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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중 흡연자는 거리의 무법자

점심식사 뒤에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할 때였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에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줘 상쾌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려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맑은 공기 대신 담배 연기가 기습한 것이다. 불쾌감에 앞을 살펴보니 역시나 몇몇이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보니 담배를 물고 또는 손에 들고 걷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뒤따르는 행인들은 손으로 연신 담배 연기를 날려 버리거나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오피스가나 상가 밀집 지역에선 흔한 풍경이다.

특히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점심 때면 더하다. 빨리 걷기도 어려운데 앞사람이 담배 연기를 뿜어내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피할 길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다. 횡단보도도 마찬가지다. 습하고 더운 여름날에는 그 불쾌감이 배가 된다. 그럴 때면 짜증이 솟고, 때론 쫓아가 흡연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든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요 인터넷 포털에서 ‘보행 중 흡연’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유쾌하지 못한 경험담이 즐비하게 올라온다. 냄새가 싫다는 하소연에서부터 함부로 떨어낸 담뱃재에 옷이나 신발이 더러워진 사례, 심지어 주먹다짐한 경험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5월 직장인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원을 보면 한 대 패 주고 싶다’는 응답자가 25%나 됐다.

간접흡연의 폐해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된 임신부의 경우 저체중아 출산이나 사산율이 높아지고 어린이는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한 해 간접흡연으로 인한 사망자가 60만 명이나 된다. 직접흡연 사망자는 510만 명이다. 또 아이들의 40%, 담배를 피우지 않는 성인 남녀의 30% 이상이 주기적으로 간접흡연에 노출되고 있다.

생활 속에서 간접흡연에 노출되는 장소는 술집·음식점·거리·버스정류소 등 다양하다. 흡연자가 유독 많은 술집이나 음식점은 싫으면 안 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거리나 이용해야 할 버스정류소는 대안이 없다. 누군가가 흡연을 하면 피할 길이 없다.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시민 11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선 간접흡연을 경험한 장소로 거리와 버스정류소가 각각 17.2%, 15.1%로 나타났다. 합하면 30%를 훌쩍 넘는다. 술집은 36.8%, 음식점 17.3%였다.

거리 보행 중 흡연의 위험은 또 있다. 성인이 손에 들고 걸어가는 담배의 높이가 어린이의 눈높이와 거의 같다. 그래서 자칫 담배 불똥이 아이의 눈이나 얼굴에 닿기라도 하면 큰 상처를 안길 수 있다. 담배 불똥은 500~800도에 달한다. 2001년 일본에서는 행인의 담배 불똥으로 인해 어린이가 실명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2002년 11월 도쿄의 지요다구를 시작으로 노상흡연, 보행 중 흡연을 금지하는 조례를 만드는 지자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도쿄 신주쿠·스기나미구를 비롯, 나고야·삿포로·고베·후쿠오카 등도 이 대열에 합류해 있다.

국내에서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고 많은 지자체에서 금연구역을 확대하는 조례를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서울광장·청계광장·광화문광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9월부터는 여의도·선유도공원 등 도시공원 21개소도 금연구역에 추가했다. 위반시 과태료가 10만원이다.

하지만 법이나 조례에 보행 중 흡연을 금하는 내용은 없다. 필요 시 일정 구역이나 거리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경우 해당 지역만 벗어나면 흡연에 제약이 없어지는 맹점이 있다. 이 때문에 보행 중 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새로운 법과 조례 제정이 절실하다. 다만 거리에 흡연자 배려공간을 만들어 주는 건 필요하다.

물론 담배는 기호품이고 세금까지 물면서 피우는 터에 구박이 너무 심하다고 항의하는 흡연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문제다. 헌법재판소도 2004년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 기본권이며, 흡연권이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인정된다고 적시한 바 있다. 국내 흡연 인구는 20%가량이다. 나머지 80%를 간접흡연의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치권과 정부, 지자체가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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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