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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iz] 강태선 ‘마음 앞서면 발 뒤처진다 ’ … 산의 가르침이죠




야크는 티베트 고원에 산다. 히말라야 원정대의 등산 장비를 실어 나르는 동물이다. 대부분 검은색이다. 얼굴엔 하얀색 점박이 무늬가 있다. ‘블랙야크’ 브랜드는 1993년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등반 중에 강 사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의 아웃도어 시장은 올해 4조원 규모로 미국·독일에 이어 셋째라 한다. 컬럼비아, 노스페이스, 라푸마 같은 외국 브랜드, 그리고 블랙야크, 코오롱, K2 같은 국산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블랙야크는 토종 브랜드 중 ‘맏형’이다. 전신인 ‘동진산악’이 설립된 게 1973년이니 38년 된 회사다. 계엄령 발동, 야간통행금지 해제, 취사·야영 금지, 외환위기 같은 사회 변화와 함께 성장해 왔다.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해 중국에만도 200개 매장을 갖고 있다. 강태선(62) 블랙야크 사장은 동진산악 창립자다. 그러면서 산악인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산악회 활동을 꾸준히 했다. 히말라야 원정도 10여 차례 다녀왔다. 원정에 나서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가까이 회사를 비운다. 강 사장에게 “경영은 곧 고산등반이요, 고산등반은 곧 경영”이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강태선 사장은 동진산악을 나이 스물셋에 만들었다. 등산용품이란 것이 따로 없고 군용 수통, 텐트 따위가 등산용품으로 대용되던 시절이다.

●1973년에 시작하셨으니, 참 일찌감치 아웃도어 시장에 뛰어드셨습니다.

 “제가 제주도 출신입니다. 학창 시절 한라산을 열심히 다녔죠. 그래서 산에 관심이 많았어요. 국내에서 등산용품을 직접 만들어 판 것은 제가 처음이에요. 재봉틀 사다 놓고 직원이랑 둘이 등산 배낭부터 만들었어요. 매장이 공장이면서 제 숙소였어요. 등산장비 시장이라고 해봐야 군용장비를 개조한 것이거나, 아니면 외제 중고 장비를 파는 정도였지요.”

 동진산악은 동대문(종로5가)에서 시작했다. ‘프로자이언트’라는 브랜드를 써오다 96년부터 ‘블랙야크’라는 브랜드를 쓰고 있다. 내후년 2월이면 만 40년이 된다. 설립 당시 전화번호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당시 백색 전화라는 게 있었어요. 번호를 유지하면서 전화기 주소를 옮길 수 있는 전화였죠. 그때 가격으로 100만원이 넘었어요. 그 번호를 종로5가에 있는 첫 매장에서 지금도 그대로 씁니다. 옛 고객들이 지금도 그 번호로 전화하세요. 30년 전 브라질로 이민 가셨다는 분이 몇 년 전에도 그 번호로 전화를 주셨어요. 저랑 연결이 돼 옛날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빠졌었죠.”

 블랙야크는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발전했다. 정치적 격변이 때론 시련으로, 때론 기회로 다가왔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이 해외 브랜드에 열리기 전 블랙야크 스스로 몸집을 크게 불린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93년의 ‘현대자동차 사원용 침낭 납품’이다. 현대자동차가 ‘새 쏘나타 출고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선물로 줄 침낭이 필요하다’며 침낭 제작업체를 불러 모았다. 문제는 ‘보름 만에 3만2000개를 만들어달라’는 조건이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었어요. 장사가 잘된다는 우리 회사가 1년에 파는 침낭이 1만 개였으니까요. 그런데 보름 만에 어떻게 3만2000개를 만듭니까. 다들 ‘못한다’고 손을 저었죠. 그때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안 되는 것을 하라는 사람도 문제가 있지만, 안 한다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것도 하나의 도전인데, 한번 해보자’. 그래서 제가 그 자리에서 ‘내가 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저 친구, 농담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직원들도 반발했겠습니다.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능성 있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 고비를 넘기면 우리 회사가 크게 달라진다’고 했죠. 산에서 취사 및 야영이 금지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요. ‘우리가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설득했죠.

 이 사건을 계기로 직원들도, 현대자동차에서도 블랙야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덤으로 현대차 사택에 블랙야크 매장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매장을 10년 가까이 운영했다.

 외환위기 때이던 1998년 1월 블랙야크가 중국에 베이징점을 낸 것도 업계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강 사장에 따르면 “중국 전체를 통틀어 첫 아웃도어 전문 매장”이었다.

