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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코치 ‘빵점’ 제자

강남의 한 서점에서 고교 시절 은사를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난 토요일 오후 나는 서점에서 책 몇 권을 사서 나가려다 출입구에서 선생을 보았다. 선생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이었는데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문사철에 두루 밝고 특히 불교 쪽으로 공부가 깊은 분이었다. 부산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만났던 선생과 학생이 30년 만에 서울의 서점에서 만났으니 선생과 나는 인연이 깊고 무거운 셈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학창 시절 나는 선생에게 자주 야단을 맞았다. 그만큼 내가 아둔하고 게을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눈치마저 없었다. 선생이 웃으면서 하는 말씀이 꾸중인 줄도 모르고 좋아한다든지, 모처럼 한 칭찬을 나무라는 말씀으로 듣고 주눅이 든다든지 했다. 다트머스대 김용 총장의 말처럼 눈치란 일종의 공감 능력인데 나는 그게 너무 모자랐다.

담임이 프랑스어 선생이면 프랑스어를 잘하지는 못해도 낙제는 면해야 할 텐데 나는 완전히 바닥이었다. 선생도 내 실력을 익히 아는지라 수업시간에 나를 지명해 질문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날은 왜 그러셨는지 선생이 내 번호를 불렀다. 내가 불려 일어났을 때 나를 바라보시던 선생의 난감한 얼굴을 보고 나는 알았다. 선생의 실수였던 것이다. 표정을 가다듬은 선생은 프랑스어로 질문했다.

“지금 몇 시인가?”
마침 내 짝이 착하고 오지랖 넓은 녀석이었다. 프랑스어로 무어라고 살짝 일러주는 게 아닌가. 나는 나쁘고 죄의식 없는 놈이라 짝이 말한 것을 그대로 흉내 내 답했다. 그때 선생의 얼굴이 마치 소년의 그것처럼 홍조를 띠었고, 그 붉은빛 위로 놀람과 기쁨의 물결이 번졌다. 제자의 성장에 선생은 흐뭇함을 참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상득아, 네가 이제 프랑스어로 시간을 말할 수 있구나. 그래, 어떻게 알았니?”
나는 나쁜 학생이지만 더 이상 선생을 속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실은 눈치가 없었던 것이다. 짝이 알려준 것이라고 자백하자 선생은 처음 나를 지명했을 때보다 더 난감한 얼굴이 됐다. 선생의 눈빛은 당혹과 연민과 분노로 엉켰다.

“지금 당장 책가방 싸서 나가라. 너 같은 놈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
눈치 없는 나는 고지식하게 정말 책과 노트를 주섬주섬 챙겨 가방을 들고 일어나 선생에게 인사했다. 그때도 인사성 하나는 밝았다. 돌아서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운 선생이 그날 얼마나 화를 냈는지, 또 내가 선생의 매에 교육적으로 얼마나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때리다 지친 선생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간신히 추스르며 하신 말씀이 지금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프다.

“가란다고 정말 가느냐? 이 나쁜 놈!”
내가 인사를 드리자 선생은 마치 30년 전 그날 내 번호를 불렀을 때처럼 난감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 부처님처럼 인자하게 웃으신다. 선생은 매주 신문에서 칼럼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며 격려한다. 프랑스어로 시간도 모르던 제자가 이제는 마감을 지켜 글을 쓴다며. 헤어지는 인사를 올리고도 내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 있자 선생은 “가거라, 바쁠 텐데”라며 손짓을 한다.
눈치 없는 제자는 기어이 이렇게 여쭌다. “선생님, 정말 가도 될까요?”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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