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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군경이 마약왕 비호, 잡을 방법은 오직 외국 유인뿐





국정원 2년 간 추적 … 남미 마약왕 ‘조봉행 검거 작전’의 재구성









‘한국 출신 마약왕, 범죄인 인도로 구속기소’ ‘남미 마약왕의 간교한 덫’….

지난 6월 중순 국내 언론에 크게 소개된 기사 제목이다. 주인공은 남미 수리남에 대규모 마약밀매조직을 구축한 조봉행(59)씨. 그가 브라질에서 체포돼 국내로 송환된 뒤 검찰은 범죄사실을 자세히 소개했다. 반면 검거 과정에 대해선 ‘국제공조’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수리남 고위층과 군, 경찰의 비호를 받아온 그를 찾아내 잡는 일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힘든 임무였다. 중앙SUNDAY가 베일에 가려졌던 ‘조봉행 검거작전’을 취재했다. 작전은 국가정보원과 검찰, 내부 협력자, 그리고 미국·브라질 당국이 참가한 한편의 첩보영화 그 자체였다.

 

1년 간 어르고 달래며 조봉행 유인

2009년 7월 23일 오후 5시쯤 브라질 상파울루의 과률류스 국제공항. 권총과 방탄조끼로 무장한 브라질 연방경찰 8명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입국장 주변에 잠복해 있었다. 한국에서 날아간 국정원 요원들과 협력자 K씨도 현장에 합류했다. ‘남미 마약왕’ 조씨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는 K씨의 소개로 마약 구매자를 만나기 위해 오후 5시에 브라질에 입국할 예정이었다.



수리남 밖으로 나오는 걸 한사코 거부하던 조씨를 “이러면 거래 못한다”며 1년 가까이 어르고 달랜 결실이었다. 그런데 약속시간이 넘도록 조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예정됐던 비행기의 탑승자 명단에도 이름이 없는 걸로 확인되자 브라질 경찰이 철수를 주장했다. 마약 거래에서 약속 위반은 흔한 일이었다.



이때 K씨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조봉행 측과 통화를 시작했다. K씨는 “일정에 차질이 생겨 늦는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리자”며 브라질 경찰을 설득했다. 이 통화는 거짓이었다. 철수를 늦추기 위해 K씨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한 것이었다.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길 2시간여 조씨 일행이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경찰이 덮쳤다.











조씨가 수리남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선박냉동기사로 일하던 1980년대부터다. 당시 8년간 수리남에 체류한 적이 있어 현지 사정에 밝다. 그 뒤 94년 5월엔 수리남을 ‘도피처’로 삼았다. 국내에서 빌라 건축을 미끼로 10억원가량을 가로챈 뒤 수배를 받다 도망친 것이었다. 95년 수리남 국적을 취득하고는 생선 가공공장을 차렸다. 그러나 실제론 어업회사에 싸게 제공되는 면세유를 받아 밀매매하는 게 주 수입원이었다. 중국인 등을 미국, 유럽으로 밀입국시키는 사업도 벌였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단속 강화로 사업이 어려워지자 마약에 손을 댔다. 남미 최대 마약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수리남 내에 밀매조직을 세웠다.



그는 현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고위층과 군, 경찰과도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수리남에 입국하는 아시아계 승객의 명단을 미리 받아볼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데시 보우테르세 대통령과도 오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우테르세 대통령은 2000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항소법정에서 열린 궐석재판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조씨는 수리남 내 한국 교포들을 포섭한 뒤 이들을 국내에 보내 운반책을 모집케 했다. ‘1인당 소지량이 제한된 보석 원석을 남미에서 유럽으로 운반해주면 400만~5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해 100여 명을 모았다. 주로 형편이 어려운 주부, 대학생 등이었다.



이 중 주부 장모(당시 37세)씨 등은 2004년 10월 조씨 측이 보석 원석이라며 건네준 가방을 들고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입국하려다 파리공항에서 체포됐다. 보석 원석 속에는 코카인 37㎏이 숨겨져 있었다. 이들은 2006년 11월 대서양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법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현지에서 수감생활을 해야 했다. 조씨는 2005년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국정원·검찰, “조봉행을 잡아라”

국정원과 검찰이 본격적으로 조씨 검거에 나선 건 2007년 10월. 조씨가 마약을 국내에 공급하기 위해 판로를 모색 중이라는 첩보가 입수됐다. 조씨는 이미 일본과는 마약거래를 하고 있던 터였다.

국정원은 조씨를 수리남 현지에서 체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수리남과는 75년 수교를 맺었지만 현지에 대사관이 없는 데다 범죄인 인도조약도 체결되지 않았다. 수리남 관련 업무는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서 겸임한다. 게다가 마약조직과 연계 가능성이 높은 수리남 치안당국의 협조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해 11월 뜻밖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수리남에서 사업을 하다 조씨 때문에 낭패를 본 K씨가 주 베네수엘라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온 것이다. 이 내용이 국정원에 전달됐고 국정원 측에서 K씨에게 조봉행 검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K씨는 고심 끝에 수락했다. 그는 국정원과 미 마약수사기관이 꾸며낸 가상의 재미교포 마약상과 조봉행 사이의 마약거래를 중

개하는 척 연극을 하기로 했다.



