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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쓰나미

3년 전 동네 갤러리에서 1년간 서양미술사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사의 재치와 촌철살인 해설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인 모네, 마네, 카사트, 드가, 그리고 르누아르가 일본 민화인 ‘우키요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호쿠사이의 유명한 판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는 쓰나미를 그린 것이다. 이 판화를 보고 영감을 얻은 드뷔시가 관현악곡 ‘바다’를 작곡하고, 악보 표지에도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실었다.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은 쓰나미 파도를 조각으로 형상화했다. 쓰나미(tsunami)는 일본식 영어 표기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대표적 사례다. 웹스터 사전은 ‘쓰나미’를 해저 지각 균열이나 화산 폭발 등으로 발생하는 거대한 파도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다름 아닌 ‘부패 쓰나미’다. 부패 쓰나미는 정권을 지탱하던 바닷속 깊은 곳의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부패가 없으니 반석 위의 집처럼 정권이 임기 말까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던 대통령의 호언도 허언이 될 지경이다. 측근들이 몰래 파놓은 부정·부패의 구덩이 때문이다. 급기야 집권당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의 친인척·측근에서 비롯되는 부패 쓰나미 경보를 발령하기에 이르렀다. 전례 없는 일이다.

부패는 남자의 정소에서 생산되는 생식세포인 정자가 썩은 것을 의미한다. 생명의 씨앗이 발효도 아닌 부패라니 당연히 해로울 수밖에 없다. 부패한 개인과 사회는 생명력을 상실한 거나 마찬가지다. 부패한 국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다.

온갖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은 이제 나라 전체를 부패의 도가니에 가두고 있다. 현 정부 공직자의 부패행위가 전 정부에 비해 엄청 늘었다는 통계는 부패의 내성이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다. 부패가 드러날 때면 일벌백계의 호령을 하다가도 막상 사법처리 단계에서 작량감경으로 국민의 기대치를 벗어난 처벌이 이뤄진다. 장본인에겐 재수 없어 걸린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로비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의 측근들도 그럴지 모른다. 사건 자체에 대한 부인을 시작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불인정, 법원에서 오리발 내밀기, 보석 또는 집행유예, 사면복권, 화려한 권력 복귀로 이어지는 부패의 경로를 걷고 있지나 않는지 두고 볼 일이다.

정확성을 검증하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현실의 4분의 1을, 영화는 소설의 4분의 1을 반영한다고 한다. 현실의 16분의 1(6.25%)을 반영한 영화 ‘도가니’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부패란 과거의 망각을 틈타 반드시 부활한다는 점이다. 이제부터 차분하게 미결(未決)의 부패통제 과제를 챙겨야 한다. 권력형 부패 박멸책으로 거론되다 ‘붉은 리본(red tape)’으로 묶어 창고에 내팽개쳐 두었던 것을 꺼내야 한다.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의 신설을 재론해야 한다. 퇴직자에 대해선 공직 재임 시 재산형성 과정을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부패방지 전담기구 확대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18대 국회가 자랑하는 역대 최다의 발의 법안 대부분이 붉은 리본에 묶여 국회 창고에서 폐기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부패의 균은 우리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부패의 균도 시간이 지나면 내성을 키워 백신을 무력화시킨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잃는다. 부패의 쓰나미가 쓸고 갈 정치지형의 참혹함에 국민들은 또 실망할 것이다. 국민들은 부패 바이러스를 퇴치할 백신을 만들 책임을 짊어진 위정자와 국회에 대한 책임을 물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 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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