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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지투 순풍에 13%대 성장률 … ‘지린성의 지혜’로 뜨다

올해 48세인 쑨정차이(孫政才) 지린(吉林)성 당서기는 중국 정가에서 미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린성 성도(省都) 창춘(長春)으로 가는 길,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다롄(大連) 상공을 지나자 녹색의 물결이 끝없이 이어졌다. 만주평야였다.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저 녹색작물은 도대체 무엇일까. 의문은 창춘 룽자(龍嘉)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금방 풀렸다. 어른 키보다 높게 자란 옥수수였다.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주변 역시 한결같이 옥수수 밭이었다. 옥수수와 쑨 서기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옥수수 연구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은 ‘옥수수 박사(玉米博師)’가 ‘옥수수의 고향(玉米之鄕·지린성의 별칭)’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 미래 지도자 쑨정차이의 ‘대권 수업 현장’을 가다













쑨 서기가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1m80㎝의 거구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에 뚜렷한 윤곽, 빛나는 눈동자…. 산둥(山東) 룽청(榮成) 출신인 그에게 ‘산둥호걸(山東豪傑)’의 인상이 풍겼다. 지난 4일 창춘에서 열린 ‘한·중·일 기자 원탁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이뤄진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듯한 말을 쏟아냈다.



“지린성과 동북아 각국은 산수가 서로 접해 있고(山水相依), 인맥이 서로 닿아 있는(人脈相連) 곳입니다. 당연히 경제가 서로 통해야 합니다.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투먼) 개발 프로젝트는 동북아시아의 공동 발전을 위한 추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농민대출 늘려 농작물 증산에도 성공

쑨 서기는 회견시간의 대부분을 창지투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의 의지와 집념을 가늠케 했다. 중국 정부가 창지투 프로젝트를 승인한 것은 2009년 8월. 그가 지린성 당서기로 임명되기 두 달 전이었다. 그 후 창지투 프로젝트는 쑨 서기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창지투 성공에 정치적 미래를 걸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쑨 서기는 2020년대에 등장할 제6세대 정치지도자 그룹의 선두 그룹에 속한다. 43세(2006년)에 농업부장에 임명돼 역대 최연소 부장(장관) 기록을 세웠다. 46세에는 지린성 당서기로 옮기면서 최연소 성(省) 당서기 기록을 갈아치웠다.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은 동갑내기인 후춘화(胡春華·48) 네이멍구(內蒙古) 당서기다. 중국 정가에서는 그들이 당 총서기와 국무원 총리 자리를 놓고 물밑에서 경쟁 중이라고 분석한다.



중국 정치에 밝은 소식통들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지지를 받고 있는 후춘화가 일단 앞서 있다고 관측한다. 바로 ‘격대지정(隔代指定)’의 전통 때문이다. 개혁·개방으로 중국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덩샤오핑(鄧小平)이 차차세대 지도자로 후진타오를 지정했고, 장쩌민(江澤民)은 시진핑(習近平)을 선택했다. 그 전통에 따른다면 후진타오는 시진핑 시대의 다음을 이을 차차기 지도자로 후춘화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후춘화는 ‘리틀 후진타오’로 불릴 만큼 후진타오의 족적을 밟아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도 말한다. 쑨정차이가 최근 지린성 경영에 뚜렷한 실적을 거두면서 베이징 정가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어서다. 바로 지린성의 눈부신 경제 발전과 창지투 프로젝트의 성공 덕택이다.



“우리는 항구를 빌려 바다로 나갈 것이다(借港出海). 이를 위해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시작해 창춘·지린·투먼(圖門), 북한 나진항에 이르는 고속도로가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몽골에서 창춘을 거쳐 남북한, 일본 등으로 연결되는 동북아 물류망이 구축되는 것이다.”



쑨 서기는 동북아 지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북한은 지난해 말 ‘나진항 50년 사용’ 협약을 맺었다. 그 협약의 주체는 지린성이었다. 창지투 프로젝트 덕택에 지린성 경제는 요즘 활황을 구가한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3.7%에 달했다. 중국 평균 성장률(10.3%)보다 더 높다. 경제 후진 지역이던 동북3성의 기류를 바꾼 것이다.



쑨 서기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도 두텁다. 쑨 서기는 취임하자마자 현지 농민들에 대한 은행 대출 문턱을 낮췄다. 담보가 없어 돈을 빌리지 못하는 농민을 위해 성 정부가 담보를 제공했고, 많은 영농자금이 풀렸다. 그 덕에 지린성의 지난해 농작물 생산증가량은 전국 증가분의 25%나 차지했다. 이런 성공담이 중앙 언론매체를 통해 ‘지린성의 지혜(吉林智慧)’로 소개된 뒤 당 안팎에서 그를 보는 눈들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쑨 서기는 학자 출신 관료이지만 저돌적인 업무스타일로 유명하다. 성 정부 관계자들은 “한번 정하면 우레같이 맹렬하고 바람처럼 신속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말했다. ‘실무형 관료’ 이미지다. 그래서 쑨 서기가 장래에 당 총서기보다 총리직에 맞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시진핑 시대가 10여 년간 이어진 뒤 2020년대에 누가 최고권력을 차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쑨 서기가 차차기 지도자의 핵심 그룹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칭린·원자바오가 정치적 후견인

寶劍鋒自磨礪出(보검의 칼날은 스스로 날카롭게 연마해 만들어지고)

梅花香自苦寒來(매화 향기는 스스로 추운 겨울을 견디어 발한다)

쑨 서기의 고향인 룽청시 우룽쭈이(五龍嘴)촌 주민들이 그를 설명할 때 읊는 시구다. 오로지 노력과 실력만으로 출세했다는 뜻이다. 그는 가난했지만 명석했다. 학창 시절엔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베이징 농림과학원 재학 시에는 춘절 연휴 때 고향 집에 돌아가지 않고 추운 도서관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업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는 농림과학원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당시 중국 옥수수 분야 석학이었던 천궈핑(陳國平) 교수를 지도교수로 모신 것이다. 천 교수는 베이징시의 1무(畝·약 200평)당 옥수수 생산량을 229㎏에서 482㎏으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쑨 서기는 그의 지도 아래 옥수수의 밀생(密生)을 연구한 끝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그는 농림과학원 연구원 생활을 마감하고 베이징시 순이(順義)현 부현장으로 발탁된다. 베이징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 후 고속승진의 길을 걸었다. 베이징시의 당 비서장으로 승진하는 데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반 공무원이라면 20년 걸려도 오르기 어려운 자리다. 그리고 4년 후 농업부장으로 임명됐다.



실력만으로 이룬 성과라기에는 너무 빠르다. 누군가의 각별한 도움이 있었다는 얘기다. 베이징의 실세인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이 발탁한 것으로 알려져 한때 ‘자칭린 사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더 가깝다. 농업부장 천거도, 지린성 당서기로 보낸 것도 원 총리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은 농업 전문가이고 실무형 관료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가 창지투 프로젝트를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것도 원 총리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은 창춘을 중심으로 하는 창지투 프로젝트를 통해 몽골∼동북3성∼남북한∼일본 등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발전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변수다. 그 핵심에 ‘잠룡’인 쑨 서기가 서 있다. 그의 정치적 행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한우덕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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