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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따라 상경한 이농 1.5세, 그들에겐 주택가 골목이 고향

어느 틈엔가 대중가요에서 고향이 자취를 감췄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시골의 고향이 없기 때문이다. 대도시 아파트에서 태어나 2년 정도에 한 번씩 이사 다니며 살아온 요즘 젊은이들에게 고향을 묻는 것은 참으로 뜬금없는 일 아닌가. 하긴 나도 청소년 시절에 ‘내 고향은 위생병원 산부인과야’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고 다녔다. 중랑교 다리 밑(서울의 위생병원은 중랑교 근처인 휘경동에 있다)에서 주워 왔다고 놀리시던 아버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된 나이부터였다.

이영미의 7080 노래방 <28> 고향을 잃은 세대

7080세대인 지금의 중년들은 시골의 옛 고향을 기억하고 노래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인 동시에 고향 없는 자들의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이 태어나고 성장하던 1960~70년대에 산업화와 도시화는 급격히 이루어졌다. 급기야 90년대에 들어서서는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국민 대부분이 아파트 같은 공용주택에서 사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90년대 이후의 대중가요에서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인기를 얻은 것은 월북시인 정지용 해금 붐을 타고 나온 ‘향수’와 팍팍한 낯선 도시에서의 외로움을 노래한 조용필의 ‘꿈’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모두 90년대 초반의 노래였고 젊은 취향에서는 다소 벗어난 노래였다.
80년대 초의 ‘제2의 고향’은 고향이 사라지는 시대의 한 순간이 묘하게 포착된 노래다.

“사방을 몇 바퀴 아무리 돌아봐도 / 보이는 건 싸늘한 콘크리트 빌딩 숲 / 정둘 곳 찾아봐도 하나도 없지만 /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 거리를 하루 종일 아무리 걸어 봐도 / 보이는 건 한없는 밀리는 자동차 /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는 띵하지만 / 그래도 나에겐 제2의 고향 / 밤이면 빌딩 위에 걸린 초생달 / 쓸쓸한 내 마음을 달래주누나 / 우우우 우우우 / 너의 모습처럼”(윤수일<사진>의 ‘제2의 고향’, 1981, 윤수일 작사·작곡)

서울이라 짐작되는 이곳은 ‘고향’이 아니라 ‘제2의 고향’이다. 콘크리트 벽과 자동차만 있는 곳인데도, 이 서울이 좋단다. 이로부터 10년 전쯤에는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남진의 ‘님과 함께’),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 형제 이 몸을 기다려’(나훈아의 ‘머나먼 고향’)라고 노래하여 ‘대박 인기’를 얻었다. 한쪽 다리를 떨며 신나게 노래를 했던 70년대 초 남진과 마이크 대를 옆으로 잡고 노래하던 80년대 초의 윤수일을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리며, 이 노래의 가사가 보여준 엄청난 차이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70년대 초의 고향 노래들에 공감했던 사람들이 스스로 가난을 못 이겨 이농한 청년들이었다면, 80년대 ‘제2의 고향’에 환호했던 대중들은 60~70년대 이농 대열에 끼어있던 부모형제와 함께 어릴 적에 서울에 올라와 80년대에야 비로소 청년기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농 1.5세쯤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에게 고향은 그다지 그리운 곳이 아니다.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도시에서 학교 다니면서 적응을 끝냈다. 서울살이의 고생? 그건 막일하는 부모와 공장 다니던 큰형과 누나들이 한 것이고, 어린 것들은 허름한 산동네에서도 싸구려 핫도그 손에 쥐고 만화방 드나들면서 신나게 뛰어놀면서 자랐다.

그러니 재미없는 시골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천만에! 이농한 어른들은 마음으로는 고향이 그리워도 먹고살 대책이 없으니 돌아갈 수 없었지만, 이농 1.5세 아이들은 돌아갈 마음이 아예 없었다. 서울이 고향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밭을 지나 /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너의 아파트’가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나는 이 윤수일의 ‘아파트’에서 잠실 5단지 아파트가 선명히 떠오른다.) 초가지붕 위의 박꽃을 노래하지 않고 아파트를 노래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무슨 시골 고향이 그립겠는가.

하지만 서울내기들에게도 향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향(鄕)’도 없는데 ‘향수(鄕愁)’라니 참 웃기는 말 같지만, 과거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 (하략)”(동물원의 ‘혜화동’, 1989, 김창기 작사·작곡)

이들의 고향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중산층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이들은 이제 거기 살지 않는다. 아마 강남 반포나 대치동쯤에 살지 않았을까 싶다. 강북의 단독주택에서 살던 중산층들은 70년대 중·후반을 계기로 너도나도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혜화동에서 함께 놀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가끔 안부나 묻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멀리 떠나간’단다. 군대 가거나 유학을 떠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자신들의 옛 고향 혜화동의 골목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오면서 이들은 향수에 잠겼을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서울 강북 주택가가 바로 고향이다. 나 역시 그렇다. 가회동 한옥들 앞에 물끄러미 서 있거나, 보문동의 골목길 등을 걸어가 보면 고향에 온 것 같은 아늑함을 느낀다. 이미 그 집을 떠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꿈에 등장하는 집은 늘 어릴 적 살던 그 한옥이다. 2000년대 들어 서울 북촌 한옥 붐이 일기 시작하고, 강북 투어 프로그램이 생기고, 서울을 탐구하는 전시와 강연들이 기획되는 것은, 바로 강북에서 자란 서울내기들이 중년에 이르러 자신의 고향을 찾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영미씨는 대중예술평론가다.『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와 『광화문 연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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