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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디즈니·제니스 …‘후계자 리스크’ 극복 못해 퇴보

1999년 10월 3일, 일본 소니의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93년 얻은 뇌졸중의 후유증이었다. 공동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井深大)는 이미 2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였다. 위대한 창업자를 잇따라 잃은 소니의 지휘봉은 이부카의 사위인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가 잡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 소니 몰락의 시발점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세기 중후반, 모리타의 소니는 지금의 애플과 비교할 만한 트렌드 메이커였다. 46년 모리타와 이부카는 테이프 녹음기와 전기밥솥 등을 만드는 전자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전기가 마련된 것은 50년대 초반. 미국을 여행하던 이부카는 벨연구소의 트랜지스터 발명 소식을 접했다. 미국 회사들이 진공관을 대신할 트랜지스터를 군사용으로 연구하는 동안 소니는 콤팩트한 라디오를 만들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처음으로 만든 것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57년 보급형 제품을 내놓은 소니가 거뒀다. 69년 컬러비디오테이프레코더(VCR), 79년 워크맨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선도했다. 콘텐트의 중요성을 먼저 깨닫고 8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CBS레코드와 컬럼비아영화사를 사들였다. 93년에는 플레이스테이션(PS)을 내놓으며 비디오게임 시장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소니는 창업자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이데이는 사외이사 중심의 서구식 지배구조를 도입했다. 닉슨 행정부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투자자문사 블랙스톤그룹의 피터 피터슨 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글로벌기업으로 체질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흐름을 놓친 것이 문제였다. 워크맨과 브라운관TV에 매달리는 사이 애플의 MP3플레이어인 아이팟과 삼성의 평판 디지털TV는 소니의 기반을 파고들었다. 이데이는 제너럴모터스(GM)·네슬레 등의 사외이사를 겸임하느라 시대를 이끌어 갈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
이데이는 2005년 경제 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로부터 ‘최악의 경영자’로 꼽히는 수모를 당했다. 결국 이데이는 그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미국법인 사장이던 하워드 스트링어에게 물려줬다. 소니는 여전히 연간 100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정상급 전자업체지만 TV와 스마트폰 등에서 세계시장 점유율이 3~4위권에 머물고 있다. 시장을 선도하던 기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혁신적인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뒤 회사가 굴곡을 겪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랠프 매튜스와 칼 하셀이 18년 시카고에서 창업한 제니스는 라디오 제조로 큰 성공을 거뒀다. 회사 이름은 매튜스의 무선통신 호출부호인 ‘9ZN’에서 따온 것이다. TV 사업에 뛰어들어 50년에는 세계 최초로 텔레비전용 리모컨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매튜스가 숨을 거두면서 급속도로 몰락했다. 일본산 전자제품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는데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고화질(HD)TV 원천기술을 개발했을 정도로 기술력은 있었지만 결국 99년 LG전자에 인수됐다.

최근 재기에 성공한 디즈니 역시 ‘거인의 그늘’을 벗어나는 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창업자 월트 디즈니가 66년 사망하면서 디즈니는 20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70년대에는 온갖 적대적 인수 시도에 시달렸고, 이거다 할 대표작도 내놓지 못했다. 84년 패러마운트에서 영입한 마이클 아이즈너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같은 걸작을 내놓으며 디즈니의 부활을 알렸지만 임원들과의 법적 분쟁으로 수억 달러의 손실을 보기도 했다.

가톨릭대 김기찬(경영학) 교수는 “창의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세운 기업일수록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후계자 리스크’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혼다자동차 50년사에는 ‘철학이 없는 행동은 흉기’라는 말이 나온다”며 “위대한 창업자가 제시한 철학과 비전에만 의존하던 기업이 그 빈자리를 제대로 메우지 못하고 기존의 비즈니스모델만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몰락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키우는 프로그램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런 대비를 가장 잘한 기업이 GE다. 이 회사의 전신은 1878년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에디슨제너럴일렉트릭이다. 전구를 만드는 조명회사에서 시작해 금융·항공기엔진·발전·방송(NBC유니버설) 등을 소유한 다국적 복합기업으로 성장했다. 1896년 상장된 뒤 지금까지 115년째 뉴욕 다우존스 지수에 포함되는 유일한 회사다. 그만큼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 에디슨 사후 사외이사 중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어 오고 있다. GE의 특징은 몇 년에 걸쳐 차세대 CEO를 키운다는 점이다. 매년 12월 열리는 정기이사회에서 현직 CEO가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 경영권을 승계할 사람을 정한다.

