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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요원? 사업 천재? 국영기업 삼키며 세계 15위 갑부

유대인들은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 시절 러시아로 대거 몰려갔다. 근대 국가를 만드는 데 부심했던 표트르는 능력 있는 유대인을 불러들였다. 1890년께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발트 지역 유대인은 520만 명에 달했다. 이후 약 20년에 걸친 이 지역 유대인 박해(일명: 포그롬) 때 많은 유대인이 미국·서유럽·팔레스타인으로 떠났다. 이후 다수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유대인들이 러시아로 들어왔다. 1941년 슬라브 지역 유대인은 480만 명이었다. 이 중 150만 명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됐다. 남은 유대인들은 다시 북미와 호주 등지로 옮겼다. 그리고 3차 중동전 이후 많은 옛 소련 유대인이 이스라엘 정착촌으로 이주했다. 그래서 오늘날 러시아에 남은 유대인은 28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러시아 청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과거에 비해 적은 숫자다. 하지만 유대인은 아직도 러시아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대엔 유대인 석학 알레산드르 야코프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의 골격을 만들었다. 90년대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엔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올리가르히(Oligarkhi)’로 변신해 러시아 경제를 쥐고 흔들었다. 올리가르히는 정치·경제·언론을 융합한 과두 지배 세력인 러시아의 신흥 재벌을 지칭한다. 이들 중 막내이며 많이 알려진 인물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사진)다.

첼시 구단주 … 러시아로 히딩크 영입도
아브라모비치는 66년 러시아 극동 지역 사라토프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한 살과 세 살 때 각각 부모를 여읜 그는 어린 시절 모스크바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삼촌과 함께 살았다. 모스크바 법대를 중퇴하고 군 복무를 마치자 바로 석유 판매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고르바초프가 한창 개혁을 추진하던 시기였다. 그는 92~95년간 5개 정유사를 인수했다. 시베리아 북단 추코트주의 석유 시추권도 따냈다. 96년엔 유대인 올리가르히 대선배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합작으로 러시아 최대 정유사 ‘시브네프티’를 설립했다.

30대 초반에 억만장자가 된 아브라모비치는 2003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FC를 3억 달러(약 3500억원)에 인수했다. 축구광인 그는 거액을 들여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는 등의 공격적 투자로 만년 하위였던 첼시를 2005년 리그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네덜란드인 거스 히딩크를 러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영입하고 후원하기도 했다.

러시아 올리가르히는 보리스 엘친 대통령 시절 예고르 가이다르와 아나톨리 추바이스 등 정권 실세와 밀착했다. 이들은 당시 원유·천연가스·광물·언론·금융 등 국영 기업의 민영화 사업에 편승해 엄청난 이권을 거머쥔다. 이들이 가져간 러시아의 국부는 무려 1조 달러(약 1170조원)에 이르렀다. 올리가르히는 또한 옐친이 후계자로 지목한 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을 적극 지원해 2000년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다.

올리가르히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푸틴은 기고만장한 졸부 마피아들이 국가 공권력을 압도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심하고 이들을 손본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전문 관료집단 친위세력 ‘실로비키’를 올리가르히의 대항마로 키웠다. 2003년 푸틴은 원로급 올리가르히인 유대인 베레조프스키를 첫 타깃으로 칼을 뽑는다. 푸틴의 공세에 놀란 베레조프스키는 석유·알루미늄·방송국 지분 등 재산을 모두 아브라모비치에게 넘기고 영국으로 피신한다. 이어 TV 등 미디어를 독점했던 또 다른 유대인 블라디미르 구진스키도 푸틴에게 겁먹고 이스라엘로 도주했다. 최대 석유기업 유코스의 회장이며 유대인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도 탈세죄로 수감됐다. 공권력의 위력을 실감한 올리가르히들은 이제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재산 반 이상 허공에
아브라모비치는 무주공산이 된 대기업 유코스와 자신의 사업체 시브네프티를 통합해 러시아 최대 석유그룹으로 만든 후 2005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에 매각했다. 알루미늄 회사와 자동차 공장도 외국에 팔았다. 그러곤 언론이나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고 영국에서 칩거하고 있다. 간혹 그의 호화 생활이나 여성 편력이 가십지에 보도되기는 하지만 그는 야심 없는 졸부로 처신하면서 몸을 낮추고 있다. 그래선지 그에겐 푸틴으로부터의 압박이 없었다. 아니면 소문대로 그는 오랫 동안 정보기관의 블랙 요원이었기 때문에 화를 피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08년이 되자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아브라모비치를 위시한 올리가르히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한때 240억 달러(약 28조원)로 추산됐던 그의 재산도 반 이하로 줄었다. 당시 포브스 발표 세계 15위 갑부였다.

90년대 이후 러시아엔 정경유착으로 인한 국영기업 특혜 불하와 개발이권 독점 등으로 많은 신흥부자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기술개발이나 일자리 창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산을 증식시키고 또 천연 자원을 외국에 팔아 큰돈을 벌었다.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젊은 러시아 억만장자 들은 원유·가스·광물·자동차·화학·항공 등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란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탈취했다. 그런 뒤 국부를 세탁해 미국·영국·스위스·이스라엘 등지로 빼돌렸다. 그러고는 프랑스 부동산·호화 요트·자가용 비행기·대저택 구입 등 호사에 많은 돈을 뿌렸다. 러시아의 시장체제 전환엔 자유화·민영화·규제 철폐가 정답이 아니었다. 오히려 강력한 국가의 개입이 필요했다.

미국 유대인 부호의 대다수는 부의 나눔과 사회 환원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와 같은 러시아 유대인 올리가르히들은 유대교의 기본 가르침인 ‘구휼(Sedaka)’을 따르고 있지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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