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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웃음 뒤 가슴 한켠엔...사랑,가족,인생이 주는 뭉클함

지금 대한민국 연극판엔 한 일본 작가의 두 작품이 나란히 롱런 중이다. 10여 년 전 관객을 가장 심하게 웃긴 영화로 기억되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1997)의 작가 미타니 고키(三谷幸喜)의 ‘웃음의 대학’과 ‘너와 함께라면’이다. ‘웃음의 대학’은 일본에서 96년 초연돼 2004년 ‘일본의 안성기’ 야쿠쇼 고지와 국민 아이돌 SMAP의 이나가키 고로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한 작품이다. 국내에선 2008년 초연 이래 여섯 차례의 앙코르 공연을 최근 마치고 전국 순회공연에 들어갔다. 그에 앞서 95년 초연된 ‘너와 함께라면’은 지난해 국내에 입성해 1년 동안 8만 관객 동원의 기록을 세우며 연일 만원사례다.

연극 ‘너와 함께라면’, 서울 코엑스 아트홀서 오픈런

미타니 고키는 연극팬이나 일본문화 매니어들에게 ‘미타니 월드 교주’로 통한다. 연극·영화·방송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이자 감독으로, 내놓는 작품마다 일본 아카데미 각본상·감독상을 놓치지 않는 최고의 스토리텔러다. 94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된 추리극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열어젖힌 미타니 월드는 20여 편에 달하는 연극은 물론 연극적 설정을 바탕으로 한 ‘우초텐호텔’(2005), ‘매직아워’(2008) 등의 영화와 최근작인 후지TV 개국 50주년 특집 드라마 ‘우리집의 역사’(2010)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변주되며 꾸준히 사랑 받아 왔다. 10월에는 3년 만의 영화 ’멋진 악몽’이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타니교주’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걸까? 시기적으로나 내용·형식면에서나 미타니 월드의 원형에 해당하는 연극 ‘너와 함께라면’에 그 열쇠가 숨어 있다.

미타니 월드는 황당 시추에이션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임기응변으로 무마해 가면서 발생하는 기발한 코미디로 정의된다. 그러나 키워드는 ‘인간’이라는 큰 주제다. 가족이나 동료라는 가깝고도 무심한 사람들. 각자의 인생에선 저마다 주인공인 이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의 내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의 존재감이 배가된다. ‘너와 함께라면’에서도 모두가 주인공이다. 70대 노인과 사랑에 빠진 20대 아가씨가 가족과 애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이루려 좌충우돌하는 황당한 설정이 역시 전제가 되지만, 중요한 것은 70대와 20대가 어떻게 사랑을 이루는가가 아니라 ‘그저 사위와 함께 농구가 하고 싶을 뿐인’ 아빠의 사랑, ‘딸이 데려오는 사람이면 아무나 상관없는’ 엄마의 사랑, ‘마음 약한 엄마만큼은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딸의 사랑을 환기하는 일이다.

무대 위 비상식의 세계를 상식을 넘어 공감하게 만드는 것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인간적 캐릭터의 힘이다. 잠옷바람으로 당당히 손님을 맞는 다소 지저분한 아빠, 멋쟁이 노신사지만 노화현상 때문에 볼일을 자주 봐야 하는 애인, 얼짱·몸짱 청년 사업가지만 매사에 계산이 정확한 좀스러운 그 아들…. 내 주위 어딘가에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이다.

그의 작품에 유명 스타가 총출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작 ‘우리집의 역사’에는 특급 아이돌 아라시의 마쓰모토 준을 비롯, 수십 명의 주연급 배우가 얼굴을 내민다. 일본의 근대사를 총망라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일반인들. 실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수놓았던 다방면의 유력 인사들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무대에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유명해지기 이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박한 이웃의 모습으로. 쟁쟁한 스타들이 비중의 고하를 떠나 출연을 자청하는 것도 우리들의 삶에 그런 엑스트라로 녹아들기 위해서다. 미타니가 만들어내는 친근한 캐릭터의 리얼리티가 초일류 스타도 알고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약점투성이 인간이고, 어쩌면 그 모습이 진짜일지 모른다는 믿음을 주며, 그 어딘지 모자란 모습이 차가운 신비감 대신 연민과도 닮은 인간적 사랑스러움을 스타에게 부여하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 전개도 실은 너무도 현실적인 초현실이다. 거짓에 거짓, 오해와 오해가 보태진 위태로운 상황이 어느 순간부터 진실과 혼재된다. 그 순간 짙은 페이소스가 우러나오는 것은, 날마다 끝없이 서로를 오해하고 살아가면서도 결국은 진실을 향해 삐걱대며 가고 있는 우리 인생의 장면들을 닮아서일 것이다. 사색적인 고민을 동반하지 않지만 한바탕 웃음 뒤에 가슴 한 켠에 남겨지는 사랑의 의미, 가족의 진심, 인생의 무게로 눈물이 핑 도는 뭉클함을 주는 것. 좋은 이야기란 이런 것 아닐까? 배우들끼리 속고 속일 뿐 전지적 시점을 유지하던 관객에게 마지막 강한 의문을 남긴 암전은 놀랍지만 기분 좋은 배신이다.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선을 긋는 것이 아닌, 이후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내일은 영원히 미지로 남는다는 것. 이 또한 우리 인생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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