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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⑨ 지분 34% 인수로 한 때 고전





적자 200만 달러 야후에 1억 달러 투자 … “일본 거품남” 비아냥 쏟아졌다



지난해 1월 손정의 회장이 중국 최대 인터넷상거래 사이트인 ‘알리바바’ 창업자 잭 마와 일본 도쿄의 한 행사장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손 회장은 2000년 1월 이후 알리바바에 8000만 달러를 투자해 지분 33.3%를 획득했다. 알리바바의 현재 시가총액은 나스닥 기준으로 191억 달러에 이른다. 잭 마는 최근 “야후의 인수에 관심 있다”는 의사를 밝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블룸버그]







1994년 7월 소프트뱅크의 주식 공개 뒤 1년6개월간 나는 미국에서 총 31억 달러 규모의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덕분에 세계 최대 IT 전시·출판 그룹의 수장이 됐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이제 겨우 인터넷 세상을 헤쳐갈 보물지도와 나침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95년 가을, 막 인수한 지프 데이비스 출판 부문의 에릭 히포 사장에게 주문했다.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하면 없어서는 안 될 회사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지프 데이비스의 정보력을 동원해 물색해 주세요.” 그는 기다렸다는 듯 한 회사를 추천했다. “야후라는 벤처가 있습니다. 창업한 지 반년밖에 안 됐지만 아주 유망해요. 실리콘밸리의 가장 믿을 만한 벤처투자사인 세콰이어캐피털이 이미 200만 달러를 집어넣었답니다.”



야후. 드디어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보내 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나는 지체하지 않고 야후가 있는 캘리포니아로 날아갔다. 공동 창업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 직원 여남은 명이 늦도록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는 콜라와 피자를 시켜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열 살 때 대만에서 미국으로 이민왔다는 제리 양과 특히 뜻이 잘 맞았다. 나는 곧 투자를 결정했다. 우선 5% 지분을 확보했다. 사실 마음 같아선 야후의 대주주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많았다. 창업자들도, 기존 주주들도 내가 거액을 투자해 대주주로 올라서는 걸 원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내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다음해 1월 다시 제리 양을 만나 간곡하게 말했다.



 “인터넷 비즈니스는 선점이 중요합니다. 라이코스, AOL 같은 경쟁사들이 속속 치고 올라오고 있어요. 하루빨리 더 큰 자본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해요.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은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또 컴덱스와 지프 데이비스를 통해 전방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어요.”











 5시간의 지루한 협상 끝에 결국 내 뜻을 관철할 수 있었다. 1억 달러를 더 투자해 야후 지분 29%를 추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거래를 완료하기 전 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넷스케이프의 짐 클락, 시스코의 존 챔버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콧 매닐리 최고경영자(CEO)에게 e-메일을 보냈다. ‘야후의 대주주가 되려 한다. 하지만 당신들 중 누구라도 적극 반대한다면 포기하겠다.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IT업계 생리를 잘 알았다. 이후의 여러 비즈니스를 위해 이런 거물들과 척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다행히 모두 내 투자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줬다. 당시 야후는 연 매출 100만 달러에 적자가 200만 달러인 보잘것없는 회사였다. 그런 야후가 불과 한두 해 뒤 세계 인터넷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걸 이들 중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투자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언론들은 나를 ‘일본에서 온 거품남’이라며 대놓고 비웃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외려 서둘러 일본에 야후재팬을 설립했다. 소프트뱅크가 지분 51%, 야후 본사가 49%를 보유한 합작 회사였다. 나는 야후재팬을 아시아 최대 인터넷 포털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야후재팬은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나는 미디어산업에도 진출하기로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세계 최대 미디어재벌은 호주의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었다. 96년 4월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머독 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일본에 오면 같이 식사라도 하자”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2개월 뒤 정말 머독에게서 “도쿄에서 파티를 열려 하는데 인사말을 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파티 전날 저녁, 도쿄 긴자의 한 고급 일식당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머독은 일본에서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기회를 낚아챘다.



 “나와 함께합시다. 일본엔 강력한 경쟁자가 많아요. 이들과 싸우려면 최소 2000억 엔은 필요합니다. 내가 1000억 엔을 대지요.”



 머독은 내 제안을 즉석에서 받아들였다. 만남이 있은 지 열흘 만에 합병회사를 설립했다. 머독과 나는 417억 엔을 투입해 오분샤 미디어가 보유한 테레비아사히 지분 21%도 매입했다.



그러나 이 거래는 “소프트뱅크가 외국 자본과 손잡고 일본 미디어를 장악하려 한다”는 비난에 부닥쳤다. 다음해 나는 지분을 미련 없이 재매각했다. 대신 머독과 함께 설립한 위성방송 J스카이B 운영에 매진했다. 97년엔 또 다른 일본 내 위성방송 퍼펙트TV와 합병을 실현했다. 이로써 나는 유통·인터넷·미디어·전시회에 이르는 주요 디지털 인프라를 손에 쥐게 됐다. MS·시스코와의 합작, 미국 메모리보드 시장의 60%를 장악한 킹스턴테크놀로지 인수 등으로 네트워크와 테크놀로지 인프라 부문에서도 세계적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이처럼 숨가쁜 투자와 M&A의 결과는 곧 ‘돈’으로 나타났다. 96년 5월 30일 야후 본사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97년에는 야후재팬이 일본 자스닥에 상장됐다. 두 회사 주가는 그야말로 고공 행진을 계속했다. 99년 말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야후 주식 총액은 1조4586억 엔에 이르렀다. 초기 투자액의 360배였다. 같은 시기 야후재팬 주식도 주당 1050만 엔까지 올랐다. 나는 이렇게 마련한 돈으로 E트레이드·지오시티즈 같은 실리콘밸리 유망 벤처에 잇따라 투자했다. 재산은 점점 불어나 99년 가을에서 2000년 2월까지는 “손정의의 재산이 또 10억 달러 늘었다”는 기사가 세계 언론에 종종 보도됐다. 단 사흘이지만 빌 게이츠를 누르고 IT업계 제1 부자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졌다. 백화점에 가도 ‘이 건물을 통째로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쇼핑할 재미가 나지 않았다. 97년엔 지금껏 살던 임대주택에서 나와 40억 엔을 들여 새로 지은 3층 집으로 이사도 했다. 세계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부와 명성의 절정을 누렸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0년 3월, 이른바 ‘닷컴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소프트뱅크 주가는 100분의 1 토막이 났고, 나는 사기꾼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 세상과의, 나 자신과의 진짜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정리=이나리 기자



◆야후(Yahoo!)=1995년 4월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생이던 제리 양, 데이비드 파일로가 창업한 포털. ‘야후’는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종족 이름이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중반 세계 1위 검색 포털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후 구글에 밀려 현재 미국 검색 시장 점유율은 16% 안팎이다. 소프트뱅크는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기 전인 2001년 야후 주식 대부분을 매각했다. 이 자금으로 일본 최초의 초고속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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