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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니싱 고우즈’서 맹활약하는 한인 배우…레이몬드 리





레이몬드 리(한국명 이장욱)는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유일하다시피한 한국계 배우다. 요즘 올해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상, 여우주연상 및 안무상을 거머쥔 히트 뮤지컬 ‘애니싱 고우즈 ’에 고정 출연 중이다. 브로드웨이는 ‘위대한 백색의 길(The Great White Way)’로 불린다. 극장가의 조명이 밤에 훤히 빛나기 때문이지만 백인만의 길이라는 의미이기도 한 걸까. 레이몬드 리는 아직도 아시안에겐 ‘길고도 험한(long and winding road)’ 길인 브로드웨이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록 뮤지컬 ‘렌트’의 주인공 마크 역도 아시안이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직은 작은 역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싶어요. 아시안도 그들처럼 춤·노래·연기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진·글=박숙희 문화전문기자


●브로드웨이에 한국인 배우를 눈 씻고봐도 찾기 힘들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인 부모를 둔 배우로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애니싱 고우즈’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이전에 4년반 동안 ‘맘마미아’에서 에디 역으로 출연했다. 그러나 ‘애니싱 고우즈’의 두 중국인 캐릭터를 찾는 오디션에 갔다. 둘을 따로 뽑지 않았고, 함께 있을 때 둘이 잘 어울리는가를 보더라. 그래서 내가 알코올 중독자 출신 존으로, 앤드루 카오가 도박사였던 루크로 캐스팅된 것이다.”

●존의 역할이 특별한가.

 “연출자 캐슬린 마셜은 처음에 존과 루크를 스테레오타입의 중국인이 아니라 기분 나쁘지 않은 인물로 만들고 싶어했다. 우리는 웃기면서도 과장되지 않고 리얼한 인물을 생각했다. 그래서 존은 뭐든지 신봉하는 인물로, 루크는 무임승차해 런던까지 가려는 영리한 중국인이 됐다.”

●1막 마지막 장면의 탭댄스가 숨막힐 정도로 압권이다. 춤은 어떻게 배웠나.

 “사실 난 가수지 댄서가 아니었다. 탭댄스가 7분 정도 계속된다. 존 역할을 맡은 후 탭댄스를 하는 모든 친구에게 연락해서 배웠다. 탭댄스는 정말 놀랍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 탭댄스를 배우게 해달라고 조른 적도 있었는데, 이젠 내가 브로드웨이에서 탭댄스를 하다니! 아직은 초보자이지만!”

 애틀랜타에서 전기공학자 이세훈씨와 약사 안지원씨의 장남으로 태어난 레이몬드는 여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어느 날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Singing in the Rain)’을 보면서 진 켈리처럼 탭댄스를 추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부모의 희망은 여느 한인 부모처럼 의사 아들을 두는 것. 부친의 모교인 노스웨스턴대 프리메드에 진학했다. 재학 중 커뮤니케이션(TV/라디오/영화)과로 전공을 바꾼 후 ‘묻어두었던 꿈’을 다시 발견한다.

●바이올린이 뮤지컬에 도움이 되나.

 “난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부모님이 ‘사라 장이 한다면 너도 할 수 있어’ 하면서 날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고 싶어하셨다. 고등학교 때 케네디센터와 카네기홀 메인홀에서 내셔널유스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제 2주자로 연주를 했다. 난 연주는 잘했지만 내가 지금 뮤지컬에서 느끼는 것만큼 음악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롤모델이 있었나.

 “우리 부모님이 롤모델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채로 미국에 와서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사셨다. 나도 일종의 일중독자라서 지금도 어머니가 ‘쉬어 가면서 하라’고 말씀하신다.”

●자신 속의 한국적 유전자가 있다면.

 “사실 난 2세지만, 한국 ‘원주민’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한국 드라마를 봤고, K팝을 들으면서 자랐다. 내가 처음 산 CD가 서태지 앨범이었다. H.O.T.가 내가 즐겨보던 ‘수퍼 선데이’에서 ‘캔디’로 데뷔한 것도 기억난다. 난 늘 한식을 먹는다!”

●한국어도 좀 하나.

 “초등학교 4∼6학년 때 아버지 직장 일로 서울 이태원에서 산 적이 있다. 동생(알버트)과 난 대학교에서도 한국어를 선택했다. 어릴 적 나는 영어로 말하고, 부모님은 한국어로 말씀하셨다. 어려서는 내가 못 알아듣는 줄 알고 별 말씀을 다하셨다. 하하.”






●고등학교 때 연극반에서 활동했다. 어떤 역을 맡았나.

