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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중국 학자가 중국 사료로 연구한 6·25전쟁







정용환
홍콩 특파원




“김일성이 기획해 일으킨 조선전쟁(6·25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다. 그런데도 내부에서 그 기원과 책임에 대해 엉뚱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그동안 국군포로와 납북 양민들의 귀환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홍콩 금융가 센트럴에서 만난 데이비드 추이(57·徐澤榮) 박사는 6·25전쟁의 기원을 중국 자료로 추적해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인민해방군 기밀문서를 인용했다가 11년간 옥고를 치르고 지난 6월 석방됐다.



▶<중앙일보 10월 4일자 3면>



 책임 소재가 명백한 이 전쟁의 뒤처리 과정에서 그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포로 송환 문제로 줄다리기를 하며 2년을 끌었던 휴전 회담이었다고 한다. 1951년 7월 시작된 휴전회담에서 연합군 측은 13만여 명의 포로가 북한에 억류돼 있다고 주장했지만 북한 측은 1만10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진 월북자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그는 이를 “죄진 자가 되레 큰소리 뻥뻥 치는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추이 박사는 “한국군을 비롯한 연합군 측은 중국 인민해방군(중국에선 인민지원군 이름으로 파병) 포로의 자유 송환 원칙에 따라 대만으로 1만여 명을 보냈다. 대만 타이베이(臺北)의 중정기념관에는 당시 대만 총통 장제스(將介石·장개석)와 포로들이 찍은 기념 사진이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국군 포로와 납북자들을 억류하고 있는 것은 국제적으로 불공평한 처사라고 단정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 귀환한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내 생존 국군포로는 500여 명이다. 이들에겐 시간이 얼마 없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귀환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또 “6·25전쟁은 무력으로 통일하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김일성이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의 지원을 업고 동족을 향해 총탄을 날린 ‘불의(不義)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을 도와 참전한 중국의 학자가 자국 사료를 바탕으로 한 엄정한 연구 결과 전쟁 책임이 김일성에게 있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자연발생적인 내전설이나 남침유도설, 또는 쌍방책임설을 퍼뜨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면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용환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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