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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고급화, 브랜드는 홍보…객실 비품의 ‘윈-윈’ 효과

서울 광장동 W호텔 1층에 있는 ‘W호텔 더스토어’. 객실에서 사용되는 각종 어메니티는 물론, PB 상품으로 제작한 문구류, 의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최정동 기자
1908년 미국 호텔업계에 혁신이 일어났다. 뉴욕주 버팔로의 스타틀러 호텔이 최초로 300개 객실 전체에 욕실을 완비한 것이다. ‘1.5달러로 욕실 딸린 방을(A Room and A Bath For A Dollar and A Half)’이라고 홍보 문구를 내건 호텔은 대성공을 거뒀다. 2차 대전 전에만 해도 방에 세숫대야를 놓고 씻어야 하는 호텔이 부지기수였다.

특급호텔 어메니티의 경제학

1960년 포시즌스 호텔을 창업한 이사도어 샤프는 최초로 욕실에 샴푸를 무료로 비치했다. 전화기도 처음 들여놓았다. 호텔 서비스의 일대 사건이었다. 60년대 말 샴푸는 필수가 됐고, 뒤이어 컨디셔너·로션·샤워젤이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전화기에 이어 컬러TV를 모든 객실에 둬야 하는지 호텔업계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호텔은 말 그대로 ‘숙소’였던 셈이다. 호텔이 각종 비품과 편의를 제공해서 샤워를 하고, 차를 마시고, 침대에서 푹 자는 ‘생활’이 가능해진 건 얼마 안 된 얘기다.
여행객에게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각종 소모품과 용품을 어메니티(amenity)라고 한다. 욕실의 샴푸·컨디셔너는 물론 TV·전화기·알람시계, 전기주전자와 티백·커피 등 방 안의 모든 비품을 아우른다. 와이파이처럼 무형의 용품도 포함된다.

어메니티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 위기엔 원가 절감을 위해 가짓수를 줄이는 중저가 호텔이 있는가 하면, 최근엔 아이팟 도킹스테이션이나 3D TV를 들여놓는 곳도 있다.

짧으면 하룻밤, 잠시 이용하는 물건이지만 어메니티는 호텔 산업과, 관련 산업에 매우 중요하다. 특급호텔은 어떤 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브랜드는 ‘특급호텔에서 사용되는 제품’이라는 고급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더구나 객실에 비치된 욕실용품, 침구류, 문구류, 인테리어용 장식품까지 고객의 구매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호텔 측의 얘기다. 투숙객들이 호텔에서 사용하는 비품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브랜드나 제품 특성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어메니티는 때로 아주 주요한 마케팅 수단이 된다.

욕실엔 에르메스·몰튼 브라운 등 명품 비치
호텔 욕실엔 보통 샴푸·컨디셔너·샤워젤·로션·비누가 비치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체크아웃 때 챙겨가는 고객이 상당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되는 어메니티다. 어떤 샴푸를 쓰는지가 전체 이미지를 단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도 적잖게 신경을 쓴다.

조선호텔이 객실에 비치한 네스프레소 커피머신. 고급화 전략 차원에서 국내에 공식 수입되기 전부터 들여왔다.(위)파크하얏트 호텔은 목욕 가운에 대한 투숙객 문의가 많자, 목욕가운을 포함한 객실·스파 패키지 상품을 선보였다.(아래)
체인 호텔은 원가 절감과 품질관리를 위해 본사가 생산해 전 세계에 공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도 프리미엄급 객실엔 에르메스 등 최고급 브랜드를 비치한다. 차별화·고급화 전략 차원에서 브랜드를 전면 교체하기도 한다. 신라호텔은 올해 영국 브랜드 ‘몰튼 브라운’으로 욕실 어메니티를 바꿨다. “해외 경험이 많은 고객들 사이에선 이미 정평이 났지만, 국내에선 희소가치가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파크하얏트는 처음부터 호주 브랜드 ‘에이솝’을 쓰고 있다. 임수연 과장은 “자극적이지 않은 친환경 이미지가 호텔 컨셉트와 맞았다”며 “어메니티 교체를 제안하는 브랜드가 많지만 가격보다 컨셉트가 중요하기 때문에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사용되는 브랜드가 얻는 효과는 상당하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돈 벌면서 샘플링(체험 마케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일정량을 소비하는 호텔에 납품하면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브랜드가 원하는 타깃 고객층을 대상으로 홍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에 처음 들어온 해외 브랜드라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생소한 브랜드지만 호텔에서 사용됐다는 게 품질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올해 8월 신세계 강남점에 국내 첫 매장을 연 스파 브랜드 ‘블리스’가 그 예다. ‘뉴욕에서 탄생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잇 브랜드(it-brand)’라는 것 말고도 ‘전 세계 W호텔 어메니티 선정’ 역시 주요 홍보 문구다. 현경선 대리는 “젊고 세련된 W호텔과 블리스의 이미지가 통한다”며 “W호텔을 통해 브랜드를 이미 알고 있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사용되면서 공식 수입되지도 않은 제품이 입소문을 타기도 한다. 웨스틴 조선호텔은 2006년 객실 리노베이션을 시작하면서 TF팀을 꾸렸다. 해외 유명 호텔을 다니면서 장단점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객실에 새로 들여놓은 것이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이었다. 다른 호텔과 마찬가지로 인스턴트 분말 커피를 무료 제공했지만 고급화를 위해 캡슐 커피를 도입했다. 당시 네스프레소는 국내 론칭 전이었다. 안주연 계장은 “투숙객들의 문의가 많아서 구매 방법을 알려준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캡슐 커피머신이 국내에 보급되면서 지금은 여러 호텔이 프리미엄급 객실에 비치하고 있다.

