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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은 경제 평론가와 다르다

속 터질 노릇이다. 또다시 환란 얘기가 나온다. 1997년과 똑같이 외국인 투자가들이 대거 빠져나간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자 정부는 펀더멘털을 강조한다. 더 속상한 건 우리 잘못이 아닌데도 우리가 위기 발생 국가들과 똑같이 당한다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야 우리 잘못이 컸으니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유럽 잘못이다. 3년 전 위기는 미국 잘못이었다. 흔전만전 낭비한 그들이야 대가를 치르는 건 당연하지만 왜 우리까지 당하느냐는 울분이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좀 나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심리가 어디 그런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놀라게 돼 있다. 정부가 펀더멘털 운운하면 덜컥 겁부터 난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가장 분한 건 똑같이 위기를 맞았는데도 우리와 유럽이 받는 처우가 왜 이리 다르냐는 점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미개인 취급을 받았다. 경제가 거덜난 게 열등한 관행과 제도 탓이라고 했다. 서구의 지식인과 언론들 얘기였다. 장사를 하는 데도 서구를 배워야 한다며 오만을 떨었다. ‘정실 자본주의’가 위기의 원인이라고도 했다. 한국과 아시아 사회는 연고 관계가 좌우하기에 합리적 결정이 힘들고 부정부패로 이어진다고 훈계했다. 무지막지하게 돈줄을 조였고, 성장을 늦추라고 강요했으며, 자본시장을 완전 개방하라고 했고, 알토란 같은 국내 자산을 팔라고 협박했다.

그게 위기의 본질이고 해법이라면 유럽에도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프랑스도 미개인이어야 한다. 장사를 할 때 아시아에서 배워야 한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돈줄도 끊어야 한다. 그러나 어째서 이리 180도 다른가. 협박은커녕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에겐 저승사자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유럽에는 천사표다. 심지어 우리에게 유럽을 도와주란다. 그게 우리에게 이득이 된다며. 그러니 국민 자세도 다를 수밖에. 우리는 장롱 속에 숨겨놓은 금반지를 꺼냈지만, 그리스 국민들은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스 위기는 독일 지원과 관계 없이 정말 오래 갈 것이라 보는 이유다.

국민의 이러한 트라우마와 분노를 경제장관들이 모를 리 없다. 환란 얘기가 나오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일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이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언행 역시 극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은 거꾸로 갔다. 말을 함부로 하기 시작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석동 금융위원장 얘기다. 유럽 은행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차였다. 그들이 언제 우리 주식과 채권을 팔고 떠날까 해서다. 환율이 조금만 더 오르면 떠날 것 같았다. 3년 전 달러당 1600원까지 올랐던 기억도 생생하다. 금융시장은 이처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여기에 두 장관이 불을 질렀다. 그리스는 디폴트될 것이고, 유럽 은행들은 우리나라에서 돈을 빼내갈 것이며, 우리는 그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힘들고, 위기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말이야 틀린 건 아니다. 내 생각도 똑같다. 문제는 그들의 위상이다. 평론가나 분석가가 아니라, 장관이다. 위기를 처리하고 정책을 집행해야 하며, 극도로 민감한 시장을 어떻게든 달래서 잘 이끌어가야 할 자리다. 그런 사람들이 함부로 말을 하니 시장이 동요할 수밖에. 박 장관이 국회에서 그렇게 단언하던 지난 19일, 멀쩡하던 금리와 환율이 급등한 까닭이다.

양수겸장 효과를 노렸을 게다. 자신이 말한 대로 정말 위기가 닥치면 “나는 진작 경고했다”며 면피할 수 있다. 반대로 위기를 피해 가면 “내가 경고했기 때문”이라고 자찬할 수 있다.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부총리가 환란 주범으로 몰린 이유도 떠올렸을 게다. 대통령에게 보고를 늦게 했다는 게 혐의 중 하나였다. 이번에는 미리 경고했으니 그런 혐의는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일국의 장관이 그렇게 가벼워서야. 장관이 요즘 아무리 장기판의 졸(卒) 신세로 전락했다고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낮춰서야 되겠는가. 평론가나 분석가가 아니라 장관이기에 해보는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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