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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2. 서쪽에서 온 마을 (6)





연꽃 밭 위에 인보가 누워 죽어 있다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이 삿갓을 써요.”



 탁연이 내게 삿갓을 내민다. 눈 먼 고양이 생각해 주는 약삭빠른 들쥐가 따로 없다. 나는 대꾸 없이 걷기만 한다. 전추산이 삿갓을 받아 내 머리에 씌워 준다. 그대로 둔다. 초복이 며칠 남지 않았다. 저 아침 햇살은 곧 표독스럽게 돌변해 빡빡 민 내 머리를 태우려 들 것이다.



 마구간에서 인보의 말을 탔다. 말은 영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이 제 주인의 죽음을 알 까닭이 없다. 모르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밤새 투덜대기만 했지 그의 죽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인보가 죽은 게 확실하다면 천안통이네 영성이네 하는 말 따위가 모두 실속 없는 뜬구름 잡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한마디로 열매 못 맺는 가짜 꽃이라는 얘기다. 제 사람 죽은 건 까맣게 모르고 감나무 둥치에 매미 껍질 달라붙은 건 봐서 뭐 한다는 것인가. 쓴웃음이 나온다.



 “연못까지는 십 리쯤 돼요.”



 전추산이 일러준다. 내 말고삐를 쥔 그는 다른 말을 탔다. 뒤따라오는 탁연도 말에 탔다. 세 필의 말 뒤로 많은 사람들이 따라왔다. 십 리 길은 멀었다. 마음만 급했지 눈 먼 나 때문에 달릴 수가 없었다. 나는 분노와 두려움, 난감함이 뒤얽힌 심정으로 변사체가 있는 현장과 거리를 좁혀 갔다. 눈 먼 감찰관이 부하의 주검을 확인하러 가는 이 끔찍한 상황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차라리 이 길이 언제까지고 깨어나지 않는 꿈길이기를 바라는 마음조차 있었다.



 “광대 패들은 어디서 묵고 있지?”



 “방금 지나온 청림 삼거리 주막에서요.”



 지도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연못은 폭포 가는 길목에 있다. 인보는 거기까지 왜 갔던 걸까. 광대 패들을 따라다니느라 갔었다면 함께 올 것이지 왜 혼자 남아서 변을 당한 걸까.



 “도장처럼 생긴 인장바위와 천왕봉 사이를 지나고 있답니다. 앞뒤로 꽉 막히고 옆으로만 길이 터진 협착한 터에 실상사라는 작은 절집이 있고요. 조금만 더 가면 연못이 나옵니다.”



 전추산이 이따금 주변 풍경을 일러주었다. 연꽃 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연꽃 피는 절기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그 연못가에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연못은 얼마나 크지?”



 “커다란 저수지 한쪽에 연꽃 밭이 오백여 평 됩니다.”



 “전 장군, 지금부터는 그대가 내 눈이 돼 줘야 한다. 내가 묻거든 그저 보이는 대로만 말해 주게. 판단은 내가 한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곧 인보의 주검을 보게 된다. 어제까지도 같이 지냈던 인보가 죽었다. 기막힌 노릇이지만 나는 인보의 주검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사인을 밝혀야 한다. 내 눈이 보이고 안 보이고 상관없이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맙소사. 인보 스님이 맞네요.”



 “정말 인보인가?”



 “예, 연꽃 밭 위에 큰 대 자 모양으로 누워 죽었습니다.”



 나는 말에서 내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막 피어난 연꽃들이 진한 향기를 뿜어낸다. 그 속에 인보의 주검이 있다.



 “어서 밖으로 꺼내라 하라.”



 곧 시신이 건져 올려졌다. 나는 인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만졌다. 싸늘하고 팅팅했다. 넓죽한 얼굴, 우렁우렁 울리는 소리를 내던 커다란 입이 잡혔다. 속에서 울컥한 것이 올라왔다. 충직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수기 스승의 시자였다. 나와 같이 황제와 대장도감의 명을 받고 여기에 온 감찰 신분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황제와 대장도감의 명령이 죽은 것이기도 했다.



 “타살 흔적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얼굴은 깨끗합니다.”



 “마을이 가까운가?”



 “약초꾼 집과 띄엄띄엄 흩어져 있는 화전 농가 몇 집이 보입니다.”



 “가까운 집으로 옮기고 보안현에 가서 검시관을 불러야겠네.”



 연꽃 향이 깊게 밴 인보의 주검은 들것에 실려 약초꾼 집 마루로 옮겨졌다. 옷을 벗긴 다음 천을 깔고 뉘였다.



 “외상은 없는가?”



 “없어요.”



 “세심히 확인하라.”



 “살갗에 붉은 얼룩이 고르게 퍼져 있긴 하지만 상처는 아닙니다. 앞뒤 모두 깨끗해요.”



