 강원도로 유배를 갈 때 호송을 한 금부도사 왕방연이 죄책감에 사직하고 중랑천 주변 먹골(지금의 묵동)에서 배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 유래다. 경기도가 먼저 ‘먹골배’를 상표로 등록하자 서울시는 ‘황실배’로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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