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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일본학자도 푹 빠진 ‘놀라운 한글’





한글의 탄생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돌베개, 448쪽, 1만5000원


진정한 혁신은 세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관념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이틀 전 사망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500여 년 전 이 땅에도 그런 인물이 있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1397~1450)이다. 한글의 탄생은 단순히 한국어 화자에게 ‘나랏말씀’이 문자와 일치되는 차원이 아니었다. 인류언어사에서 전혀 새로운 ‘지(知)의 혁명’의 시작이었다.

 그 놀라운 혁명의 깊이를 헤아린 이 책이 일본인 학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글의 탄생은 언어사적 기적에 비길 만하다. 사진은 안상수의 타이포그래피 ‘한글문자도’ 연작.

현재 아키타(秋田) 국제교양대학 객원교수로 재임 중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는 원래 미술작가 출신이다. 독학으로 한글의 매력에 빠져 1983년 서른 나이에 도쿄외국어대 조선어학과에 입학했다. 일본어권 독자를 위해 펴낸 이 책은 2010년 제22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마이니치 신문사-아시아 조사회 주최)을 탔고 그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다.

 책은 일명 ‘알파벳 로드’를 통해 한글의 기원을 추리한다. 서방에서 흘러온 자음자모 중심의 알파벳 시스템이 한글에 이르러 모음에 확실한 역할을 부여한 단음문자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글 자음자모는 발음기관의 형태를 본떠 ‘음의 상형’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만들어졌다.

 형태음운론적 혁명이 전부가 아니다. 정수는 4장 ‘정음 에크리튀르 혁명’에 있다.(‘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약어이자 근대 주시경 학파에 의해 ‘한글’이란 이름을 받기 전 명칭이다. 프랑스어 에크리튀르는 ‘쓰는 것, 쓰여진 것, 쓰여진 앎’을 통칭하는 말이다.) 저자는 세종의 마음으로 걸어 들어가 한글 창제의 원리를 헤아렸듯, 15세기 조선 지식인의 마음이 돼 최만리의 상소문을 풀어낸다.

 상상해보라. 어느 날 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새로운 문자체계로 글쓰기를 하란다. 수천 년간 한자한문으로 시를 읊고 국사를 논해온 그들에게. 게다가 그 문자란 게 상형과 표의로 이뤄진 한문과 전혀 궤를 달리 하는, “음에 의거하여 글자를 합치는”(用音合字· 용음합자) 식이다. 이는 문자와 세계와의 근간을 뒤흔드는 “옛것을 거스르는 일”(盡反於古· 진반어고)이다. 천동설을 부정 당한 듯한 최만리파에 맞서 정음파의 반격은 간결했다. “바람 소리, 학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모두 써서 나타낼 수 있다.”

 그렇게 이 땅에 글이 탄생했다. 세계 어느 언어보다 의성의태어(오노마토페)가 풍부한. ‘살랑살랑 봄바람에 두근두근 마음이 뛰는’ 우리 감성과 문화가 자유자재로 쓰이게 됐다.

미술을 전공한 이력에 걸맞게 저자는 한글의 모양과 형태(게슈탈트)에서도 혁명적 변화를 포착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나타난 정음의 자획이 붓글씨쓰기보다 당시 출현한 인쇄술에 걸맞은 꼴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더 위력을 발하는 한글 타이포그래피 예찬이기도 하다.

 저자가 적시하고 있다시피 한글의 가장 큰 위기와 수난은 일제강점기 동안 벌어졌다. 일본인 학자의 한글 예찬이 새삼스러운 이유다. 분명한 것은 저자의 시각이 민족주의 자장 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말이 문자가 된다’는 세계 언어사상 유례없는 기적의 순간을 정음의 창제원리를 통해, 이를 현현하고 있는 『훈민정음』을 통해 풀어가는 보편주의 시각이 감동적이다. 국내 유수 국어학자들의 감수와 유려한 문체를 살려낸 번역 덕에 애초 한글로 쓰인 책처럼 매끄럽게 읽힌다. 마침 565돌 한글날(9일)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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