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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통일 되면 독일과 닮은꼴 … 30년 내 그런 날 올걸요”






“한국과 독일은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쟁과 분단, 그리고 초고속 경제성장입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한국은 6·25 전쟁을 겪은 뒤 국토가 분단됐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6일 서울 동빙고동 독일대사관에서 만난 한스 울리히 자이트(59·사진) 주한 독일대사는 비록 양국이 인종과 언어가 다르지만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한반도가 통일만 된다면 양국은 현대사적 측면에서 거의 유사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2009년 9월 한국에 부임한 그는 서울 외교가에서 ‘통일 전도사’로 통한다.

독일이 2차 대전 직후 동서로 분단됐다가 41년 만인 1990년 10월 통일을 이룬 과정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외교관이기 때문이다.

독일 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국제적인 정치·군사학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한국 내에서 ‘통일’ 문제를 강연하는 유명 강사 중 한 명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그는 “통일에 대한 정의가 제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견해로는 30년 안에 한반도가 실질적인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에게 통일 문제와 양국관계를 비롯한 한국에서의 생활 등을 물어봤다.

글=최익재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한반도가 30년 내에 통일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대부분의 전문가는 현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꺼린다. 하지만 통일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온다. 독일의 경우도 그랬다. 독일이 통일된 90년 초까지도 아무도 통독이 그처럼 빨리 올지 몰랐다. 한반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 분위기를 볼 때 적어도 30년 내에는 평화가 정착되고 남북한 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최근 남북한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고 러시아에서 북한을 거쳐 남한으로 연결되는 가스 파이프 라인 건설 등 양측의 화해와 통합에 도움되는 일련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결국 통일로 이어진다. 30년 지나면 내가 90세 정도 될 것이다. 그때쯤이면 서울역에서 개성을 거쳐 평양으로 고속열차(KTX)를 타고 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다시 방문해 오전에 기차를 타고 점심 때 평양 시내에 있는 스타벅스나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

 “거대한 프로젝트를 거론하면 사람들은 흔히 돈 얘기를 꺼낸다. 하지만 실제 향후 경제 상황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통독 뒤 지난 21년을 분석해 볼 때 통일 비용에 대한 우려는 기우(杞憂)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독일이 통일되면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로 독일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자. 독일은 여전히 유럽 경제의 축을 유지하고 있다. 미리 추상적으로 통일 비용을 추산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비용 관점에서 통일을 보는 것은 정치를 경제 논리로 판단하려는 전형적인 케이스다. 통일 문제는 엄청난 정치적 이벤트지만 국민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다. 특히 많은 이산가족이 있는 한반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민족은 우수하기에 통일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할 것이다. 통일될 경우에는 이전과는 다른 국제적 지위도 누리게 될 것이다.”

-독일이 평가하는 한국은.

 “독일인들은 60년대 한국에서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을 ‘코리안 에인절(Korean Angels)’이라고 불렀다. 피부색이 다른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는 한국 간호사들의 헌신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학력의 한국인 광부들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지하 갱도에서 열심히 일했기에 독일 사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당시 한국에 대해 거의 몰랐던 독일 사람들은 이 사람들을 통해 한국을 알게 됐다. 당시 독일에 파견됐던 한국인 근로자 중 일부는 귀국해 경남 남해군에 ‘독일마을’을 만들었다. 독일 대사관은 현재 이 마을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옛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초 독일마을에서 열린 맥주축제의 성공을 위해 남해군과 함께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벌인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노래방이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노래방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종종 노래방에 찾아 노래를 부르곤 한다. 나의 18번은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다. 이 노래를 한바탕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싹 날아간다. 하지만 집사람이 ‘대사 체면에 노래방에 다니는 것은 걸맞지 않다’고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노래방을 찾곤 한다.(※평소에도 노래 부르기를 즐긴다는 자이트 대사는 지난 5월 ‘한국 알리기 캠페인 노래 경연대회’를 위해 서울 성북동 자신의 관저를 빌려주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부인 마리타와 함께 캠페인 주제곡인 ‘사랑의 사계절’을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양국 간 협력 강화를 위해서는.

 “지난 7월 발효된 유럽연합(EU)·한국 자유무역협정(FTA)은 양측 협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젠 경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지난 3월 독일에서 개막된 ‘한국의 재발견 특별전’이다. 이 행사는 독일 박물관과 개인 등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유물 6000여 점 중 100여 점을 뽑아 쾰른 등 4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하는 이벤트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주한 독일 대사관 및 독일 박물관 등이 힘을 모아 마련한 행사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은 독일 내 한국 유물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것이다. 사실 독일 박물관에 전시된 상당수의 한국 유물이 중국 또는 일본산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 양국이 서로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활발한 문화 교류가 필요하다.”

자이트 대사는 …

1952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출생

71~73년 독일 공군 장교

73~78년 독일 튀빙겐·본 대학 등에서 역사·법·정치학 수학

82년 독일 외무부 입성

86~89년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독일 대사관 근무

89~98년 케냐 나이로비, 벨기에 브뤼셀, 독일 외무부 본부 등에서 근무

98~2002년 미국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근무

2002~2006년 독일외교협회 선임 연구원, 베를린 자유대 강사 등

2006~2008년 아프가니스탄 주재 독일 대사

2009년 9월~ 한국 주재 독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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