 “제가 1994년 중국에 50만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차렸다가 보기 좋게 말아먹었어요. 그때만 해도 중국인을 소비자로 보지는 않았죠. 그러다 98년에는 제가 대한산악연맹 부회장을 할 땝니다. 중국등산협회 관계자를 만났는데 ‘중국에도 등산장비점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을 돌아보니까 장비점이 하나도 없어요. 제가 동대문에서 등산장비업을 처음 시작할 때 상황이랑 똑같은 거예요. 내가 동대문에서 등산장비점 처음 할 때도 정신 나간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어요. 그래서 ‘미친 놈 한번 더 돼보자’ 싶었죠.”

●지금은 중국 매장이 몇 갠가요.

 “200개 정도 됩니다.”

●중국에서의 매출도 크겠습니다.

 “3년 안에 매장을 1000개로 늘리려 해요. 그 정도 되면 한국 매출을 앞지르지 않겠나 싶습니다.”

●국내 매출은 어떤 규모인가요.

 “지난해 블랙야크 브랜드로만 2300억원을 했어요.”

●항간에 아웃도어 용품이 너무 비싸다는 여론도 있는데요.

 “아웃도어 용품은 가격대 폭이 굉장히 넓어요. 싼 것은 1만원짜리도 있고, 비싼 것은 100만원짜리도 있거든요. 상위 가격대만 보면 굉장히 비싸게 보이죠. 이런 것은 원단이 양복 원단보다 더 비쌉니다. 양복은 일자로 잘라서 봉재합니다만, 등산장비는 기능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S자로 자릅니다. 그래서 원단 손실이 많이 나죠.”

 강 사장은 이 부분에선 정색하고 대답했다. 산악인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제품에 대한 긍지가 강한 듯했다.

 “돈만 추구했으면 쉽게 돈 벌 기회는 많이 있었어요. 제가 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창업자들을 일찍 사귀었어요. 이 친구들이 다 산악인 출신이에요. 그래서 히말라야 가면 다 만나요. 그러니까 제가 산악인으로서 산악인을 위한 옷을 만든 것이죠. 그래서 산을 진짜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우리 옷을 입으면 좋겠다 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지금도 1, 2년에 한 번씩 원정을 가시죠. CEO가 오래 회사를 비워도 되나요.

 “제가 회사 안에 있다 보면 욕심이 생깁니다. 그럼 나를 돌아볼 시간이 적어져요. 그런데 원정을 가면 편안하게 나를 돌이켜보게 됩니다. 내가 해온 일, 앞으로 할 일 이런 게 정리돼요.”

●아무튼 장기간 회사를 비우게 되는데요.

 “길게는 석 달까지 나가 있어봤어요. 나가 있는 동안에는 회사와 일절 연락을 안 합니다. 원정대의 성공만 기도해야 하니까요. 다른 분들은 ‘회사랑 연락도 안 한다는 것은 거짓말 아니냐. 그래서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느냐’ 하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그동안에는 직원들이 CEO 역할을 하겠군요.

 “그렇죠. 우리 직원들이 너무나 고맙게 일을 잘해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블랙야크의 철학은 어떤 것인가요.

 “얼마 전 ‘수입 브랜드나 한국 브랜드나 라벨만 가리면 구별이 안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제가 그때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디자인에 관여합니다. 블랙야크에는 히말라야의 혼이 실려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야크의 생활습관이 배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블랙야크 의류는 장비다’ 이런 표현을 씁니다. 야크는 말입니다(14면 참조), 밭을 갈아주고, 추울 때엔 털을 제공하고, 죽어선 고기를 줍니다. 이처럼 블랙야크도 산악인을 위해 봉사하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일까. 블랙야크는 이런저런 사회공헌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제9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에선 티셔츠를 협찬했다. 주최 측은 참가비 수입 중 6000만원을 유니세프(UNICEF)에, 그리고 2000만원을 장애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을 돕는 푸르매 재단에 기부했다. 블랙야크는 중국 만리장성 보호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 덕에 블랙야크가 중국에서 아웃도어 브랜드 중 인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고 강 사장은 자랑했다.

 강 사장은 엄홍길 대장, 오은선 대장 같은 산악인을 후원해 왔다. 이들과 함께 히말라야도 여러 차례 갔다. 강 사장이 원정대장을 주로 맡았다.

●산과의 인연이 참 각별합니다.

 “산이 아니었으면 제가 방황을 많이 했을 거예요. 제가 성질이 좀 급한 편입니다. 그런데 산에선 말입니다. 마음이 앞서면 성공을 못해요. 마음이 앞서면 엉덩이가 뒤로 빠집니다. 발이 따라오지 못해 빨리 지칩니다. 그런 까닭에 산에 가면 제 성격을 다스리게 됩니다.”

●마음이 앞서면 다친다는 것은 경영이나 등산이나 똑같군요.

 “똑같습니다. 돈 벌기 싫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나요. 하지만 ‘오버페이스’를 해서 탈진하거나 넘어져서 다치면 뭐가 됩니까. 올라온 것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는 거죠.”

