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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5% 차지 … 고령사회 극복할 활력? 화약고?

2021년 가을, 경북 의성군의 어느 마을에서 ‘똑순이 아줌마’로 통하는 김경애(55)씨는 외출 준비로 바쁘다. 한국인 남녀와 결혼한 중국 출신의 ‘새내기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 국 경험담을 강의하기 위해서다. 김씨가 한국으로 시집 온 건 1997년이다. 지금은 뼛속까지 한국인이 다 됐다고 자부한다. 오늘 강의에선 다문화가정 선배로서 쌓아온 노하우를 가감 없이 전해줄 작정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많이 변했다. 이젠 ‘단일민족’ 운운하면 정말로 ‘촌사람’ 취급을 받는다. 10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은근히 무시하던 한국 원주민들이 이젠 “중국어 잘하니 좋겠어요”라며 부러워한다. 김씨의 아들도 엄마 덕에 중국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 대한민국의 늠름한 군인으로 복무 중인 아들은 장차 대학원에 진학해 ‘동북아 지역학’을 전공할 작정이다.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가는 만큼 한국에서 정착하는 외국인들도 많아진 세상이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27> 다문화 가정









‘대한민국 아줌마’ 김경애씨의 꿈은 결혼 이주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는 것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자신과 같은 ‘중국 새댁’은 드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도 늘고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 등 출신 국가도 다양해졌다. 장남(현재 14세)이 사회에 진출할 무렵엔 다문화가정 출신들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축을 이룰 거라고 믿는다. 외교관이나 교육부 장관이 되겠다는 아들의 꿈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해본다.



한국 사회의 다문화 진전 속도는 빠르다. 결혼 이민자는 지난해 약 18만 명에서 2020년께 35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께 다문화가정 구성원이 추계 인구의 5.5%에 달하는 것이다. 10년 후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가 아닌 고령 사회(aged society)가 될 한국이 다문화 현상을 거부한다면 경제 발전의 동력 자체가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문화’는 세월이 흐를수록 한국 사회를 지배할 핵심 단어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설동훈 전북대 교수가 대표 집필한 ‘다문화 가족의 중장기 전망 및 대책 연구’에서 인용)



국제결혼을 보는 시각도 크게 변화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피부색과 언어·문화가 다른 외국인들을 자녀들의 배우자감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국이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부상하고 교육·문화·취업 등을 통해 국내외 교류가 늘면서 ‘외국인이면 어때,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지’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해외 한국인들이 현지인과 결혼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지난해 밖으로 나간 한국인과 한국으로 들어온 외국인을 합한 ‘국제이동자’(체류 기간 90일 이상) 숫자는 118만2000명에 이른다.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베트남·크메르어 제2 외국어로 인기

2021년 서울의 초등학교 교실. 살구색 크레파스를 ‘살색’이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다지만 이젠 얼토당토 않은 얘기다. 교실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슬람교를 믿는 아이들을 위한 기도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급식 식단도 다양해졌다. 이슬람 계율에 따라 도축한 ‘할랄(halal)’ 고기만 사용하는 식단이 따로 제공되는가 하면, 동남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이 번갈아 특별식단으로 나온다. 국어 교과서엔 캄보디아에 있는 외갓집에 놀러 가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고등학교에선 제2외국어로 중국어·베트남어·크메르어가 인기를 끈다. 초등학교 가정통신문의 앞면은 한국어, 뒷면은 해당 민족의 언어로 나온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다문화 사회의 모범 사례다. 공용어만 영어·중국어·말레이어·타밀어 4개인 싱가포르는 대외 개방과 다문화를 도약 발판으로 삼았다. 중국계와 말레이계·인도계 등이 각자의 문화·언어·종교를 보존하는 한편,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동아시아의 허브(중심) 역할을 해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본 모델이 아닌 싱가포르 모델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은 한국 문화를 전 세계로 퍼뜨리는 문화 중개자 역할도 한다. 한국이 새로운 퓨전 문화의 발상지로 각광받는 이유다.



