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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검열 통과한 ‘입영전야’...군인은 못 부른 ‘늙은 군인의 노래’

1970년대는 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년 전후의 시기였지만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4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전쟁기의 고통이 엊그제 같았겠지만, 청소년들은 전쟁의 경험이 없는 전후세대들로 채워졌고 이들은 성장하면서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체득했다. 이제 군인은, 존경스럽지도 않고 자신과 동일시되지 않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군인을 다룬 대중가요는 더 이상 인기를 누릴 수 없었다. 60년대까지의 군인 소재 노래가, 아무리 정부의 부추김에 의해 만든 노래라 할지라도 꽤 여러 편이 히트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면,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1. 나 하나 몸 간수도 못하던 내가 총 메고 싸움터에 나섰습니다 / 부모님 말씀도 안 듣던 내가 조국의 부름에 따랐습니다 / 훈련소서 더벅머리 잘라버릴 땐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지마는 예예예 / 지금은 산뜻한 군복을 입고 호미 대신 총을 멘 멋장이라오

2. 물지게도 제대로 못 지던 내가 거칠은 훈련도 받아넘기고 / 뛰었다 하면 구보 길 이십여 리에 감기 한 번 안 걸린 사나이 됐다오 / 달이 밝은 야영 때는 편지를 쓰죠 어머님 그동안 안녕하신지 예예예 / 당신 곁 떠나올 때 울던 바보가 지금은 나라의 기둥이지요

3. 고향을 떠나서 멀리와 보니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이쁜입니다 / 떠나올 때 날 붙들고 울던 이쁜이 행여나 긴 세월 기다려 줄까 /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하던 이쁜이 지금도 내 생각만 하고 있겠지 예예예 / 조국에 충성하고 돌아가는 날 누구보다 이쁜이가 반겨주겠지”(조영남<사진>의 ‘이일병과 이쁜이’, 1971, 조영남 작사, 김학송 작곡)

청년문화 시대의 첫 스타가 된 조영남은 정부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한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이 곡도 그런 작품이다. 조영남 특유의 작사 감각이 없진 않지만 지난 회에 소개한 ‘육군 김일병’이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와 그리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건전가요였다. 아무리 인기 있던 조영남이지만, 이미 달라진 새 세대들에게는 ‘군대 갔다 와야 철이 들지’ 식의 어른들 훈계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78년 허성희의 ‘전우가 남긴 한 마디’ 같은 노래는 오로지 50대 이상만 감동하는 시대착오적인 노래로 들렸다. 전쟁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 타령이란 말인가.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이 군대에 지니는 솔직한 심정은 3년 동안 가족과 친구와 헤어져 험한 고생길 떠나는 착잡함이었을 것이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1975)의 마지막 장면이 병태가 머리 깎고 군대 가는 장면인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군 입대란, 기성세대에 반기를 들었던 청년들이 그 풋풋하고 자유로웠던 청년기를 끝내고 타락한 기성세대의 세계로 접어들기 시작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청년들의 착잡함을 대변해줄 노래는, 검열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참 나오기 힘들었다.

“1.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연기 /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날까지 / (후렴)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2. 지난날들 돌아보면 숱한 우리 얘기 / 넓은 너의 가슴 열리고 마주 쥔 두 손엔 사나이 정이 /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는 가슴에 / (후렴)”(최백호의 ‘입영 전야’, 1978, 최백호 작사·작곡)

아마 지금 4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군필 남자라면 입영 열흘 전부터 이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며 술을 마셔댄 경험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나 같은 여자들도 그런 술자리 끼어 정말 지겹도록 이 노래를 불러댔다.

지금 살펴보면 70년대의 검열 수준을 통과한 참으로 아슬아슬한 노래다. 건전가요들이 지닌 계몽성이 상당히 제거되어 있지만, 그래도 ‘흐뭇한 밤’,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 등의 가사를 남겨두어 기성세대와 검열당국을 만족시켰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앞부분에 ‘아쉬운 밤’, ‘뽀얀 담배연기’, ‘넘치는 술잔’을 배치하고, 후렴에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로 끝맺음으로써 군대의 경직성과 크게 어긋나는 술자리의 자유분방하면서도 착잡한 분위기가 노래 전체를 압도하게 만든다.

그런데 같은 해에 또 한 편의 주목할 만한 군인 소재 노래가 나왔다.
“1.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 (후렴)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 (후렴)

3.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 (후렴)”(양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 1978, 김민기 작사·작곡)

군 입대 후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영창 거쳐 전방으로 쫓겨난 김민기가 군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머리에 서리가 앉기 시작한 이 늙은 하사관은 전쟁 때 군대에 들어왔다가 그냥 직업군인으로 눌러앉았을 듯하다. 자랑스럽지만 가난한 하급 군인의 삶을 묵묵하게 한평생 살아왔을 이 주인공의 회한이 작품 전체의 느낌이다. 씩씩함과 애국심을 충분히 남겨두면서도 전반적으로 쓸쓸함과 회한의 감정을 드러낸 이 노래는, 국방부의 금지곡이 되어 정작 군인들은 부르지 못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를 보니 확실히 군대가 젊은이를 철들게는 하는 듯하지만, 그게 꼭 어른들이 바라는 방향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세상은 재미있는 것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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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