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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한글 창제 반대한 최만리 … 책임질 줄 아는 ‘꼴보수’ … 돌만 맞기엔 억울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만리는 억울하다. 내일(9일)이 한글날인데, 매년 이맘때면 동네북이 된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에 반대했다는 죄목이다. 그는 과거에 일찍 급제해 벼슬길을 두루 거쳤다. 수재였을 뿐 아니라 청백리이기도 했다. 사찰을 중수(重修)하려는 세종의 뜻을 꺾을 정도로 성품이 대쪽 같았다.

 훈민정음 창제 두 달 뒤인 1444년 2월 20일 최만리는 몇몇 학자와 함께 한글 반대 상소문을 올린다. 그로서는 인생 최대의 오점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자뻑’이었다. 상소문 자체는 간곡하고도 논리정연하다. 중국 중심의 유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확실하게 소신을 펼쳤다. 새로 만들어진 언문(한글)에 대해 “지극히 신묘하여 실로 천고에 뛰어나다”고 먼저 칭찬을 올린다. 집현전에 오래 근무해 한글 창제 과정을 다 알고 있던 최만리였기에 단순한 립서비스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칭찬은 거기까지. 최만리는 고유 문자 제작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며, 특히 중국을 사대(事大)하는 국가 방침에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나라 생존을 위해 사대교린(事大交隣) 외교를 중시하던 세종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었을 것이다. 세종 자신도 명나라 영락제가 죽었을 때 신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상복을 27일간이나 입었고, 보라매를 잡아 바치라는 명의 소소한 요구까지 껌뻑 죽는 시늉을 해가며 따르지 않았던가. 상소문에 비하면 세종의 반박은 다분히 ‘끗발로 누르는’ 듯한 인상이다.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는 힐난은 워낙 언어학 공부가 잘돼 있었으니 지식 자랑을 했다 치자. “너희가 설총은 옳다 하면서 군상(세종)이 하는 일은 왜 그르다 하느냐” “신하로서 내 뜻을 잘 알면서도 이런 말을 하느냐”는 대목은 꽤나 감정적이다.

 최만리는 당대의 정통보수였다. 그렇기 때문에 세종의 혜안과 천재성이 더욱 빛난다. 최만리는 세종과 다툰 뒤 사표를 던지고 낙향했다. 자기 세계관에 따라 행동하고 책임도 지는 보수다.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흑산도의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 유배지에는 ‘기봉강산 홍무일월(箕封江山 洪武日月)’이라는 면암의 친필이 새겨진 바위글씨가 있다. 이 나라는 일본 땅이 아니라 홍무제(주원장)가 세운 명나라 신하국이라는 뜻이다. 최만리의 세계관이 500년을 뛰어넘어 19세기 말 정통보수 최익현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 1908년 13도 연합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다 부친상을 당하자 “효(孝)와 충(忠)은 하나”라며 총대장직을 내던지고 고향에 가버린 이인영(1868~1909)은 또 어떤가. 정통보수와 꼴통보수는 종이 한 장 차이일까. ‘지키기 위해 변한다’고 했다. 수구(守舊)에 집착하는 보수는 제대로 된 보수가 아니다. 최만리의 수구를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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