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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는 유튜브로…전자·의학과 융합 ‘신산업’ 진화

기술 진보는 패션 분야에서도 많은 것을 이뤄 냈다. 더 가볍고, 더 튼튼하고, 더 따뜻하며, 더 오래가는 형태의 신소재 개발만이 아니다. 옷을 입는 방식이 달라진 시대가 2021년이다. 몇 년 전부터는 진짜 옷보다 ‘디지털세계의 패션’에 훨씬 공을 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망막 투영기술’이라 불리는 렌즈 덕분이다. 이 렌즈는 자기 마음대로 자신이 받아들이는 영상을 조작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원리다. 여성 A씨는 잘생긴 남성 B씨에게 호감이 있다. 그렇지만 B씨의 패션감각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함께 데이트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A씨가 망막 투영기술 렌즈를 착용하고 B씨를 보면 그는 A씨의 마음에 쏙 드는 옷을 입은 ‘완벽남’으로 보인다. A씨의 눈을 통해 전달된 B씨의 이미지, 그가 입은 옷은 A씨가 ‘월드 컬렉션’에서 골라 주문한 것이다. 예전에 2차원 아바타를 그리던 ‘그래픽디자이너’가 이제는 3차원의 패션디자이너로 진화한 셈이다.

월드 컬렉션은 봄·여름·가을·겨울 시즌을 따로 정하지 않고 디자이너들이 그때그때 컬렉션을 열기 때문에 트렌드를 훨씬 더 빨리 반영해 소비자의 호응도 높다. 생산비라곤 서버 운영비용과 디자이너 자신의 인건비에 불과하니 실제 옷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다. 여기에 재고 부담도 없다. 월드 컬렉션은 최근 몇 년 새 세계 최대 패션 이벤트로 부상했다. 뉴욕·파리처럼 나뉘어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수집·유통되는 소비자 취향 정보를 디자이너 누구든 손쉽게 활용할 수 있어 지역별 ‘맞춤형 패션’도 가능하다. ‘월드 컬렉션’의 옷이 가상현실에서만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온도 따라 통풍·보온 조절하는 옷
21세기 초 불어온 K팝 열풍이 문화적 현상에 그친 게 아니라 ‘한국’이란 이미지도 높여 줬다. ‘유행=패션’이란 공식 덕분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패션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월드 컬렉션’에서 각광받는 디자이너는 대한민국 출신이 많다. 한복의 멋을 현대미로 승화시킨 디자이너들이 세계 무대를 누빈다.

‘패션 한류’의 도약에는 신소재 개발에 공들인 국내 업체들의 노력도 한몫했다. 최근 A사가 내놓은 신소재는 사계절용으로 나왔다. 섬유 자체가 기온에 따라 특성이 바뀌기 때문에 체온보다 기온이 높으면 통풍이 잘 되는 특성으로 변한다. 기온이 낮을 땐 양모나 캐시미어처럼 보온성을 극대화할 수 있게 바뀐다. 이 ‘꿈의 소재’는 원단 표면도 자유자재로 가공할 수 있다. 실크처럼 윤이 나게 짜면서도 탄력을 줄 수 있다. 마(麻) 소재처럼 보이도록 성기게 짜도 보온성은 전혀 떨어지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신소재 개발 덕분에 패션디자이너들 역시 소재의 특성에 신경 쓰지 않고 스타일 자체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소재 개발에서 앞서다 보니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이 창의력을 펼칠 기회를 먼저 얻게 됐다. ‘패션 한류’의 또 다른 원동력이다.

