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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100m 절벽 검푸른 대서양 향해 티샷

아일랜드 남쪽 휴양지인 킨세일 인근의 다이아몬드 모양 반도에 자리잡은 올드 헤드 링크스 골프장. 아찔한 절벽 위에서 샷을 날리는 기분은 환상적이다. 반도 끝쪽에 등대가 있다. [멀티비츠이미지/게티이미지]
“세상은 모두 오른쪽에 있습니다.”
아일랜드 남쪽 바닷가에 있는 올드 헤드 골프 링크스. 2번 홀 티잉 그라운드로 걸어갈 때 톰 크루즈처럼 멋지게 생긴 캐디는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 골프의 낙원을 걷다 <상> 천상의 코스 올드 헤드 링크스


무슨 뜻일까 잠깐 생각을 하다 티잉 그라운드에 오르니 이해가 갔다. 오른쪽은 초록색 페어웨이, 왼쪽은 까마득한 절벽이었다. 10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니 바다는 검푸름과 네이비 블루, 에메랄드 빛과 새하얀 물보라가 뒤섞인 캔버스였다. 메릴린치에 다닌다는 미국인 스티브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페블비치 등 경치가 좋다는 골프장에 안 가본 데가 없는데 여기는 정말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가 “뷰티풀”이라고 할 때 뷰의 음절은 매우 길∼었다. 캐디는 “1915년 여기에서 영국의 여객선 루스타니아호가 독일군 U보트의 어뢰를 맞고 침몰해 1198명이 목숨을 잃었다”면서 “파란색이 아니라 초록색을 겨냥하라”고 했다.

캐디가 “세상은 모두 오른쪽에 있다” 또는 “왼쪽에 있다”고 말한 홀은 9개였다. 골프장에서 가장 멋진 홀을 시그니처(signature)홀이라고 부른다. 다른 명문 골프장의 시그니처홀이 야구장 관중석의 외야석이라면 올드 헤드의 바닷가 홀들은 VIP석이다. 올드 헤드 링크스는 홀들을 되도록 절벽에 찰싹 달라붙게 만들어 놨다. 9개 홀 모두가 그랬고 바다와 맞붙지 않은 나머지 9개 홀의 경치도 다른 골프장의 시그니처홀 못지않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대회가 열리지 못하는데, 갤러리의 안전 때문이란다. 올드 헤드는 아일랜드의 남쪽 휴양지이자 식도락의 수도라고 불리는 킨세일 인근의 다이아몬드 형태 반도에 있다. 가파른 해식애로 둘러싸인 제주 성산 일출봉 위에 골프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골프장에서 청색 공포증이 있다. 조그만 연못을 봐도 벌벌 떨고, 물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드 헤드에선 한두 홀을 지나자 물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4면이 바다인 이곳에선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물이고, 그래서 매우 편안한 친구가 됐다. 계곡을 넘겨야 하는 아슬아슬한 곳도 있지만 코스는 페어웨이가 넓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게 설계됐다.

파3인 7번 홀(158야드)에서 티샷을 핀 1m에 붙여 버디를 잡아냈다. 또 다른 동반자인 미국인 머리는 “너, 기사에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맞바람과 엄청난 파도의 울음을 뚫는 강하고 낮게 깔리는 펀치 샷으로 딱딱한 그린에 공을 세워 버디를 잡았다’라고 쓸 거지”라며 웃었다. 골프 지식이 매우 깊은 변호사인 머리는 뉴욕 타임스를 본다고 한다. 세계 최고 정론지인 뉴욕 타임스도 약간의 과장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7번 홀에 섰을 때 폭풍 같지는 않았어도 꽤 강한 맞바람이 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왼쪽으로 바다를 낀 파 5 12번 홀(537야드)이 가장 멋졌다. 티잉 그라운드는 다른 곳보다 약간 높고 다이아몬드의 꼭짓점이어서 하늘과 바다와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앞 조가 페어웨이를 떠나기를 기다리면서 스티브는 대서양을 향해 티샷을 했다. 그러곤 “내 인생의 가장 멋진 샷”이라고 흐뭇해 했다. 이 홀에서는 모두 공을 잘 쳤다. 동반자 3명 모두 세 번 만에 그린에 공을 올렸다. 그것도 3~4m 안에 붙였다. 그러나 모두 3퍼트를 했다. 페어웨이에선 괜찮았는데 그린에서는 바람이 정말 강했기 때문이다. 캐디는 “이곳은 반도의 좁은 입구여서 바람의 길목”이라고 말했다. 다음 홀 역시 바람의 길목이었다. 파3(203야드)였는데 맞바람이 있었지만 자신감이 있었기에 우드로 티샷을 하려고 했다. 캐디는 “필 미켈슨이 이 홀에서 드라이버를 잡으라는 말을 거부하고 3번 우드로 티샷을 하다가 네 번이나 해저드에 들어가 11타를 쳤다”고 했다. 얼른 드라이버로 바꿨다.

놀랍게도 올드 헤드는 세계 100대 골프장은커녕, 아일랜드 10대 골프장에도 들지 못한다. 1997년 개장해 역사가 짧고, 중요한 대회를 열지도 않았다. 신이 만든 천연 모래언덕에 인간이 최소한의 작업을 해 만든 링크스가 훌륭한 골프장인데 올드 헤드는 많은 공사를 벌였다는 것. 그러니까 화장을 하고 뽀샵을 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골프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골프장이 생긴 후 고래 구경, 바닷새 구경을 하러 오던 지역 주민의 출입을 막았다는 거다.

골프가 특권층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 오기 전 기자도 조금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천상에 지은 것 같은 이 골프장에 서니 죄의식은 눈 녹듯 사라졌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시조가 구구절절 느껴졌다. 골퍼에게 진짜 천국, 신선놀음을 할 곳이 하나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올드 헤드처럼 절경에 지은 골프장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나오기도 어려워 보인다. 유럽연합에서는 해안의 땅들을 자연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기자는 진지한 골퍼의 버킷리스트 1번은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 2번은 올드 헤드라고 생각했다. 순서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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