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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의 미술관 속 로스쿨 <29> 엘긴 조각의 주인은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인 엘긴 조각의 일부.
요즈음 전 세계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리스를 지켜보고 있다. 만약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선언하면 그 충격은 아마도 지진해일처럼 엄청난 규모로 세계 경제를 덮칠 것이다.이런 걱정 속에 방문한 그리스는 경제 불황에도 여전히 멋진 곳이었다. 특히 수도 아테네에 새로 세워진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정말 굉장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동안 그리스 정부는 점차 나빠지는 나라살림에도 무려 2억 달러라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7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2007년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완공했다.

이 멋진 박물관은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이른바 엘긴 조각들과 관련이 있다. 대영박물관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엘긴 조각들은 19세기 초 엘긴경이라고도 불리는 토머스 브루스가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빼돌린 조각품들을 말한다.

이 거대한 조각들은 원래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의 위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브루스는 당시 그리스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 정부로부터 유물 반출에 대한 허가를 받고자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러자 담당 관리를 매수해 결국 영국으로 반출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유물 관리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독립을 1832년에 쟁취한 그리스는 즉시 엘긴 조각을 돌려달라고 영국에 정식 요청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냉정히 거절했다.

그때 이후 영국은 엘긴 조각들을 그리스에 돌려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중에는 엘긴 조각들이 그리스에 그대로 있었다면 벌써 파괴되었을 것을 영국이 반출해 지금까지 잘 보존해 왔다는 식의 나름대로 신빙성이 높은 주장도 있고, 또 엘긴 조각을 돌려주면 비슷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영국의 박물관들이 텅 비게 될 것이라는 애원에 가까운 억지도 있다.

영국의 주장 중에는 점유취득이라는 것도 있다. 200년 동안이나 영국이 엘긴 조각을 잘 가지고 있었으니 이제는 엘긴 조각들이 그리스 것이 아니라 영국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점유취득이라는 것은 원래의 주인이 돌려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은 채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하는데 그리스는 독립하자마자 계속 엘긴 조각의 반환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이 주장은 국제법상 인정되기 어렵다.

엘긴 조각들처럼 해외로 불법 반출된 유물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문제에 대해 그동안 유엔에서도 많은 논의를 해왔다. 1978년 설립된 문화재반환촉진정부간위원회와 같은 국제기구들도 여럿 설치됐다.

하지만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다른 나라에서 불법적으로 반출한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 반출된 유물을 돌려달라는 외국 정부의 어떠한 요구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더 나아가 선진국들은 여러 국제기구를 통해 외국의 유물을 어떠한 원인에서든지 50년 이상 점유하고 있으면 그 유물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유물의 점유취득 원칙을 국제법으로 만들려는 황당한(?) 국제협약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이 황당한 이유는 영국과 같은 영미법 국가의 법체계에는 원래 이런 점유취득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국이 엘긴 조각들의 반환을 거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의 높은 기온과 빈약한 박물관 시설 때문에 돌려주어도 조각들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리스에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국립고고학박물관이 있지만 사실 세워진 지가 너무 오래돼 시설이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영국의 이런 주장에 자존심이 상한 그리스 정부는 엘긴 조각을 돌려받으려는 마음으로 엄청난 규모와 최신식 시설을 갖춘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따로 짓기로 한 것이다.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는 영국에서 돌아올 엘긴 조각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또 유물의 전시와 보존을 위한 각종 최신식 설비도 마련해 놓았다.

이에 영국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고민하던 영국은 새로운 제안을 그리스에 내놓았다. 만약 엘긴 조각들이 영국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가 인정하면 엘긴 조각들을 그리스에 잠시 동안 빌려주겠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그리스가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리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리스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세계적 여론에 몰린 영국이 곧 굴복해 엘긴 조각들이 멋진 새 박물관에 들어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리스는 경제위기의 수렁에 빠져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거센 반환 요구가 잠잠해지자 그동안 궁지에 몰렸던 영국은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그리스 사람들은 아직 기다리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과 엘긴 조각은 그저 고대의 조각품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민족적 자존심이고 긍지일 터다.
우리가 일본 식민지일 때 영국이 우리나라의 숭례문을 통째로 뜯어갔다면 우리 역시 반환받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겠지만, 힘내라 그리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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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