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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너와 함께라면’, 서울 코엑스 아트홀서 오픈런
미타니 월드는 황당 시추에이션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임기응변으로 무마해 가면서 발생하는 기발한 코미디로 정의된다. 그러나 키워드는 ‘인간’이라는 큰 주제다. 가족이나 동료라는 가깝고도 무심한 사람들. 각자의 인생에선 저마다 주인공인 이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의 내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존재감이 배가된다. ‘너와 함께라면’에서도 모두가 주인공이다. 70대 노인과 사랑에 빠진 20대 아가씨가 가족과 애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이루려 좌충우돌하는 황당한 설정이 역시 전제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70대와 20대가 어떻게 사랑을 이루는가가 아니라 ‘그저 사위와 함께 농구가 하고 싶을 뿐인’ 아빠의 사랑, ‘딸이 데려오는 사람이면 아무나 상관없는’ 엄마의 사랑, ‘마음 약한 엄마만큼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딸의 사랑을 환기하는 일이다.
무대 위 비상식의 세계를 상식을 넘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인간적 캐릭터의 힘이다. 잠옷바람으로 당당히 손님을 맞는 다소 지저분한 아빠, 멋쟁이 노신사지만 노화현상 때문에 볼일을 자주 봐야 하는 애인, 얼짱·몸짱 청년 사업가지만 매사에 계산이 정확한 좀스러운 그 아들…. 내 주위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이다.
그의 작품에 유명 스타가 총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작 ‘우리집의 역사’에는 특급 아이돌 아라시의 마쓰모토 준을 비롯, 수십 명의 주연급 배우가 얼굴을 내민다. 일본의 근대사를 총망라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일반인들. 실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던 다방면의 유력 인사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무대에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유명해지기 이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박한 이웃의 모습으로. 쟁쟁한 스타들이 비중의 고하를 떠나 출연을 자청하는 것도 우리들의 삶에 그런 엑스트라로 녹아들기 위해서다. 미타니가 만들어내는 친근한 캐릭터의 리얼리티가 초일류 스타도 알고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약점투성이 인간이고, 어쩌면 그 모습이 진짜일지 모른다는 믿음을 주며, 그 어딘지 모자란 모습이 차가운 신비감 대신 연민과도 닮은 인간적 사랑스러움을 스타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 전개도 실은 너무도 현실적인 초현실이다. 거짓에 거짓, 오해와 오해가 보태진 위태로운 상황이 어느 순간부터 진실과 혼재된다. 그 순간 짙은 페이소스가 우러나오는 것은, 날마다 끝없이 서로를 오해하고 살아가면서도 결국은 진실을 향해 삐걱대며 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장면들을 닮아서일 것이다. 사색적인 고민을 동반하지 않지만 한바탕 웃음 뒤에 가슴 한 켠에 남겨지는 사랑의 의미, 가족의 진심, 인생의 무게로 눈물이 핑 도는 뭉클함을 주는 것. 좋은 이야기란 이런 것 아닐까? 배우들끼리 속고 속일 뿐 전지적 시점을 유지하던 관객에게 마지막 강한 의문을 남긴 암전은 놀랍지만 기분 좋은 배신이다.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닌, 이후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내일은 영원히 미지로 남는다는 것. 이 또한 우리 인생을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