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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에 올리는 음식 가득 … 고려시대 ‘타임캡슐’ 열렸다

‘안개가 짙어진다. 조금 전까지 장기를 두며 여유를 부리던 선원들이 잔뜩 긴장한 채 위치로 돌아간다. 배에는 여수에서 강화도에 올리는 곡식이며 젓갈 등 짐이 잔뜩 실려 있는 터다. 남해에서 서해를 거쳐 강화로 향하는 뱃길, 충남 태안의 마도 앞바다는 지름길이자 모든 배의 나들목이다. 그러나 안개가 짙고 사고가 잦아 고려 배의 무덤이라 불린다’.



750년 전 태안 앞바다 난파, 마도3호 공개 … 원형 잘 보존
고기포·젓갈·상어·전복 …
장기 놀이하고 지혈제로 홍합털 사용

 약 750년 전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를 지나던 화물선이 침몰됐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이 만약 일기를 남겼다면 위와 같이 적지 않았을까.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마도 해역에서 찾은 마도 3호선 발굴 성과를 6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수중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목간(木簡·글씨를 적은 나무 문서) 32점, 도기 28점, 곡물류와 사슴뿔, 장기돌 등 287점을 인양했다. 길이 12m, 너비 8m짜리 선박은 뱃머리와 배꼬리, 돛까지 고스란히 남았다. 지금까지 수중 발굴된 고려 선박 중 원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목간에는 ‘전복 한 항아리. 백 개를 담음(生鮑一缸入百介)’ ‘개고기 포와 작은 □(해독 불능)를 합쳐 상자에 담음(犭脯小□合盛箱子)’ 등의 내역이 적혔다. 그 밖에 홍합 젓갈, 상어 , 베 등도 주요 화물이었다. 묵은 젓갈의 이두식 표현인 고내지(古乃只)가 적힌 목간도 있었다.



 장군(將軍)·차(車)·포(包) 등이 적힌 장기 돌도 출토됐다. 선원들의 오락거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문화재연구소 임경희 학예연구사는 “초(楚)·한(漢)이 아닌 ‘장군’이라 적힌 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장군이요!’라는 말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물로 실려 있던 사슴은 머리 뿔만 남았고, 참돔·거북이·대구·가오리 등도 뼈만 남아 화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지혈제 등으로 쓰이던 홍합 털도 일부 남았다.



 화물을 보낸 곳은 ‘여수현 부사심댁(呂水縣副事審宅)’이란 목간으로 보아 여수시로 추정된다. 수취인은 유승제(兪承制), 김영공(金令公)과 시랑(정4품) 신윤화 등이다. 승제는 정3품직으로 왕의 명령을 전달하는 중요 직책이다. 신윤화가 시랑직을 맡았던 1260년 전후 승제직에 있었던 유씨는 유천우가 유일하다. 그가 승제직을 지낸 1260~68년이 마도 3호선이 침몰된 시점으로 추정된다. 김영공은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집권자 김준으로 추정된다. ‘영공(令公)’이란 고려시대 왕족에게나 붙이던 극존칭이기 때문이다.



 ‘우삼번별초도령시랑댁에 올림(右三番別抄都領侍郞宅上)’이라는 목간도 눈길을 끈다. 해양문화재연구소 성낙준 소장은 “삼별초의 조직이 좌·우별초가 세 번씩 나눠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다. 또 각 번의 지휘자인 별초도령 직위가 기존 연구에서 알려진 7~8품이 아니라 정4품(장군급)임이 확인돼 삼별초에 대한 대우가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마도-신진도 방파제가 들어서자 물길과 해저 지형이 바뀌며 뻘에 묻혔던 난파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후 태안 마도 앞바다에서 건진 고려 선박만 세 번째다. 마도 1~2호선에선 화물용 고려청자가 주로 나왔다. 3호선엔 청자 대신 고려의 생활사와 사회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실렸던 것이다.



 고려대 민현구(고려사) 명예교수는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던 시절이다. 그 와중에도 각 지방에서 오는 공적·사적 물품을 받는 등 국가의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했고 삼별초 역시 매우 정연한 부대조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경희 기자



◆삼별초(三別抄)=고려 말 무신정권 때의 특수군대. 좌별초·우별초·신의군을 합해 삼별초라 했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한 이후에도 항쟁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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