미국의 프리미엄 홍차 브랜드인 ‘레볼루션티’도 W호텔과 파크하얏트 호텔 어메니티로 국내에서 유명해졌다. 호텔이 맞춤 제작한 나무 옷걸이, 침구류 등에 대한 문의도 많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 업체를 연결해 주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깨끗한 객실에 예쁘게 비치된 제품은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면서 투숙객을 소비자로 이끄는 것이다.

패키지 상품 통해 호텔·브랜드 공동마케팅
호텔과 브랜드가 공동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주로 국내 고객을 상대로 판매하는 객실·식음료 패키지 상품에 특정 제품이 선물로 증정되는 식이다.

조선호텔은 11월 말까지 남성 고객을 대상으로 ‘CEO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최고급 브랜드와 손잡은 고가(1박 100만원, 200만원)의 상품이다. 객실 서비스와는 별도로 마세라티 시승 기회, 마세라티 로고 상품 세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넥타이, 아르마니 재단사가 직접 객실을 찾아 맞춤 제작하는 MTM(Made to Measure) 서비스를 혜택으로 제공한다. 투숙 후 구매로 연결될 경우엔 수트 할인 혜택, 호텔 숙박권 증정 등이 이뤄진다. 마케팅팀 유좌린 팀장은 “명품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커진 추세를 반영했다”며 “요즘은 고객의 기대치가 높아 웬만해서는 만족시키기 어려워 최상위 브랜드와 함께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크하얏트 호텔은 프러포즈를 위한 식음료 패키지 고객에게 ‘아쿠아 디 파르마’ 향수 세트를 증정했다. 포시즌스 호텔 어메니티로 사용되는 등 해외에서 최고급 향수로 통하지만 국내엔 2007년 말 들어온 브랜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대중 브랜드가 아니라서 대대적인 홍보나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 호텔 이용객의 경우 브랜드가 원하는 고객층과 겹치기 때문에 공동 프로모션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객실료로 다양한 혜택을 누리는 패키지 상품에 대한 반응은 크다. 한 호텔 관계자는 “고객들이 굉장히 꼼꼼하게 따진다”며 “화장품의 경우 정품인지, 용량은 얼마나 되는지까지 묻고 예약한다”고 말했다.

이런 공동 마케팅을 통해 호텔과 브랜드, 고객은 ‘윈-윈-윈’하게 된다. 호텔은 브랜드에서 최대의 할인 혜택을 받고 제품을 구매해 고객에게 고급 서비스로 돌려준다. 고객은 적은 비용으로 선물을 받는다. 브랜드는 이미지를 높이고, 경제력이 담보되는 잠재 고객을 확보할 기회를 얻는다. 또 호텔 홈페이지나 뉴스레터에 노출돼 자동 홍보되는 효과까지 얻는다.

대형 호텔 체인, PB상품 제작
세계적인 호텔 체인은 자사 로고를 내세운 PB상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호텔의 브랜드 파워만으로 충분히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PB상품은 객실 패키지에 포함된 선물로 증정되거나 별도로 판매된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W호텔이다. 1층에 ‘W호텔 더스토어’라는 매장을 별도로 운영하고, 본사가 운영하는 온라인스토어(www.whotelsthestore.com)도 있다. 객실에서 사용되는 침구류 등은 물론 자체 제작한 문구류, 의류, 패션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또 본사 차원에서 스타일 전문가를 글로벌 패션 디렉터로 임명해 시즌별로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신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로고가 새겨진 PB상품을 제작해 주로 패키지 고객에게 선물로 증정한다. 여름엔 피크닉 매트, 겨울엔 무릎담요처럼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PB상품을 총괄하는 박경서 팀장은 “호텔은 브랜드 가치가 높고 충성 고객이 많기 때문에 자체 상품 제작이 가능하다”며 “객실 패키지 선물로 증정되는 PB 상품을 구입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파크하얏트 호텔 역시 로고가 찍힌 목욕가운을 한정 제작해 패키지에 포함된 선물로 증정했다. 임수연 과장은 “평소 구매를 원하는 고객이 많아서 객실에서 사용되는 것보다 더 좋은 품질로 60벌을 만들었다”며 “워낙 반응이 좋아서 연중 내내 제작해 판매하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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