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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직원은 예술 향유, 신진 작가들은 예술의 자유 향유

1도이체 방크의 큐레이터 알리스터 힉스.Courtesy of the Deutsche Bank Collection 2 도이체 방크 런던 본사 8층의 미팅룸.프랜시스 베이컨, 그래이햄 서덜랜드 등의 그림이 벽에 붙어있다. Courtesy of the Deutsche Bank Collection
지난 2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도이체 방크의 도이체 방크타워가 재개관을 했다. 1979년 컬렉션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간 5만8000여 작품을 수집해 국제 미술계에서 그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1945년 이후 독일의 현대 미술사’라는 찬사를 들었던 이 컬렉션의 디스플레이는 독특했다. 각 층이 거의 한 작가의 작품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런 만큼 층의 숫자는 없이 아예 작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타워A의 최고층은 홀스트 안테스(Holst Antes), 타워B의 최고층은 요셉 보이스(Joseph Beuyes)라고 각각 호명됐다. 언뜻 불편해 보일 수 있는 구조였지만, 이번 개조를 통해 이 60층 건물은 과거 독일의 현대미술관에서 아시아·미국·유럽·중동·아프리카까지 망라하는 국제적인 현대미술관으로 확실하게 탈바꿈했다.

이지윤의 세계의 미술 컬렉터 <4> 젊은 작가 작품으로 은행 컬렉션 만드는 도이체 방크

본사만이 아니다. 런던 사무소의 경우 은행의 크고 작은 방에는 독일과 영국 회화 작가들의 소품이 4~6개씩 걸려 있다. 방 한쪽에는 작가들의 도록도 있다. 은행원들은 “조금 있다가 프랜시스 베이컨 방에서 만납시다” “빅터 파스모어 방에서 3시 미팅입니다”라는 공지를 서슴없이 띄운다.

도이체 방크 컬렉션의 기본적인 모토는 ‘창의력을 육성한다’다. 당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 구입이 원칙이다. 구입 기준은 두 가지다. ‘종이에 한 작품(work in paper)’. 그리고 작품 구입 가격으로 말하자면, 70년대에 약 1000 달러였다면 지금은 약 3000~5000달러다. 드로잉·수채화·콜라주·과슈 등 그들이 구입한 것은 시장 가격에 그리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매우 작은 금액의 작품들이다. 투자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그럼 도이체 방크는 어떻게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일까. 도이체 방크 컬렉션에서 큐레이터로 있는 알리스터 힉스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미술평론과 편집장으로 일하던 그는 1994년 도이체 방크 컬렉션이 카탈로그를 만들 시점에 본 큐레이터로 임명되면서 다른 6명의 큐레이터들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3 컬렉션 중 하나인 크리스티나 루카스의The Last Will of Virginia Woolf from the series Famous Suicides of Writer’(2005), Photograph.Courtesy of the Deutsche Bank Collection
“우리는 계속 젊은 작가를 찾아다닌다. 그런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구입해 주는 것이 미술계에 활력과 영향력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도이체 방크 컬렉션이 미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작은 금액의 작품 구입은 미술시장에 그리 큰 영향은 주지 못한다. 즉 우리는 미술시장보다 미술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이체 방크에서 일하는 7인의 큐레이터 중 4명은 독일에, 2명은 런던에, 1명은 뉴욕에 있다. 미술관이 아닌 금융기관에도 큐레이터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국가나 기업의 기금으로 컬렉션을 해온 서구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제프리 다이치가 대표적인 경우다. 하버드 MBA 출신의 큐레이터로 씨티뱅크의 컬렉션을 만들고, 그 후 자신의 상업화랑인 다이치 프로젝트를 뉴욕 첼시에서 운영하고, 지금은 LA 라크마(LACMA) 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도이체 방크 컬렉션이 제프리 다이치가 만든 씨티뱅크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즉 도이체 방크의 컬렉션은 위에 지적해 보인 대로 사무실 곳곳에 전시돼 있어 은행 직원과 고객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알리스터 힉스의 명함에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부서의 아트 어드바이저/큐레이터’로 적혀 있었다. 도이체 방크의 아트 컬렉션은 CSR 개념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전부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충실하게 CRS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이체 방크가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중 하나가 베를린 본사 건물과 함께 시작된 독일 구겐하임미술관 프로젝트다. 보통 컬렉션을 만들면 자신의 미술관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은 뉴욕의 구겐하임 파운데이션과 협업을 통해 베를린에 그들의 미술관을 만들었다. 1997년 리처드 글럭맨(Richard Gluckman)이 건축한 이 건물의 로비는 도이체 방크 베를린 본사이지만, 그 위층은 1년에 3~4회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모든 전시는 자신들의 컬렉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에게 새로 작품을 제작하게 하는 커미션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들의 컬렉션은 오히려 다른 방식, 예를 들어 다양한 순회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소개된다. 수장고에서 그냥 잠자는 컬렉션이 아닌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소개되는’, 숨 쉬는 컬렉션이 되는 것이다. 미술관과 더불어 현재 도이체 방크는 42개국 911개 장소에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술 컬렉션 전시를 지난 30년간 해오면서 도이체 방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한 것을 얻은 것 같다. 2003년부터 시작한 런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의 후원 회사로서, 지난해부터 급부상하고 있는 홍콩 아트페어의 메인 후원사로서 이들의 기업 이미지는 크게 올라갔다. 태생 자체의 이름부터 ‘독일’ 은행이라는 강한 국가성을 가진 은행이 자연스럽게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하게 된 것이다. 도이체 방크는 이제 세계적인 아트 컬렉션을 갖고 젊은 아티스트를 지원하며, 세계적인 아트 페어를 후원하는 명실상부 글로벌한 이미지로 국제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전략적 접근을 넘어 비전과 소명으로 시작한 좋은 일들이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맞게 된 좋은 선례가 아닌가 싶다.

컬렉션이라는 것, 무엇을 모은다는 것은 또한 많은 책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책임은 모은 것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동시에 그것은 얼마나 ‘함께’ 즐기면서 공유할 수 있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지윤씨는 런던에서 현대미술 전시기획 활동을 하며 코토드 미술연구원에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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