대표적 GE의 경영자인 잭 웰치의 경우 처음 CEO 후보로 선발된 것은 74년이었다. 19명의 후보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CEO이던 레지널드 존스로부터 7년간의 경영 수업을 받은 뒤 81년 CEO가 됐다. 존스는 재임기간 중 빼어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천리마 웰치를 찾아낸 천리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웰치는 “앞으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후계자를 고르는 것”이라며 94년 24명의 후보자를 추렸다. 이들을 대상으로 6년 반 동안 경영능력을 평가한 끝에 제프리 이멀트 현 CEO가 2000년 은퇴한 웰치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웰치는 기업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키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을 만든다’는 창업자 에디슨의 뜻을 저버리고 GE를 금융업체로 바꿔 놨다는 비판을 받았다.

‘후계자 리스크’를 이겨 낸다고 해도 계속 잘나가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62년 샘 월턴이 미국 아칸소에 작은 잡화점을 세우면서 출발했다. 그는 점포를 여러 개로 늘려 대량 구매를 기반으로 한 ‘매일같이 낮은 가격’ 전략으로 월마트를 키웠다. 데이비드 글래스를 후계자로 키운 덕에 92년 월턴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성장세를 이어 갈 수 있었다. 글래스 역시 GE처럼 5년간 후계자를 골라 리 스콧에게 CEO 자리를 넘겨줬다. 하지만 덩치가 커지면서 최근 9분기 연속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최근 “월마트가 초심을 잃었다”며 “창업자 사망 후 후임자들이 낮은 가격보다 매출을 늘리는 데만 골몰하다 온라인쇼핑몰과의 가격 경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애플 역시 스티브 잡스의 빈자리가 크다. 잡스는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인 애플Ⅰ을 만든 혁신가였다. 아이튠즈뮤직스토어(ITMS)로 디지털 음원시장을 개척했고 스마트폰 대중화를 이끌어 낸 아이폰과 태블릿PC의 붐을 일으킨 아이패드를 내놓았다. 응용 프로그램을 사고파는 앱스토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 단순히 기기를 파는 데서 벗어나 모바일 생태계를 창조했다. 애플은 잡스의 비즈니스모델을 계승하면서 그를 능가하는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가인 레지스 매키너는 “잡스의 경영 유전자(DNA)를 모두 물려받을 수 있는 인물은 애플에 없다”고 말했다.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창업자인 잡스의 자리를 한 사람이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CEO인 팀 쿡, 디자인 담당인 조너선 아이브 부사장, 마케팅 담당 필립 실러 부사장의 트로이카 체제로 간다.

쿡은 “영혼이 없는 기계(블룸버그)”라는 평을 듣는 관리의 달인이지만 잡스의 카리스마나 비전까지 물려받지는 못했다. 속이 비치는 아이맥을 시작으로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줄줄이 히트시킨 아이브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가 디자인한 i시리즈의 첫 작품인 아이팟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다.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게(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유명한 2005년 잡스의 스탠퍼드대 연설문 등을 손질한 실러는 애플에서 잡스 다음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트로이카가 이끄는 애플의 미래는 장밋빛만은 아니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 사망 직후 “비범한 존재가 사라졌다”며 “이제부터 애플 경영은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과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김성수(경영학) 교수는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위대한 창업가가 생존하던 때는 시장을 선도하다가 후계자 양성에 실패해 쇠락한 기업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그는 “애플의 최고경영자는 시장의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과 안목이 필요하다”며 “잡스처럼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현재의 선도적 위치에 손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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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