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철없는 나이에 부모된 88만원 세대를 위한 위로”

‘젊음=희망’이란 등식이 흔들리는 시대다. 지금 미국을 달구고 있는 반(反)월스트리트 시위는 금융위기가 지구촌 청년들에게 안겨 준 좌절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래 청년실업이 널리 퍼진 한국의 청년세대에도 젊음의 희망이 복원될 기미는 희미하다. 1980년생으로 청년세대에 속하는 김애란(31·사진) 작가는 8년 전 문학계에 샛별로 데뷔해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내면을 읽는 데 흥미로운 단초를 제공하는 소설들을 발표해 왔다. 작가의 단편들은 노골적인 세태 묘사와는 거리를 두면서도, 이른바 88만원세대로도 불리는 청년들의 삶과 정서를 솜씨 있게 포착해 왔다.

석 달 전 출간된 두근 두근 내 인생은 작가의 첫 장편이자 15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주인공은 조로증을 앓고 있는 17세 소년, 부모는 때 이르게 아이를 낳아 현재 34세다. 병마와 싸우며 일찍 철이 든 소년은 풋사랑을 겪는 한편 부모의 사랑 얘기를 ‘소설 속 소설’로 복원한다. 이 소설이 실은 소년의 부모, 즉 지금의 청년세대를 향한 위로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게 만드는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신수정(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이 소설에서 조로(早老)는 어떤 의미에서는 반어(反語)”라며 “조로한 듯 보이는, 꿈도 없는 듯 보이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 숨어 있는 열정, 삶에 대한 긍정을 보여 준다”고 해석했다. 작가를 지난달 28일 인터뷰했다. 무슨 질문에든 골똘히 상념에 잠기며, 곧잘 소설 주인공의 입장에서 답하는 작가의 말투를 축약해 정리했다.

-80대 노인처럼 몸이 늙어 버린 10대 소년의 부모가 이제 겨우 30대 초반이라는 설정이 흥미롭다.
“먼저 생각한 인물은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이 빨리 늙는 병에 걸린 아이라서 부모는 대칭이 될 수 있는 인물, 철없는 나이에 부모가 된 인물로 설정하면 그 차이에서 나오는 얘기가 재미있겠다 싶었다. 누구나 부모가 될 때 두려움과 용기가 교차하는데 미성년들이라면 얼마나 더 무섭고 어리둥절했을까 싶기도 했다.”

-이 소설을 청년세대의 목소리로 읽으려 한다면.
“세대를 대표하겠다는 마음으로 세대라는 큰 덩어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한다면 그게 의도만큼 잘 드러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어떤 개인을 온전히 잘 그려 그 개인을 통해 드러나는 풍경이 세대로 확대됐을 때 이야기가 잘 나타난다고 본다. 반대의 과정이 되면 세대도 개인도 잘 그려 내지 못할 것이다.”

-소설의 초반 무대가 관광단지 개발 붐이 불기 시작한 시골이다.
“주인공의 엄마·아빠가 연애하는 배경이 자연에 가까운 공간이기를 바랐다. 주인공이 태어날 즈음에 공사 붐이 불어 자연에 훼손되기 시작하고, 주인공이 가진 병의 성격과 공동체가 가진 성격이 비슷하게 맞물려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나중에 소설에서 생겨난 리듬과의 관계가 부자연스럽게 돼 그걸 적극적으로 살리지는 못했다.”

-주인공은 또래보다 어른스레 그려진다. 자기가 하는 어른스러운 말의 의미를 충분히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일 텐데.
“주인공에게 두 가지가 다 있기를 바랐다. 아프지만 부모를 배려하고, 철들고…. 그런데 이웃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나이는 몸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는 말씀을 들려준다. 주인공의 몸속에는 과거·현재·미래 여러 시간이 동시에 들어 있다. 어릴 때의 시간, 지금 겪는 시간, 몸이 늙고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앞으로 겪을 시간…. 보통 사람도 마찬가지다. 다 자란 것 같은 부분에도 어리석은 부분이 있고, 어린 친구들인데 조숙한 친구들도 있고.”