다문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다문화청’도 생겼다. 여기서 근무하는 공무원의 상당수는 다문화가정 출신이다. 이들을 채용할 때 가산점을 주는 이유도 있지만 워낙 이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지자체나 지방 의회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꾸려질 조짐도 보인다. 다문화 출신의 국무위원이 나올 날도 머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혼·취업 등을 통해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은 이미 한국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결혼 이민자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았지만 이젠 남성 결혼 이민자도 늘었다. 설동훈 교수는 “2009년 1만7000명에 그쳤던 남성 결혼 이민자는 2020년 3만9000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체류가 많아진 데 따른 현상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3D업종에만 종사한다는 통념도 깨졌다. 다문화 1세대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이들이 명문대에 들어가고 주류 사회에 진출하고 있어서다. 저출산·고령화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가 장학금과 일자리 등으로 젊고 똑똑한 인재들을 각국에서 스카우트하는 추세도 뚜렷하다. 글로벌 인재들을 성장동력으로 활용한 미국을 연상케 한다.



다문화 사회로 가는 한국 사회 앞에 장밋빛 청사진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고선주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단장의 말이다. “향후 10년간 한국 사회의 태도에 따라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의 발전 가능성이 판가름 난다. 두 가지 문화를 접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미래 인재로서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다문화 가족을 차별하는 태도가 남아 있는 한 다문화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될 수도 있다. 절망을 피하려면 한국인 스스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다문화 가족은 결코 수동적이거나 나약하지 않다. 만약 그들이 사회 불만세력으로 자라날 경우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다.



이민자 유입은 사회적 활력을 갖고 오지만 일자리 경쟁이나 소수자 범죄 등 어두운 측면도 함께 있다. 그래서 ‘위로부터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시민사회와 각계각층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대부 격인 김해성 목사는 “지금처럼 가다간 10년 후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아프리카 출신 아버지와 한국 출신 어머니가 낳은 여자아이를 기르고 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너 어디에서 왔니?” “한국말도 할 줄 아네”라고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쓰고 한국 음식만 먹는 아이인데도 그렇다. 피부색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런 차별을 피해 외국계 인구 비율이 높은 관악구 또는 구로구로 이사 가는 다문화 가족도 있다.



북유럽 같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유럽 국가들은 이미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맛봤다. 80년대 중반부터 중동·아프리카 이민자들을 받아들였지만 다문화 통합사회 건설에 실패한 것이다. 이민자 비율이 인구의 11%에 달하는 노르웨이에선 지난 7월 극우 세력의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런 조짐은 2009년 총선에서 반(反)이민 공약을 내건 극우 진보당이 제1야당이 될 때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핀란드·스웨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민자 가족의 높은 출산율 때문에 인구 점유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3월 “다문화주의는 분명히 실패했다”며 “여러 집단이 융화되지 않고 각각 존재하는 사회는 하나의 프랑스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태국 방콕에서 자동차로 4시간쯤 달리면 농촌 마을 사케오 쿨렁핫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필라완(가명). 남편은 알고 보니 알코올 중독자였다. 결혼 1년 만에 애를 낳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더해만 갔다. 시부모가 운영하는 모텔에서 청소 일을 거들었지만 자신을 며느리가 아닌 하녀 부리듯 하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 시부모가 아이 앞으로 들어놓은 생명보험의 보험금을 타려고 허위 사망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시부모를 고발했고 남편과도 이혼했다. 그는 영주권과 양육권을 얻었지만 지금은 마사지사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에겐 고향 태국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다.



결혼 이민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첩첩하다. 결혼 이민자들은 저소득층, 외국인 노동자들은 3D 직업에 머물 뿐이다. 차별에다 빈곤·폭력·소외에 시달린다. 다문화 출신 아이들의 낮은 진학률은 미래 희망까지 앗아간다. 초등학교 진학률은 60%에 그치고, 고등학교로 가면 30%로 뚝 떨어진다. 학력 경쟁에서 밀린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10년 후 상황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유럽의 인종 폭동, 노르웨이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끔찍한 극우 테러 사태가 10년 후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난해서 교육을 못 받고, 못 배우니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악순환은 그런 비극의 서막이다. 지난 3월 다문화 학교를 설립한 김해성 목사는 “다문화 사회로 막 진입한 한국이 지금처럼 다문화 아동들을 방치한다면 한국 사회의 화약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희망은 있다.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강한 생활력과 신분 상승 의지를 갖고 있어서다. 고선주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단장은 “유럽에선 노동 이주 정책을 폈지만 한국의 경우 이주민들이 대부분 결혼-취업, 취업-결혼을 통해 한국에 온 만큼 한국 사회에 동화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지적했다. 문화 충돌의 완충 지대가 있다는 얘기다. 10년 후 다문화 사회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로 성큼 다가왔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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