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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교육·독립운동 요람서 IT 전문가 산실로 발돋움

오는 10일이면 숭실대가 창립된 지 114년이 된다. 1897년 평양에서 문을 연 숭실학당은 1906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4년제 대학 인가를 받아 우리나라 근대 대학의 시초가 됐다. 긴 세월 동안 시대 변화를 겪고, 사건도 많았다. 폐교됐다가 재건되기도 하고, 다른 학교와 통합·분리되기도 했다. 숭실대는 1938년 폐교됐다가 16년 뒤인 1954년 서울에서 재건됐다. 폐교·재건은 일본 식민지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일본의 강압적인 신사참배에 대해 자진폐교로 항거한 것이다. 숭실대는 초기에는 서구문물을 수용해 근대화를 이끌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뺏긴 뒤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비밀결사체인 조선국민회를 조직하고 3·1독립운동, 광주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개교 114년 발자취

 숭실대는 재건 뒤 교육의 다각화·전문화를 위해 노력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현대음악을 도입해 교육했다.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외에도 민족지도자 조만식, 종교계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수상한 한경직 목사와 같은 인물도 숭실대 출신이다.



 통합·분리는 숭실대가 종합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1971년 숭실대와 대전대는 교명을 ‘숭전(崇田)대학교’로 바꾸고 하나의 대학으로 출범했다. 같은 해 12월 숭전대는 종합대학교로 승격해 문리과대학, 법경대학, 공과대학 등 3개 대학에 이부대학을 합쳐 21개 학과를 설치했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신설하고 박사과정을 개설해 현재의 숭실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1982년 재단이사회는 다시 두 개의 대학으로 독립해 운영하기로 정했다. 1987년 개교 90주년을 맞아 교명 ‘숭전’을 원래의 교명인 ‘숭실’로 환원했다.



숭실대는 ‘처음’으로 시도한 게 많은 대학이다. 대부분 IT와 관련됐다. 1960년대 후반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컴퓨터를 도입해 교육을 시작했다. 전자계산학과·인공지능학과·소프트웨어공학과·컴퓨터통신학과도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 신설했다. 1996년에는 처음으로 정보과학대학을 세워 IT 인재양성을 주도하고, 2006년에는 기존의 정보과학대학과 공대 소속이었던 정보통신전자공학부를 통합해 IT 대학을 신설했다. 현재 IT 대학에는 컴퓨터학부·미디어학부·정보통신전자공학부의 3개 학부가 소속돼 있고, 일반대학원 석·박사 과정 운영으로 IT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큰 성과도 거뒀다. 컴퓨터학부는 지식경제부가 주관하는 IT전공역량강화(NEXT) 사업에 선정돼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2억원을 지원받았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되는 2단계 BK21 사업에도 선정돼 연간 7억300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한국 IBM과 공동교육센터를 개설해 2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은 정보미디어기술연구소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식경제부의 2008연구센터(ITRC)로도 지정됐다.



 숭실대는 학생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국내 IT업계를 선도하는 NHN, 티맥스소프트와 협력해 교내 정보과학관에 IT 대학 학생들을 위한 실험·실습실을 개관했다. ‘Space N’과 ‘Tmax 창의실·드림실’은 숭실대와 두 업체가 산학협력으로 조성한 대학 실험·실습실이다.



전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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