 붉은 얼룩은 죽은 뒤 시간이 지나며 나타나는 시반(屍斑)일 거였다. 나는 시신을 처음 발견한 자를 찾았다. 근처 화전민의 열두 살 난 아들이라고 했다. 오늘이 농부의 생일이어서 아침밥 먹으러 오라고 호수 건너편 농가에 심부름을 보냈는데 변사체를 발견했단다.



 “어제 저물녘쯤에 당한 사고 같네요. 광대패들이 청림리로 돌아온 이후일 테니까요. 인보 스님은 그전까지 광대 패들을 줄곧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인보를 목격한 마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본 전추산이 일러줬다.



 “파리가 달라붙지 않도록 광목 천으로 덮어 둬라. 검시관을 부를 참이다. 전 장군, 누구를 보내야 좋겠는가?”



 “제가 다녀오죠.”



 전추산이 나선다.



 “그게 좋겠어. 현령에게 이걸 전하라.”



 나는 바랑에서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간단히 적어 내렸다. 군사들과 함께 현령이 직접 오라고 썼다. 이 정도 문서는 눈을 감고도 쓸 수 있었다. 황제께서 내린 은제 인장을 날인했다. 완산주 계수관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인장이었다.



 “지밀 승정, 우리 마을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뿐이외다. 인보 스님은 절대 타살이 아니오. 외상이 전혀 없잖소이까.”



 탁연이 나섰다.



 “타살이 아니면?”



 “실족사나 모종의 급살일 수 있다는 얘기요.”



 “듣기 싫소. 당신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오. 남해 경판 도난 사건에서 교묘히 빠져나갔다고 생각하겠지만 내 곧 명백하게 밝혀 낼 것이오. 인보의 사인이 밝혀지고 나면 완산주 계수관을 부를 참이니까. 어디 계수관 앞에서도 그런 궤변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두고 보지.”



 나는 차갑게 쏴 붙였다.



 “오해요.”



 “오해? 이자가 아직도! 나는 그쪽과 나이를 따져 선후배를 가리는 동급의 승려가 아니다. 고려 황제께서 임명한 대장도감 승정이자 감찰관이란 말이다! 비록 눈이 잘 보이지가 않으나 지엄하신 황제의 명에 따라 소임을 다하는 데는 어떤 불편도 없다. 사인을 밝혀 연루된 자들을 엄중히 처벌하리라!”



 나는 들고 있던 은제 인장을 들어 보이며 외쳤다.



 “그렇게 무턱대고 화만 낼 일이 아닌 것이….”



 “무턱대고 화만 낸다니?”



 “듣기 싫어도 잘 들어 보오. 우리 마을은 전쟁 통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곳이오. 모두가 김승 촌장과 한뜻으로 똘똘 뭉쳐 있단 말씀이오. 닥나무를 길러 종이를 만들거나 판자를 켜서 정성스럽게 경판을 새기오. 어떤 사람들은 옻을 채취해서 경판에 칠하기도 하고. 이렇게 경판을 제작하는 일은 우리 마을 사람들의 생업이지요. 아시겠지만 그 정성과 기교는 이 나라 공방 가운데서 최고를 자랑하오. 그런 우리 마을에 멀리 강도 대장도감에서 오신 두 분을 칙사 대접하면 했지 방해할 이유가 없소. 하물며 스님을 죽이다니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씀이오.”



 탁연의 그 말만큼은 이치에 닿는 바가 있었다. 김승 측 사람이 일부러 인보를 죽였다고는 할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 김승이다. 경판에 십자가를 새겨서 올려 보냈기 때문이다.



 “김승을 데려와라! 그쪽 말 들어 보면 마중 나와 기다려야 할 사람이 어딜 가서 여태 안 나타나고 있는가. 나는 김승이라는 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중에 현령이나 계수관에게 붙잡혀 끌려 내려오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온 산을 이 잡듯이 뒤져서라도 어서 데려오라!”



 “꼬박꼬박 기다렸소. 그러다가 어제 아침에 산기도를 가신 거요. 오래 안 걸려요. 곧 올 거요.”



 “곧 온다고? 그대들의 해괴망측한 수작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전 장군! 속히 말을 달려라.”



 “잠깐! 이 스님이 변을 당한 건 애석한 일이오. 사인이 명확히 밝혀질 때까지 모두가 발 벗고 돕도록 하겠소. 검시관이 와서 무엇을 밝혀 낼 수 있겠소? 평화롭던 마을 벌집 만들어 놓고 아무 죄 없는 사람들 족치기밖에 더 하겠소?”



 탁연은 집요하고도 치밀했다.



 “당신은 입을 막고 있는 편이 좋겠소.”



 나는 탁연을 핀잔 주었다. 머쓱해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게 유감이었다.



 “가만 보니 오른손 손가락들이 화상 입은 것처럼 부르터 있구려.”



 그렇게 말한 이는 약초꾼이라는 집주인 영감이었다.



 “전 장군, 확인해 보라.”