●배우 조인성이 모델로 등장하는 블랙야크 광고를 실제로 히말라야에서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광고회사에선 ‘히말라야 느낌만 내면 되지 않느냐. 뉴질랜드에서 가서 찍자’고 했는데, 내가 고집을 했습니다. 이제는 소비자가 똑똑합니다. 소비자가 다 아니까요. 그래서 히말라야에 가서 찍었습니다. 날씨가 나빠 헬리콥터가 못 들어가는 바람에 철수할 때 3일간 ‘감금’을 당했다 하더군요. 난리 났었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고요.”

●정직한 경영을 추구하시는군요.

 “산은 정직하잖아요. 산이 나한테 가르쳐준 거예요. ‘절대 거짓말하지 말라’고 제게 가르쳐준 겁니다.” 


외환위기 때 늘어난 ‘사모님’ 등산

“남편 것은 중저가 사도 자신 건 비싼 거 사던데 …”


아웃도어 시장은 정치적 격변과 맞물려 성장과 시련을 경험해 왔다. 가정의 경제권이 남편에서 아내에게로 넘어가면서 아웃도어 시장의 타깃도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었다.

●아웃도어 시장은 정치적 격변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그렇습니다. 10·26 나고 나서 굉장히 어려웠죠. 전두환 정권 들어서고 계엄령이 발령되면서 사람들이 산에 가질 못했죠. 그때 등산장비 업체들이 싹 없어졌어요. 그러다 계엄령 해제되고 야간통행금지가 풀리면서 ‘무박 산행’이라는 게 생겨났어요. 갑자기 수요가 생기는데, 장비업체가 우리 말곤 거의 없었죠. 그때는 구멍 뚫린 것까지 사람들이 다 사갔어요. 그래서 현대그룹만 빼놓고는 대기업들이 다 이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블랙야크가 이긴 것인가요.

 “대기업 쪽에서 보면 생각보다 매출이 많이 안 나온 거예요. 그러다 88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대기업들이 스포츠용품으로 다 돌아섰어요. 정부에서도 88올림픽을 스포츠산업 육성 기회로 잡았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등산복이 보편화되진 않았는데요.

 “그때는 산에 가서 삼겹살 구워 먹고, 하룻밤 자고 오는 게 최고의 행복이었죠. 그래서 텐트, 침낭, 코펠, 버너 같은 게 많이 나갔습니다.”

●외환위기 때도 등산 인구가 많이 늘었는데요.

 “등산 인구는 늘었는데, 소비는 안 늘었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외환위기 때 여성들이 등산을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왜 그럴까요.

 “당시엔 일자리 잃고 아내 몰래 직장 대신 산에 가는 남자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직장 잘렸는지 물어보지 마라. 주말에 남편과 산에 가서 자연스럽게 물어봐라’ 이런 보도가 많이 나왔어요. 그래서 부인들이 산에 많이 갔습니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2000년께 남편들이 재취업했죠. 그런데 아내들이 생각해보니까 그때 남편이랑 산에 가본 게 괜찮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여자들이 ‘우리끼리 산에 가볼까’ 하며 등산 붐이 일기 시작한 거예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산에 가기 시작한 게 2002년, 2003년입니다. 외환위기가 우리 아웃도어산업에는 1등 공신이에요.”

●남성복과 여성복 중 어느 쪽이 높습니까.

 “여성복 매출이 더 높습니다. 53대47 정도예요. 2000년 전에는 여자 옷을 남자들이 사다 줬어요. 그런데 경제권이 아내에게 넘어가면서 요즘은 남편 것을 아내가 사갑니다. 여성이 안 사주면 남편은 등산복을 못 입어요.”

●남성으로선 약간 슬픈 일입니다.

 “남편 것도 여자가 맘에 들어야 사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아내가 자기 것은 고가를 사고, 남편 것은 중저가를 사요.”

●진짜요.

 “제가 매장에서 사모님들이랑 직접 대화하니까 잘 알죠. 제가 ‘남편 것도 좋은 것으로 사시죠’ 하고 권하기도 하죠. 그럼 사모님들이 ‘우리 남편은 제가 똑같다고 하면 똑같은 줄 알아요’ 하고 웃습니다.”

●여성복이 단가가 더 높습니까.

 “더 멋있게 만들죠. 그러니 당연히 조금 더 비싸겠죠. 하하하.” 


What Matters 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산입니다. 산이 없었으면 생활의 안정이 안 됐을 거예요. 산에 다니면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요. 또 산을 다니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법칙을 배웠어요.”

야크는 티베트 고원에 산다. 히말라야 원정대의 등산 장비를 실어 나르는 동물이다. 대부분 검은색이다. 얼굴엔 하얀색 점박이 무늬가 있다. ‘블랙야크’ 브랜드는 1993년 엄홍길 대장이 히말라야 등반 중에 강 사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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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