기술 진보를 바탕으로 한 상상력은 ‘개성의 극대화’라는 트렌드를 형성시켰다. 전 세계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유행을 따라잡게 되자 너무 비슷한 스타일이 많아져서다. 그래서 지역별 특색을 발휘하려는 움직임과 집단 안에서 개성을 표현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들의 창의성이 뻗어 나가는 동안 ‘무개성’을 주장하는 정반대의 움직임도 등장한다. ‘무엇이든 가능한 소재’로 ‘언제, 어디서든 같은 옷을 입자’는 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오늘 뭘 입을까에 고민하는 시간에 더 행복해지기 위해 생각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이 ‘21세기 히피’가 될지 아니면 ‘21세기 나치’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부 패션 전문가는 ‘이러다 영화에서처럼 모든 사람이 같은 옷을 매일 입는 광경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명품 대접받는 면 100% 티셔츠
2010년 60억 명을 넘긴 인구가 2020년대 중반 80억 명을 넘어선다. 자원 고갈 경고는 계속됐지만 인구는 꾸준히 늘고 사람들은 자원 소비를 멈추지 않았다. 천연소재가 부족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신 패션에서 ‘진짜 명품’은 ‘면 100% 티셔츠’ 같은 것이다. 21세기 초, 전 세계에 ‘패스트 패션’을 공급했던 동남아·중남미에서도 최근엔 면 100% 티셔츠를 1만원 이하로 만들지 못한다. 국제 면화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돈을 더 줘도 면 100% 소재를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가 등장했다. 미국의 온라인장터인 ‘e베이’는 자회사 ‘v베이’를 출범시켰는데 v베이의 최근 시가총액이 e베이를 추월할 정도다. ‘v베이’의 v는 ‘빈티지(Vintage)’를 뜻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유행의 한 부분일 뿐이던 빈티지 의류가 전 세계 의류 유통에서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산업의 또 다른 복병은 물 부족 현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전망했던 것처럼 지금 전 세계 인구 중 4분의 1이 물 부족 지역에 살고 있다. 패션에는 물이 필수불가결하다. 무엇보다 염색 과정에서 많은 물이 필요하다. 여기에 들어가는 물을 완벽히 재생할 수 없다면 당연히 이 물은 식수로 먼저 배정된다. 특히 저가 의류를 생산했던 나라들에서 물 부족이 심각해 의류 임가공산업을 기피한다.

옷 세탁 역시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소비자들은 패션 스타일을 고려하기에 앞서 ‘얼마나 세탁을 자주 해야 하는지’를 먼저 따지기 시작했다. 가전회사들은 앞다퉈 ‘물이 필요 없는 세탁기’ ‘물을 적게 쓰는 세탁기’를 판촉한다. 이런 가전제품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애초에 ‘때가 잘 안 타는 옷’을 구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울(Wool) 생산업자들은 ‘울이 가볍고 따뜻하다’고 얘기하는 대신 ‘울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이 박테리아를 죽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세탁을 덜해도 된다’고 광고하고 있다.

패션, 의학으로 눈을 돌리다
‘패션’ 혹은 ‘스타일’의 정의가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지만 2021년 패션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몸에 걸치는 것’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옷에 들어가는 생체 칩 덕분이다. 생체 칩은 옷을 입은 사람의 건강상태를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건강 이상을 감지할 때는 즉시 가까운 응급의학센터나 주치의에게 연결한다.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들의 돌발사 위험을 대폭 낮춰 주는 신기술이다. 전자업체들은 의복·의료 분야를 접목해 업(業)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전자업체들의 경쟁자로는 생체기술을 적극 응용하고 있는 프랑스 패션회사, 독일 의·약학 기업들도 있다. 패션산업 자체가 신종 산업으로 구분해야 할 세상이다.

전자업체들은 ‘근육 역할을 대신하는 옷’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근력이 약해진 중·노년층과 장애인 등에게 획기적인 기술이다. 관절이 약한 사람이라면 관절의 움직임을 돕는 옷, 허리 근력이 약한 사람에겐 허리 기능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옷이다. 전자업체들은 패션·건강·인간공학을 하나로 묶는 연구를 펼치면서 신제품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10년 약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던 패션산업 규모는 2020년께 10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물론 이 전망치에는 기존의 패션산업에다 의학과 운동처방학 등을 접목한 ‘신소재 기능성 패션’시장 규모가 추가된 것이다. 세계은행은 2010년 약 2조 달러(2350조원)로 추정하던 세계 의류산업 규모가 6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거대 시장과 소비력이 집중돼 있는 아시아 시장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반면 미국·유럽의 패션시장이 위축되는 추세도 뚜렷하다.

2021년 패션디자이너 김씨는 어젯밤 어릴 적 영화에서 봤던 ‘미래의 유니폼 사회’ 꿈을 꾸며 잠을 설쳤다. 상상도 하기 싫은 악몽이라 거부하고 싶지만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매일 반복해 입는 일상이 현실이 될까 봐서다. 김씨가 어제 뉴스를 보다 소스라치게 놀란 것만 해도 그렇다.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영화 속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고 있어서다. 이유는 역시 빈곤과 자원 부족이었다. 이 나라 정부는 우선 모든 사람에게 통일된 의복을 지급하고 자유로운 패션을 금지했다. 헐벗은 사람이 국민의 50% 이상인 현실에서 정부가 해법을 찾다가 내린 특단의 조치다. 이후 단계적으로 식량 배급과 식수 배급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 내며 오늘도 벽면의 가상 스크린 앞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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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