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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 쥔 메르켈, 내우외환에 손발 묶인 탓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왼쪽에서 둘째)이 27일(현지시간) 아테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아테네 블룸버그=연합뉴스]
지난주 초 반짝 강세를 보였던 미국과 유럽의 주식시장은 주말이 가까워지자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초반 온기는 독일이 지폈다. 독일 의회가 29일(현지시간)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안을 승인한 점이 미리 반영됐다. 그리스 채무불이행(디폴트)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제지표가 악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에도 주식시장은 싸늘

미국의 8월 개인소득이 0.1% 하락했다. 2009년 10월 이후 22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에 앞서 9월 중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가 여전히 50을 넘지 못해 위축세가 이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독일의 8월 소매판매도 2.9% 감소해 4년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주식시장의 침체로 이어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유로 위기의 해결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앙겔라 메르겔 독일 총리(좌),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EFSF 확대 문제가 한고비를 넘긴 것은 분명하다. 유로존 정상들은 올 7월 회담에서 2500억 유로 규모인 EFSF를 4400억 유로로 늘려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1090억 유로)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각국 의회에서 승인 과정을 밟고 있다. 독일 의회의 표결에 주목한 이유는 독일의 분담금 비중이 27%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독일이 이를 승인하자 30일에는 오스트리아·에스토니아·키프로스 의회도 뒤를 따랐다. 이제 남은 국가는 네덜란드·몰타·슬로바키아뿐이다. 어느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2차 구제금융이 무산된다. 문제는 17일 마지막으로 표결하는 슬로바키아다. 리처드 술리크 국회의장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EFSF 확대안 통과를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슬로바키아에서는 자국보다 경제 규모가 큰 그리스를 왜 도와야 하느냐는 불만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슬로바키아 문제를 넘어선다 해도 여전히 전망은 어둡다. 시장은 그리스 사태가 이탈리아·스페인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달 만기가 도래하는 스페인 국채만 241억 유로에 달한다. 이탈리아는 최근 신용등급 강등 이후 처음으로 국채 발행에 성공했지만 10년 만기 기준으로 6%에 육박하는 금리를 줘야 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지원해주려면 EFSF를 최소 2조 유로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전주(錢主)인 독일의 여론이 구제금융에 부정적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은 올 들어 지방선거에서 일곱 번 연속으로 졌다. 돈줄을 더 풀면 내년 3월 총선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연정 파트너인 필립 뢰슬러 자유민주당 총재(부총리 겸 경제장관)는 유로존 구제금융을 당론으로 반대했다. 또 다른 파트너인 기독교사회당(CSU) 소속인 페터 람자우어 교통장관은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져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메르켈의 측근인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 역시 최근 공개석상에서 구제금융안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우회적으로 여러 차례 피력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을 겸하고 있는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도 그리스 지원에 비판적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연정의 분열은 이미 진행 중”이라며 “메르켈 총리가 유럽을 구한 대가로 자신은 낙마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지원 방안을 놓고도 독일은 프랑스와 대립하고 있다. 특히 민간 채권단이 가진 그리스 국채 처리 방안이 문제다. 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2020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그리스 국채를 EU 보증채로 바꾸는 방안을 수용했다. 부채의 21%를 깎아주고 수십 년간 상환이 미뤄진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트로이카 그리스 실사단의 결론에 따라 재협상이 필요한지 결정해야 한다”며 민간의 손실분담 확대를 들고 나왔다. 네덜란드를 비롯한 6개국은 독일의 주장에 찬성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프랑스가 가장 반발하고 있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프랑스 은행 크레디트아그리콜은 그리스 채권에 대한 익스포저(위험 노출) 규모가 270억 유로에 달한다. BNP파리바는 85억 유로, 소시에테제네랄은 66억 유로다. 7월 이후 BNP파리바와 소시에테제네랄의 주가는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독일의 익스포저는 180억 유로지만 은행이 갖고 있는 것은 코메르츠(20억 유로)·도이치은행(11억 유로) 등 86억 유로다. 나머지는 독일 정부가 보증을 선 배드뱅크인 FMS와 EAA가 떠맡고 있다. 프랑스는 “민간 분담이 확대될 경우 유로존 은행 주식에 대한 투매 사태가 빚어지고,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에 대한 우려가 증폭돼 시장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30일 파리에서 게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 “며칠 안에 메르켈 총리를 만나 그리스 채무 위기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간 채권 문제로 대립하는 메르켈 총리와 사르코지 대통령이지만 ‘금융거래세’ 도입에는 한목소리를 낸다. 반 롬푀위 유럽위원회(EC) 의장은 28일 “2014년부터 거래세를 도입하자”고 정식으로 제안했다. 주식과 채권 거래에는 거래금액의 0.1%, 파생상품 거래에는 0.01%를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 세금으로 EU는 매년 최소 550억 유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U는 다음달 초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거래세 실시를 공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반면 런던의 시티가 유럽의 금융허브 노릇을 하고 있는 영국은 거래세 도입에 유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네일 브렌틀리 영국산업연맹(CBI) 부총재는 “금융 거래가 뉴욕·홍콩으로 이동하면서 EU의 국내총생산(GDP)을 장기적으로 2% 낮출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영국 정부가 도입 원칙과 취지는 찬성하지만 전 세계에서 동시에 과세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티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은 유로 도입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본 국가로 꼽힌다. 마르크보다 약세를 보이는 유로를 채택한 덕에 수출이 늘고 재정도 튼실해졌다. 그래서 유로존이 위기에 처하자 독일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통합 재무부와 실질적인 힘을 갖는 중앙은행이 없는 EU 체제의 한계 탓에 효과적인 대응 방안 마련이 어렵다. 메르켈 총리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며 손발이 묶여 있다. 유로 위기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 교수는 “궁극적으로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리스 구제금융을 위한 EFSF 증액 문제가 큰 고비를 넘겼지만 싸늘한 시장 분위기는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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