-앞서 두 편의 창작집(2005년 달려라 아비, 2007년 침이 고인다)에는 서울에서 달리 의지할 데 없이 방 한 칸에 기대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여럿 등장시켰는데.
“개인적 경험이나 환경이 그런 모습에 가까워 그랬는지 모른다. 19세까지 시골에서 살다 도시 경험을 20세 이후 해서 모든 공간을 낯설고 신기하게 봤던 모양이다. 출생지는 인천인데 두세 살쯤부터 부모님 고향인 충남 서산에서 자랐다. 지명은 서산시인데,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는 동네다. 서울에 올 때만 해도 편의점이 없던 곳이다. 그래서 (도시 풍경을) 익숙하기보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단편들을 보면 자취방·독서실·원룸·지하셋방·옥탑방 등 지금의 청년들에게 한 칸 방이 상징하는 바가 퍽 커 보인다. 인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고시원에 살다 쫓겨난 인물 ‘백진희’도 그렇고.
“백진희라는 인물을 보며 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과 친하겠다 싶었다(웃음). 주변에 보면 상경한 친구도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졸업 후 취직이 유예된 채 집에서 나와 사는 친구도 많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어느 정도 공감했나.
“그 제목의 책이 나온 게, 또래 얘기를 많이 쓴 두 번째 단편집이 나온 무렵이었다. 우리 세대를 설명할 수 있는 해석 중 하나라고 받아들였고, 우리 세대가 가진 환경이나 조건을 설명한 것 중 경제적인 부분은 공감을 많이 했다. 그런데 꼭 88만원세대가 아니더라도 우리 세대를 표현하는 몇몇 말이 있다면 그걸 다 합해도 충분치 않다고 느꼈다. 생활의 디테일인지 정서인지 모르지만 전체에서 빼면 끝끝내 남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았고, 있기를 바랐다. 그걸 얘기할 수 있는 장르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창작집에서 또래 얘기를 많이 하게 된 까닭은.
“지금 생각하면 첫 번째 단편집에선 가족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두리번거리게 됐다. 주위 풍경, 사는 모양새…. 인물들의 동선이 점점 커졌다. 방에만 있다가 편의점도 기웃거리고 나중에는 노량진(학원가)·신림동(고시촌) 같은 공간이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 펴낼 세 번째 창작집에는 곳곳을 돌아다니는 택시기사도 나오고 해외여행도 간다. ’좀 나가 봐’ ‘나가서 놀아 봐’라며 소설 속 인물들을 등 떠민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집중하다 나중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생겼다. 솔로를 잘 부르는 인물도 좋지만 합창이 되거나 혹은 그러다 불협화음이 나는 재미도 알아가는 소설을 이제 막 쓰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장편에 노래 두 편이 나온다.
“다들 자기 연애의 테마송 하나씩은 갖고 있지 않나. 주인공의 연애에도 노래가 있어야겠다 싶어 골랐다. 한 곡은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하는 가사도, 멜로디도 마음에 들었다. 또 한 곡은 (조로증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뭐가 되기 어려운 주인공에게 ‘난 뭐가 되고 싶어, 뭐가 되고 싶어’ 하는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 썼다. 이 소설이 세대 이야기로 읽히는 데 저항감은 없는데 연애소설로도, 시간에 대한 소설로도, 가족소설로도 독자들이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20대에 이미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그때마다 소감이 달랐을 텐데. 일찍 데뷔하고 상도 많이 받아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스트레스의 대상이라는 얘기도 있더라.
“(수상을 통해) 계속 소설을 써도 되는구나 하는 격려도 받았고, 상금으로 경제적 도움도 받았다. 한편으로 엄살을 부려서도 안 되고, 자부를 가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책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거나 데뷔를 일찍 했다거나 하는 상황들이 정말로 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알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 그렇다. 긴긴 창작의 시간 동안 내게도 별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파도도 있고 고비도 있고. 그런 순간에 지금까지 받은 격려들을 용기를 내는 데 사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