살해 위기 배짱으로 모면

K씨는 조봉행, 그리고 그의 부하 몇몇과 한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밀유지를 위해 특정 시간에만 국정원 측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에 권총을 넣어뒀다. 그러던 어느 날 통화 사실을 조씨의 한국인 부하 A씨에게 들켰다. K씨는 A씨를 붙잡고는 “너도 한국에 가족이 있는데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느냐, 나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자”며 설득했다. 국정원과의 통화도 연결해줬다. 그는 눈물까지 흘리며 “새 사람이 되겠다”며 협조를 약속했다.



그런데 3일 뒤 K씨의 집 거실에 A씨가 커다란 덩치의 흑인 4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배신이었다. 살해되기 직전이었다. K씨는 조씨가 집밖에 와있을 거라는 판단에 “미스터 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다. 조씨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K씨는 “나를 못 믿겠거든 맘대로 해라. 당신 부하가 하도 말이 많아서 그러지 못하게 내가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날 이렇게 대하느냐”고 항의했다. 흔들리는 표정이 역력했던 조씨가 “진짜 장난이었느냐”고 묻고는 부하들을 물렸다. A씨는 거꾸로 조씨의 미움을 사 조직에서 밀려났다.



2008년 9월 어느 날 저녁, K씨와 조봉행 일행이 수리남 수도인 파라마리보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K씨가 “거래할 마약을 직접 봐야겠다”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식당 내 주차장에 들어서자 입구 셔터가 내려졌다.



마약조직원들은 K씨를 차에 태우고는 눈을 가리고 총을 옆구리에 겨눴다. 그러곤 “절대 고개를 들지 말라”고 명령했다. 행선지가 탄로날 걸 우려해서다. 다시 셔터가 올려지고 차가 출발했다. 현지에서 2년여 동안 생활한 K씨는 차가 방향을 바꾸거나 카지노, 클럽 등의 불빛이 눈가리개 너머로 어른거리는 걸로 이동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여 분 뒤 차가 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실내에 들어서자 검은 포장의 커다란 코카인 더미 4개가 눈에 들어왔다. 한 더미는 300㎏으로 모두 1.2t 이었다. 거래가로만 1조원이 훌쩍 넘는 규모였다. 조씨는 “한국에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물량”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8년 초 국정원과 K씨, 미국 마약수사기관은 조씨의 현지검거를 위한 공동작전에 착수했다. 미 마약수사기관은 유사시 미 해군과 특공대의 지원까지 약속했다. “창고를 확인했다”는 K씨의 연락을 받은 국정원은 미국 측에 창고 급습과 조씨 검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차일피일 시간을 미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규모 총격전과 인명 피해를 우려해 작전을 꺼렸던 것이었다. 수리남 마약조직원들은 차 트렁크에 소련제 AK소총을 늘 넣어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현지 체포는실패했다.

거래 할 듯 말 듯 애타는 조봉행



K씨는 현지 검거 작전이 실패하면서 신변이 위험해져 2008년 10월 귀국했다. 조씨에게는 “마약거래상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귀국 후 국정원과 K씨, 미 마약수사기관이 새 작전을 짰다. 조씨를 수리남 밖으로 유인해 체포하자는 거였다. 우선 미국령 괌을 대상지로 정했다. 서울 모처에 사무실이 마련됐고 K씨는 가족에게도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K씨는 국제통화로 조씨와 마약거래를 이어갔다. “미국 마약상이 코카인 1.2t부터 시작하자고 한다. 액수와 송금 방법은 만나서 얘기하자”고 제안했다. 조씨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거래였다. K씨와 국정원은 심리전도 폈다. 조씨의 전화를 일부러 며칠씩 받지 않아 애타게 만들었다. 계약 성사를 믿고 수리남 현지에서 수출용 목재 속에 코카인을 숨겨 넣는 작업까지 시작한 터라 조씨는 더 다급했다. “구매자와 함께 빨리 수리남으로 들어오라”는 재촉이 심했다. 이에 K씨는 “구매자가 수리남은 치안이 워낙 불안해서 안 들어간다고 한다. 당신이 괌으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조씨가 미국령으로 나올 가능성은 극히 작았다.



다시 브라질로 유인하기로 했다.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고 현지 사법당국의 협조도 가능했다. K씨는 “안 나올 거면 거래는 없던 걸로 하자”며 조씨를 압박했다. 마침내 2009년 7월 수리남에서 가까운 브라질 도시인 벨렘에서 접선키로 했다. 이번엔 브라질 측에서 난색을 표했다. 수리남 마약조직의 영향력이 벨렘에까지 미치고 있어 위험하다는 설명이었다. 장소를 상파울루로 바꾸기로 했다. 조씨는 물론 거부했다. 다시 어르고 달래는 시간이 흘렀다. 결국 2009년 7월 23일 상파울루 과률류스 공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냈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범죄인 인도결정(2월)으로 국내로 압송된 조봉행은 9월 30일 열린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강갑생 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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