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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비타민 B’와 ‘형님’







임종주
jTBC 사회2부 차장




독일어 은어에 ‘비타민 B’가 있다. B는 ‘die Beziehung(베치웅)’의 B로 ‘관계’를 뜻한다. ‘비타민과 같이 좋은 관계’라고만 해석하면 조금 순진하다. 독일에선 ‘연줄’을 뜻한다. 독일도 사람 사는 사회다. 비공식 라인이 작동한다. 지연·학연·혈연 등을 매개로 한 연줄이 존재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연줄이 어떤 일을 처리할 때 규정이나 상식 등 공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우선할 수는 없다. 공(公)과 사(私)가 뒤바뀌면 분명히 탈이 난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독일의 ‘비타민 B’와 비슷하게 쓰이는 우리 말이 ‘형님-동생’이다. 물론 여기에선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난 형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을 형님이나 동생이라고 부르면 어색함이나 서먹함이 묽어지고, 친하게 지내자는 호의가 전해진다. 그래서 내가 누구를 형님이라고 부르면 “나는 당신을 형제처럼 느낀다. 당신이 형이 되고 내가 동생이 되자. 그래서 가족과 같이 끈끈한 관계가 되자”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14년째 국내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는 마르쿠스 슈타인 교수는 “한국 사람에게 형님 소리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책임이나 의무감 때문에 부담스러웠지만 느낌은 좋았다”며 비교적 밝은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문제는 이게 남발되면서 좋은 뜻이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형님-동생이 얼마나 많은가로 네트워크 능력을 평가하는 사회가 됐다. 광역단체장을 지낸 정치인은 ‘형님만 800명’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가 총리 청문회에서 낙마하자 ‘전국에 형님-동생만 2만 명’이라는 한 전직 총리에 빗대 “형님 수가 모자라 인준을 못 받았다”는 우스개가 돌았다.



 형님-동생은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도 이를 통하면 성사가 되는 이른바 ‘비선’이나 ‘사조직’의 의미로 진화됐다. 그래서인지 각종 비리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형님-동생’이 고개를 내민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구속시킨 함바 비리에도 뇌물을 주고받은 사이가 형님-동생 관계였다. 최근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하면서 기자회견 내내 신 전 차관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젠 ‘빽’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형님-동생 관계가 조폭들의 그것만도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유럽 문화 전문가 오성균 중앙대 교수는 “한국의 ‘형님 문화’는 공적 방법으로 일처리를 하지 않고 사적 관계로 풀어보려는 심리가 만들어 낸 독특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동생이 형님 때문에, 또 형님이 동생 때문에 콩밥 먹는 일이 늘어가면 곧 이런저런 모임에서 “형님” 하면 바로 “당신 같은 동생 둔 적 없소”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사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임종주 jTBC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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