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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영감 얻은 곳 … 남에겐 말하지 않는 비밀의 땅

조너선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구상했다는 둔덕에 자리 잡은 디 아일랜드 링크스. 코스는 울퉁불퉁하고 이리저리 비틀려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강한 바람도 분다. 성호준 기자
124년 전 어느 날 신실한 열정을 지닌 네 명의 골퍼가 작은 배를 타고 신천지를 찾아 떠났다.
그들은 아일랜드의 로열 더블린 골프 클럽 회원이었다. 엄숙한 종교 때문에 일요일엔 골프를 금지한 클럽 정책에 반발해 새로운 골프장 부지를 찾아 나섰다. 완벽한 땅을 찾아냈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백사장과 작은 항구가 보이는 외진 둔덕 지역이었다. 신실한 골퍼에겐 천국 같은 곳이었다. 그들은 종교와 세상의 북적거림에서 벗어난 이곳에서 골프와 평화를 찾았다. 그들은 이 링크스의 이름을 디 아일랜드라고 지었다. 아일랜드 국가를 지칭하는 ‘Ireland’가 아니라 섬이라는 뜻의 ‘Island’다. 실제론 반도였는데 그들은 삼면이 바다인 이곳을 섬으로 생각했다.

사실 섬과 다름이 없었다. 육지와 연결된 땅이 늪지여서 1970년대까지도 이 골프장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30분에 한 번씩 12명이 승선할 수 있는 배가 떴다. 더블린에서 기차를 타고 온 골퍼들은 노를 저으며 몸을 풀었다. 배는 골프장으로 통하는 거의 유일한 관문이었기 때문에 선장이 중요했다. 초창기 디 아일랜드는 클럽 프로가 없었다. 선장이 그린 키퍼까지 겸했다.

클럽은 고요와 평온을 지키려 했다. 외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꺼렸다. 가능한 한 캐디도 쓰지 말라고 권유했다. 전통은 아직도 남아 있다. 코스는 멋지지만 다른 클럽처럼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다. 100대 클럽이든 뭐든, 다른 곳의 평가에 신경 쓰지도 않는다. 디 아일랜드에 처음 온 골퍼는 코스에 대해 거의 들어보지 않은 상태인 경우가 많고, 다녀와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코스를 자기만 즐기려고.

이 은둔의 코스를 소개한 사람은 시릴 멀리건(사진)이다. 그는 2년 전 스코틀랜드 여행 중 우연히 만나 함께 라운드를 한 아일랜드인이다. 한국에서 흔히 “몰간”이라고 하는, 공을 다시 한 번 더 친다는 뜻의 그 멀리건이다. 이 성씨가 아일랜드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실제로 멀리건과 함께 라운드하고 나니 매우 재미있었고 친해졌다. 라운드 당시 멀리건은 멀리건을 하나도 주지 않았지만 라운드 후 “스코틀랜드보다 아일랜드 링크스가 훨씬 더 좋으니 아일랜드 여행을 한 번 더 해보라”고 강력히 추천했다. 링크스 여행의 멀리건을 준 셈이다.

멀리건은 “디 아일랜드에서 라운드하는 것은 아일랜드의 숨겨진 보석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보석은 아일랜드해와 도나베이트 해변과 강의 하구가 만나는 곳이다. 아일랜드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골프장 앞 해변을 걸으면서 걸리버 여행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골프장이 된 이 커다란 둔덕을 보면서 거인국을 상상했고 작은 둔덕을 보면서 소인국을 그렸을 것이다. 멀레이드 항의 순백색 요트들이 태양에 반짝였고, 하얀 갈매기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강 하구 쪽으로는 애벌레 같은 작고 귀여운 초록색 기차가 가끔 지나갔다.

코스는 비틀렸고, 울퉁불퉁하고, 기이하고, 예상할 수 없었다. 페어웨이는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면서 왼쪽으로 꺾어졌고 또 반대로 간다. 둔덕은 높고, 낮고, 평평하고, 뾰족하다. 어떤 형태든 모두 아름답다. 삼지창처럼 바다로 돌출된 땅에 있는 후반 홀들이 백미다. 바다 쪽 홀에선 ‘아일랜드의 눈’이라는 바위섬이 보인다. 수녀원이 있던 곳인데 현재는 무인도다.

우리 앞 조는 미국인들이었다. 플레이가 느렸다. 멀리건은 해지기 전 라운드를 끝낼 수 있을지 걱정했다. 멀리건은 2년 전보다 부쩍 늙어 보였다. 그땐 5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그 사이 멀리건에겐 10년이 더 흐른 것처럼 보였다. 멀리건은 “더블린에서 경영하던 호텔 체인 등의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따뜻한 스페인으로 이주했다”고 했다. 유럽의 경제난 여파를 받은 듯했다. 그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더블린에 잠시 돌아왔다. 나는 그 때문에 아일랜드에 왔고 그는 나 때문에 아일랜드에 돌아왔다. 골프 인연은 생각보다 강하다.

올해 디 오픈 우승자인 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는 “디 아일랜드는 모든 클럽을 다 사용해야 하는 코스”라고 했다. 난 그렇지 못했다. 아일랜드의 강풍 속에서 스윙이 변형됐다. 롱아이언으로 약간 토핑성 훅을 내는 샷이 효과적인 것을 알게 됐는데 팔로 치는 이 스윙은 보기엔 별로였지만 보기 세이브를 하기엔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도 해괴한 스윙은 사라지지 않았다. 드라이브샷도 토핑성 훅이 걸렸다.

카트도 문제였다. 거금 20유로를 주고 모터가 달린 카트를 빌렸다. 이게 우파(右派)였다. 휠 밸런스가 맞지 않았는지 오른쪽으로 갔다. 속도도 엉망이었다. 페어웨이는 울퉁불퉁한데 오르막에서는 터무니없이 속도가 느렸다. 속도를 좀 올리면 내리막에 접어들어 빠르게 굴러 내려갔다. 손으로 끄는 카트가 훨씬 편했다.

멀리건은 나에게 골프 라운드에서는 절대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과 스윙 내내 상체 각도를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을 알려줬다. 둘 다 골프의 ABC다. 그걸 잊고 있었다. 상체만 움직이지 않았는데 14번 홀에서 나는 300야드 정도의 티샷을 때렸다. 나도 놀랐고 앞 조 느림보 미국인들도 놀랐다.

전동카트 조작법은 혼자 터득했다. 손잡이 끝을 잡고, 조금씩 방향을 전환해야 컨트롤이 된다는 것, 오르막에서 속도가 느려도 기다리고, 내리막길에서도 섣불리 속도 조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골프 스윙과 비슷했다. 그러나 그걸 알게 된 건 해가 뉘엿뉘엿 지고 라운드가 거의 끝날 때쯤이었다.

멀리건은 “인생에선 이제 할 만하다 싶으면 끝나는 게 많다”면서 “65세가 되면 내 말의 뜻을 훨씬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붉은 노을을 보면서 ‘긴 하루 지나고 석양이 물들어 오면 놀던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는 들국화의 노래 ‘사랑한 후에’가 생각이 났다. 그 음악을 듣던 청소년 시절의 기억이 났다. 아직도 그게 내 모습인 것 같다. 그러나 이미 20여 년이 지났고 나는 해가 지는 아일랜드의 디 아일랜드 링크스 둔덕에 서 있다. 멀리건은 옆에 있지만 멀리건도 멀리건을 받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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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