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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절단, 장 파열 … 꽉 찬 중환자실, 중증외상센터 작게 지으면 소용 없어”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23일 병원 중환자실에서 회진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본지 9월 23일자 1면.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기적같이 살린 아주대병원 이국종(42·외상외과) 교수는 23일 5~6시간을 수술실에서 보냈다. 이날 새벽 1시부터 세 시간가량 운전 중 앞차를 들이받아 장(臟)이 잘리고 파열된 고모(49)씨를 수술했다. 절단된 장을 봉합하고 피를 멎게 하는 화급을 다투는 수술이었다. 고씨는 작은 병원을 전전하다 아주대병원으로 실려와 수술이 힘들어졌다.

 이날 오후에는 계단에서 굴러 소장(小腸)이 파열된 환자를 수술했다. 이 환자 역시 작은 병원에서 이틀가량 있다 염증이 심해진 상태였다. 이 교수는 틈틈이 중환자실을 방문해 환자 상태를 돌봤다.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진 환자들도 챙겼다. 이날 그는 잠을 한숨도 못잤다.

 취재팀은 이날 이 교수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수술 중” “진료 중”이라는 답변이 왔다. 오후 수술이 끝나고 어렵게 연결돼 인터뷰를 했다. 이 교수는 먼저 취재진을 아주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3층 응급중환자실로 이끌었다. 20개 베드가 꽉 차 있었다.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이 교수 팀의 손을 거치면서 새 생명을 얻은 환자들이다. 추석 직후 송아지 출산을 돕다 소 뒷발에 차여 췌장·비장(脾臟)이 파열됐던 이모(54·경기도 화성시)씨는 이젠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이씨는 “이 교수 덕분에 살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자들을 일일이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씨의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예전에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 엄지손가락만 남았다. 이 교수는 “고씨는 가족이 없다. 다른 병원을 전전하는 바람에 더 힘들게 수술을 받았다”며 “우리 병원에 오는 외상환자는 다 이런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건설 일용직 근로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환자는 사고 현장에서 바로 오는 게 가장 중요한데, 사회적 약자들은 도와줄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수술 타이밍을 놓친다”며 “이들을 위해서라도 중증외상센터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의 아이콘(상징)이다. 10년여간 아주대병원에서 거의 혼자 이 분야를 개척했다. 그런 중증센터가 눈앞에 다가왔다. 정부가 이달 말이나 다음 주 초에 구체적인 설립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게다가 23일부터 응급헬기 두 대가 운항을 시작했다. 이 교수의 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꿈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리 볼 수도 있다. 응급헬기를 들여와 중증외상진료 시스템을 짜기 시작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핵심은 중증외상센터다. 이 센터를 떠받치는 중요한 장치가 응급헬기다. 헬기가 반경 40㎞를 커버하려면 좀 더 필요하다.”

 -생각대로 되고 있나.

 “그런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정부가 센터 한 곳당 건립비용(80억원)을 작게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정도로는 필요한 하드웨어(장비나 병실 등)를 깔 수 없다. 센터가 제 기능을 하려면 적정 규모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환자를 많이 받고 전문의 수련을 할 수 있다. 지금보다 두 배로 커져야 한다. 또 응급헬기보다 외상센터가 먼저 가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 헬기와 외상센터가 따로 놀 것 같아 걱정이다.”

 -외상센터는 몇 개 정도가 적당한가.

 “정부가 15곳을 검토 중인 걸로 안다. 작은 센터를 많이 만들면 나눠먹기로 흐를 우려가 있다. 작은 데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대형센터 몇 개를 만들어 시행착오를 보완해서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 관계자나 의사들이 일주일 여행하듯 미국·일본의 트라우마(외상)센터 다녀와서 그걸 모델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럴 것 같으면 외국에서 ‘의료계의 히딩크’를 데려와야 한다. 그래야 지연·학연을 따지지 않고 외상센터를 설계할 수 있다. 제대로, 독하게 목숨 걸고 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그런 각오가 없으면 신청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교수는 “첫발을 잘못 디디면 ‘예산낭비를 했다’는 비난을 받을 테고 그러면 10년 안에 다시는 중증외상센터 얘기를 꺼내지도 못할 것”이라며 “출범식만 요란하게 하고 그 이후는 아무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한국식 행정 관행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는 “나는 노가다(건설현장 막일꾼)다”라며 "너무 힘들어 5년 정도 해외로 갔으면 좋겠다”고 넋두리했다.

수원=신성식 선임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이국종 교수=1969년 서울생으로 95년 아주대 의대를 1회(88학번)로 졸업한 외상외과 전문의. 2000년 외과 전문의 자격을 딴 뒤 간·담도·췌장 환자를 치료했으나 사고 등으로 안타깝게 숨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외상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2002년부터 아주대병원에 재직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외상외과와 영국 로열런던병원 트라우마센터에서 연수했으며 그동안 중증 외상환자 1300여 명을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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