 “정말 그렇군요. 입술에도 같은 증상이 보입니다.”



 “독이라도 먹었다는 얘긴가?”



 나는 입을 벌려 혀를 확인하게 했다. 까맣다고 했다. 인보가 입었던 옷가지의 주머니를 뒤지게 했다. 적삼 오른쪽 주머니에서 녹아 들어붙은 엿 뭉치가 나왔다. 독이 든 엿을 먹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다른 주머니에서는 종이첩이 나왔다. 물에 흥건히 젖었는데 기름종이에 싸여 있어서 글씨가 대부분 온전한 간찰이었다. 우선 간찰부터 읽게 했다.



 



 화상 김승 보시게.



 보내준 불상은 잘 받았네. 상아를 가지고 그토록 섬세하고 거룩한 불상을 조각한 그대의 솜씨는 신기에 가까워 과연 천하의 으뜸이라 할 만하네. 호신불로 지니고 있다가 곧 저승에 갈 때 무덤에 넣어 달라 할 참이네.



 거란 침입 때 새긴 고려대장경이 금년 초겨울에 불에 탄 참사는 심히 애석한 일이네. 북송이나 우리 고려 같은 문명국이 아니면 지닐 엄두도 못 낼 보물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됐으니 대낮에도 어두컴컴하여 북두칠성이 보일 지경일세.



 그대가 나를 굴뚝같이 믿고 전해 온 사건의 내막은 못 들은 걸로 하려네. 그 생각만 하면 너무도 창망하여 밥맛을 잃어 버리고 물조차 넘기지 못할 지경이라네.



 내가 악한 때를 만나 일생을 최씨 무인 세력들과 맞서느라 고달팠느니. 산모퉁이 하나 돌면 새로운 절집이 나타나는 세태도 나는 스스럼없이 비판했네. 우리 가문은 차라리 굶주릴지언정 최씨 일가에 문인의 자존심을 판 적이 없고, 부처에게 우리 집안 잘되게 해 달라고 복을 빌어 본 적이 없었네. 무인 세력이나 불교계에 빚진 바가 없다는 얘길세. 늙어 꼬부라지니 저들 편을 든다고 여기지는 마시게.



 칼날 같은 그대 성정, 똑 떨어지는 그대 언행을 내 익히 알기에 밤잠을 설친다네. 요즘 몸이 부쩍 쇠약해졌네. 아무래도 이번 겨울을 못 넘길 것 같으이. 부탁이네. 이번 일만큼은 이 늙은이의 말을 듣게나. 어렵겠지만 처음부터 그대가 잘못 보고 잘못 듣고 잘못 생각한 것이라 여기고 부디 잊으시게. 자칫 젊은 그대의 생목숨이 꺾일까 걱정이네. 자중하시게.



 ……임진(壬辰:1232년) 세밑 단(旦).



 



 아, 백부님!



 나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멍했다. 백부 유승단의 편지였다. 그것도 교활한 경교도 김승에게 보낸 답서였다. 백부는 이 편지를 내고 불과 며칠 있다 세상을 버렸다. 고려 최고의 지성이자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황제를 윽박지르는 집정 최이가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려 했을 때도 단호하게 천도불가론을 폈다.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몽골과 화의를 맺고 외교술로 국난을 극복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목숨을 건 반대였다. 백성이야 어찌 되든 정권 연장이 목적인 집정 최이가 백부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마지못해 강화도로 건너온 백부는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김승과의 편지 왕래는 강화도로 건너온 그해 겨울에 있었다. 어떻게 김승이라는 자가 당대의 문사를 대표했던 내 백부와 교류할 수 있었단 말인가. 백부는 김승을 많이 아낀 나머지 간절히 달래고 있었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승정 어르신, 이제 그만 현령에게 달려가 보겠습니다.”



 전추산이 나를 일깨웠다.



 “잠깐만 기다려 보게.”



 나는 아침에 가온이라는 계집아이가 한 말을 되뇌었다. 급하게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벼를 뽑을 수도 있었다. 나락이 패면 가라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때 뽑으면 아무런 탈이 없다. 김승과 내 백부가 편지로 주고받은 사건의 내막은 대장경에 얽힌 일이었다. 물론 집정 최이와 불교계가 관련돼 있다. 백부는 사건의 내막을 듣고 음식을 못 넘길 만큼 큰 충격을 받으셨다. 사건의 내막은 편지에 나와 있지 않았다. 편지를 낸 백부는 떠나 없고 김승은 이 산골 어딘가에 있다. 김승은 내가 모르는 우리 집안 이야기도 알고 있을 수 있다.



 김승이 보관하고 있었을 편지를 인보가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백부의 편지는 인보의 사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다. 엿은 더 결정적이다. 인보가 언제 어디서 엿을 구했는지, 엿에 든 독은 어떤 독인지를 알면 인보의 사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김종록 소설가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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