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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이야기 나누며 넘은 새재, 가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청소년 12명이 문경새재를 넘었다. 지난달 24∼25일 (사)한국의 길과 문화(이하 길과 문화)가 주최한 청소년 여행문화학교 프로그램에 참가한 서울 삼성학교 학생들 이야기다. 이들을 따라 1박2일 걷기 여행을 다녀왔다. 어느 때보다 말수가 적은 여행이었다.



청각장애 청소년 1박2일 걷기여행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문경 새재로 1박 2일 도보 여행을 떠난 서울 삼성학교 학생들과 멘토 선생님들이 제 3관문을 통과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통과하고 있는 일행.







# 청각장애 아이들의 특별한 능력



서울 삼성학교 김미경(43) 교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불안감을 드러냈다. 말하는 것도 불편하고 듣는 것도 힘든 아이들이 외부 사람들과 어울려 1박 2일 동안 걷기 여행을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처럼 생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 시작되자 김 교사는 이내 괜한 걱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낯선 환경에 호기심이 발동한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했다. 듣지 못하는 대신 더 잘 볼 수 있었다. 초가지붕 위의 호박도 제일 먼저 보고, 개가 시끄럽게 짖는 바람에 지나칠 뻔했던 소도 발견했다.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아이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발견했다. 나무 기둥에 붙은 이끼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알려 주지 않아도 만지고 맛보고 냄새를 맡아 길 옆에 난 식물이 들깨라는 것을 스스로 배웠다. 김 교사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표현은 딱 우리 아이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며 “이 아이들에게는 야외에 나와 많은 것을 보고 만지고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라며 흡족해했다.



 350년 된 서낭당나무 밑에서는 문경새재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조선시대 경상도 선비들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갈 때 소백산맥을 넘어야 했다. 죽령으로 가면 길이 미끄러워 과거시험에서 미끄러지고,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문경새재를 통과하면 새처럼 훨훨 날아 철썩 붙는다는 김 교사의 수화통역에 아이들은 즐거워했다.











# 문경새재 길 걷기



이번 여행의 주된 일정인 문경새재 길 걷기는 충북 괴산 이화여대 수련원에서 출발했다. 조령산 자연휴양림을 거쳐 3관문∼2관문∼1관문으로 이어지는 약 8㎞ 코스로 4시간 정도가 걸렸다. 휴양림에서 3관문까지 가는 길은 비좁고 가팔랐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신이 났다. 뒤에서 장난을 치던 남학생들이 어느새 늠름한 길잡이가 돼 앞장섰다. 힘들어하는 멘토 선생님의 손을 끌어주면서 3관문에 도착했다.



 2관문에 접어들자 해는 점점 뜨겁게 내리쬐고 발도 아프기 시작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휴식. 용담폭포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하나 둘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새침한 표정으로 점잔을 빼던 김경희(17)양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계곡 물에 발을 담그니 이제 안 아프다”고 수화로 말하며 밝게 웃었다.



 길을 걷는 내내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일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는 첫 만남 때의 어색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김관(17)양은 멘토 선생님을 이모라고 부르면서 장난을 걸어왔다. 길과 문화 윤문기 사무처장은 이런 아이들을 보며 “여행 내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줘 고마웠다”며 “아이들과 함께 걷는 동안 내가 더 행복해졌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이번 여행이 매우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박상욱(16)군은 “친구 태완이와 여행을 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더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고 수화로 수줍게 말했다. 평소 부끄러움이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던 임지연(17)양은 수화가 아닌 언어로 여행 소감을 발표했다. 사실 지연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용기 내서 끝까지 이야기해 준 지연양에게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내 줬다.



 

●청소년여행문화학교 지난해부터 도보여행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청소년 여행 프로그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사)한국의 길과 문화(www.tnc.or.kr)가 주최한다. 한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 장애학생, 가출 청소년 등 소외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 전문상담사와 문화생태탐방로를 함께 걷는 것이 주내용이다. 멘토링을 통한 심신의 치유와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서울 삼성학교 학생들과 다녀온 문경새재 여행이 19번째 행사였다. 02-6013-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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