 “인종차별이라면 할 이야기도 무지무지 많다. 학교에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있었지만, 엄격했던 지도 교사는 주역에 아시안을 캐스팅하지 않았다.”

●의대에서 배우로 전향하는데, 부모의 반응은.

 “부모님이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내가 하버드나 예일 같은 아이비리그에 못 가는 것을 섭섭해하셨다. 메릴랜드대에서 전액 장학금 제안을 받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입학 허가서가 왔다. 부모님은 인근 메릴랜드대에 가기를 원하셨지만, 난 부모님의 우산에서 벗어나 독립하고 싶었다. 그래서 노스웨스턴 프리메드에서 화학을 전공하게 됐다. 그런데 의사는 부모님이 원하신 것이었고,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난 TV프로듀서가 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과로 전공을 바꾸었다. MTV 프로듀서를 거쳐 뮤지컬 배우가 된 것이다. 부모님은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잘 알기 때문에 아직도 ‘너 정말 의사나 변호사가 안 될래?’ 하신다. 내 동생은 컬럼비아대를 거쳐 지금은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MBA 과정 중이다. 부모님이 우리의 그 비싼 등록금 대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난 숫자에는 젬병이고, 배우가 된 것이 정말 행복하다.”

●장남이라서 더 부담이 컸겠다.

 “정말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장남, 장녀의 역할이 얼마나 큰가! 디즈니 크루즈에서 ‘라이언 킹’의 심바 역으로 출연하면서도 부모님께 MTV 일로 지방에 간다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 대신 몇 년 전 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내려가서 효도했다. 아버지가 조지아텍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의학 전문용어는 모르셨다. 내가 의예과를 다닌 덕에 의학 용어를 통역도 해드리고, 간호도 열심히 했다. 요리, 청소 같은 건 못해도 간호엔 자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초기에 암을 발견해서 지금 치유되었다. 플로리다 탤러해시에 사는 부모님은 아직도 ‘애니싱 고우즈’를 못 보셨다.”

●브로드웨이에서 아시안 남성이 맡을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은.

 “아시안 남자가 맡을 수 있는 작품이 정말 드물다. 난 아시안도 백인들처럼 노래·춤·연기를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부수는 선구자가 되고 싶다. 내가 처음 본 뮤지컬 ‘렌트’는 ‘팬텀 오브 오페라’처럼 오페라식 발성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팝이라서 너무 좋아했다. 주인공 마크 역을 해보고 싶다. 또 ‘스펠링 비’도 올 아시안 캐스팅으로 한번 개작해서 공연하고 싶다. 또 언젠가 한국에 가서 리사이틀을 하는 것도 꿈이다.”

●아시아계 배우들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아시안 배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예능 산업에서 아시안들이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도록 연출·제작·작가·안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시안 인재들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대 뒤에서 아시안 배우들을 위한 역할을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을수록, 아시안의 무대는 더 넓어질 것이다.”

●다음 계획은.

 “웃기는 얘기지만, 사실 배우들은 다음에 뭐할지 모른다. 다음 작품을 오로지 기대할 뿐이다. 배우로서 더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 말이다. 난 현재 TV용으로 몇 가지 대본을 쓰고 있다. 이와 동시에 영화·TV·광고 등의 오디션도 보고 있다. 나의 희망은 언젠가 브로드웨이에서 주역을 맡아 토니상을 수상하는 것이다!”

뮤지컬 ‘애니싱 고우즈(Anything Goes)’

1934년 콜 포터 작곡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전설적인 뮤지컬 배우 에델 머만이 출연했다. 이후 87년 패티 루폰 주연으로 링컨센터에서 공연됐으며, 올해 스티븐손하임시어터에서 리바이벌됐다. 대공황기 뉴욕에서 런던으로 가는 럭셔리 크루즈에 타고 있는 나이트클럽 가수, 증권업자, 사교계의 여성, 신부로 위장한 갱, 개종한 중국인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캐슬린 마셜이 연출과 안무를 맡았으며, ‘모던 밀리’의 서튼 포스터가 주연해 올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상, 여우주연상 및 안무상을 거머쥐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인디애나 존스 2’(1984) 오프닝 장면에 ‘애니싱 고우즈’를 삽입했다. 부인이 된 케이트 캡쇼가 중국어로 ‘애니싱 고우즈’를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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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행복이다. 내가 의대에 가서 부자가 되고, 경력도 잘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내가 열정을 바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의사가 됐더라면 난 불행했을 것 같다. 삶은 후회 없이 한껏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내 평생 일을 열심히 할 것이며, 또한 나 자신과 내 일에 만족하며 행복할 것을 항상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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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