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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양적완화해야’ vs ‘돈 풀어봐야 소용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안토니오 보르헤스 유럽담당 이사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차총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시장의 공포가 과도하다”며 국제 공조 강화를 주장했다. [워싱턴 UPI=연합뉴스]
중앙은행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는 비상 상황이 이어지자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 침체를 막겠다고 발벗고 나섰다. 지난주 전 세계 증권시장은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트위스트 작전(오퍼레이션 트위스트)’에도 급락했다.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장과 재무장관이 공동대응을 선언해도 별무신통이었다. 급기야 유럽중앙은행(ECB)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언급이 나오고서야 소폭 반등에 성공했다. 전문가들 가운데는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이 없다. 미국 연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일사불란한 국제공조를 통해 세계경제의 문제점을 일거에 해소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금융시장 살릴 묘책 없나

ECB의 집행위원인 뤼크 코엔 벨기에중앙은행 총재는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음 달 초에도 실망스러운 경제지표가 나온다면 ECB 통화정책회의에서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와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등은 다음 달 6일 열리는 ECB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유로존의 기준금리는 1.5%로 사실상 제로금리인 미국·일본이나 0.5%인 영국보다 높다. 아울러 에발트 노보트니 ECB 집행위원과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 겸 ECB 집행위원은 “다음 달 ECB 회의에서 12개월 장기대출을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의 중앙은행장들이 적극적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들은 사흘 일정으로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막을 올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였다.

중앙은행 총재들의 잇따른 언급 덕분에 지난주 내내 이어졌던 증시 하락이 멈췄다. 이날도 3% 안팎의 하락세를 보이던 유럽 증시가 막판 소폭 상승으로 돌아섰다. 이어 열린 미국 증시도 조금 올랐다. 하지만 지난주 다우가 6.4% 내려 주간단위로는 2008년 10월 이후 최악의 성적을 냈다. 버냉키 미국 FRB 의장이 새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장단기 국채 교환(오퍼레이션 트위스트)’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21일 “내년 6월 말까지 4000억 달러어치의 만기 3년 이하 국채를 매각하고, 같은 규모의 만기 6~30년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장기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추면 기업의 투자가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이 방법을 쓴 것은 케네디 정부 때인 1961년 이후 50년 만에 처음이다.

주식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이미 사상 최저 수준인 2% 미만을 기록하고 있어 금리를 내린다고 경기가 살아날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2.5% 하락했다. 코스피지수가 2.9%, 홍콩 항셍지수가 4.9%,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지수가 8.9% 하락하는 등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급락했고,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증시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다음 날 열린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들의 공동선언문도 큰 효과를 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IMF 총회 참석에 앞서 워싱턴에 모인 이들은 예정에 없던 공동선언문을 통해 “금융 안정과 경기 진작을 위해 강력한 행동을 취해 왔으며 앞으로도 중앙은행은 언제든지 유동성을 공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유로 국가들은 다음 달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전까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 운영의 유연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핵심인 은행 자본 확충과 자금 조달 방안을 비롯해 구체적인 그리스 사태 해법이나 유로존 국채 매입 방법은 빠졌다. 공조의 중요성만 강조하고 정작 알맹이는 빠진 꼴이다. 코스피가 100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1700선 아래로 밀리는 등 전 세계 금융시장이 공포에 떨었다.

다행히 유럽 중앙은행 총재들의 적극적인 구두 개입으로 하락의 도미노는 멈췄다. 그렇다고 뾰족한 해법이 나온 것은 아니다. 유럽이 단기적으로 재정위기에서 벗어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버냉키 의장의 부양책에 계속 기대는 이유다. 하지만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에 대해 “버냉키에게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은 없었다”(미 자산운용사 노던 트러스트의 애셔 뱅걸로)는 평이 나온다. 남은 방안은 ▶시중은행이 연준에 맡긴 초과자금에 대한 이자율(0.25%) 인하 ▶3차 양적완화(QE3) 등이다. 일부에선 “실업률 7.5%, 인플레이션 3% 같은 구체적 목표를 정해 놓고 달성할 때까지 무한정 유동성을 공급하자”(존 윌리엄스 샌프란시스코 총재)는 의견도 나온다. 실현 가능성이나 기대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내부 사정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준(Fed)에는 FRB와 FOMC가 있다. 집행기구로는 지역별로 12개의 연방은행이 있다. FRB 정원은 버냉키 의장을 비롯해 7명이다. 현재 두 자리가 비어 있다. FOMC는 이사 전원과 연방은행 총재 가운데 5명이 투표권을 갖는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10명 가운데 찰스 플로서 필라델피아 총재, 리처드 피셔 댈러스 총재, 나라야나 코철라코타 미니애폴리스 총재 등 세 명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에 반대표를 던졌다. “경기 부양에는 효과가 없고 물가만 올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매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역할을 강조하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다.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을 중시한다. 양적완화는 물론 2년간 제로금리를 유지한다는 정책에도 반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17명의 연준 멤버들 가운데 5명이 매파다. 미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도 업고 있다. 버냉키의 별명은 ‘헬리콥터 벤’이다. “금리를 낮춰도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라면 헬리콥터로 뿌려서라도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을 인용했다가 이 별명을 얻었다. 이런 버냉키라도 실업률이 낮아지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비둘기’의 길을 고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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