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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 40% 무당파, ‘바람 따라 사람 따라’ 마음 바꿔

한국에서 외교관으로 두 차례 근무한 뒤 학자로 변신한 미국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정치를 ‘회오리(vortex) 정치’로 규정했다. 한번 바람이 일면 강한 구심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회오리 현상에 한국 정치를 빗댔다. 그는 개인과 권력 중심(청와대) 사이의 매개 집단이 취약해서 생긴 결과라고 설명했다. 헨더슨은 이런 내용의 한국-회오리의 정치란 책을 1968년 펴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회오리 정치 현상은 오히려 강화됐다. 안철수 현상이 단적인 예다. 핸더슨이 오늘날 한국 정치를 관찰했다면 이번엔 ‘쓰나미의 정치’라 불렀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 정치의 독특한 현상 ‘쏠림 여론’

한국 정치엔 왜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현실 정치, 특히 취약한 정당 정치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극대화시켜 줄 정당을 찾지 못한 유권자들의 표심이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분석한다. 학계는 물론 정치권도 이론이 없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안철수 현상이 정당 정치의 위기를 반영한다는 진단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며 “우리가 비판하고 반성해야 할 것은 정당 정치란 기본 시스템이 아니라 한국의 현존 정당들”이라고 말했다.

대중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해 줄 정당을 찾지 못하는 ‘대표성의 위기’는 부동층 또는 무당파의 증가로 나타난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이 증가하는 현상, 즉 ‘탈(脫)정치화’가 진행돼 왔다”며 “무당파의 증가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 내지 냉소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92년 대선에서 22.7%였던 무당파 비율은 이후 대선에서 매번 30%를 넘었고 2002년 대선 때는 40.5%까지 올라갔다. 2008년 총선 이후 무당파층은 40% 내외다. 그 어떤 정당의 지지율보다도 높다. 그러니 “한국의 최대 정파는 무당파”란 말이 나온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해서 무당파층이 선거에서 기권하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때마다 새로운 인물이나 이슈를 찾아내고 바람에 따라 표를 던진다. 최근 한국 선거의 향배는 무당파층이 결정해왔다. 그런 점에서 무당파는 ‘정파’다.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정한울 부소장에 따르면 무당파층은 쟁점 이슈에 대한 민감성이 높다. 반면 특정 정당의 고정적 지지층은 ‘묻지마 투표’ 성향을 보인다. 무당파층이 바람에 가장 민감하다는 얘기다. 정 부소장은 “무당파층 또는 중도층 유권자는 이념의 경계를 뛰어넘어 특정 이슈에선 보수적 선택, 다른 이슈에 대해선 진보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쏠림은 정당보다 인물 중심으로 이어져 온 한국 정치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유교·동양적 전통이 우리 정치문화에 강하게 녹아 있다는 얘기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선거 때마다 바람이 정당 정치나 제도 정치를 압도하는 것은 제도보다는 지도자의 인격과 영도력을 중시하는 전통적 정치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한국 정치엔 일종의 ‘영웅 대망론’과 같은 특징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쏠림 현상이 2000년대에 들어와 더 강화된 것도 인물 위주 정치의 여파로 볼 수 있다. 신창운 중앙일보 조사전문위원은 “고정 지지자를 확보해 온 3김(3金, 김영삼·김대중·김종필)의 퇴장으로 인한 공백을 다른 인물이 채워주지 못해 무당파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한국 선거를 지배하는 바람은 새 정치, 새 인물에 대한 기대로 연결된다. 하지만 그런 대중의 기대를 정치권이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경우 곧바로 좌절과 혐오로 이어지고, 그것은 또다시 새로운 대상을 찾는 기대로 이어진다. 좌절감을 맛본 유권자는 다음 선거에선 바람의 방향을 반대쪽으로 돌린다. 표 쏠림 현상이 여당과 야당을 번갈아 오가는 이른바 ‘스윙’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열광과 환멸 사이를 오가는 이런 현상의 주기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역대 지방선거나 총선에선 야당에 몰표를 몰아주는 쏠림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유권자들이 미래의 전망을 보고 투표를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집권 여당의 실적을 보고 심판의 기회로 삼는 ‘회고적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쏠림 현상을 한국인의 문화적 특질이나 국민성과 연관 지어 보는 해석도 있다. 강한 역동성(다이내미즘)과 감성적 기질 등 한국인의 기질적 특징이 정치 현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는 “합리적 이성에 의한 판단보다 여론이 정서적·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며 “가령 정치인의 눈물 한 방울은 온정주의가 강한 한국 유권자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 코드에서 쏠림 현상을 일으키는 소용돌이 문화를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코드 10가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강 교수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특성으로 거론되는 소용돌이 문화, 쏠림 현상, 지도자 추종주의, 빨리빨리 문화 등이 한국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한국인의 동질성과 밀집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이런 한국인의 기질은 ‘냄비 근성’이란 부정적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의 이슈가 터지면

온 나라가 휘말려 들어갔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지고 잊혀지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선 반복된다. 그러나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처럼 쏠림 현상은 역동성과 응집력의 발휘로 이어져 우리 사회를 활력 있게 만드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회오리의 정치, 쏠림의 정치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간 내에 낡은 것을 제거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동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감성 위주의 불안정한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런 뜻에서 쏠림 현상을 “저주와 축복의 양면성”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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