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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클릭 6년’ 이용훈 대법원 … 양승태가 되돌려 놓나

‘사법권력’이 6년 만에 교체된다. 이용훈(70·고등고시 15회) 대법원장이 23일 퇴임식을 하는 데 이어 양승태(63·사법시험 12회) 차기 대법원장이 오는 27일 15대 대법원장에 공식 취임하면서다. 이에 따라 사법부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되고 있다.



6년 만의 사법권력 이동
가고 오는 대법원장 삶과 성향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대법원장과 양 차기 대법원장은 5년5개월간 대법원 생활을 함께 했다. 2005년 2월 양 대법원장이 대법관에 취임했고, 7개월 후인 같은 해 9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두 사람은 판결 성향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대법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나와 양 신임 대법원장이 함께 한 판결이 60건 정도인데 그중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견이 같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경력도 닮은꼴이다. 모두 법원 내 요직인 법원행정처 차장과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걸어온 길은 달랐다. 두 대법원장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4차 사법파동’이다. 양 차기 대법원장은 2003년 8월 소장판사들이 “서열 중심의 대법관 제청 관행을 깨야 한다”며 반기를 들었을 때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양 차기 대법원장은 당시 “(사법행정 책임자로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달 뒤 대전의 특허법원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주말마다 백두대간 종주 등을 하면서 마음을 달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당시 대법관 추천에 반발해 사표를 냈던 ‘4차 사법파동의 주역’ 박시환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2005년 11월 대법관으로 제청한 이가 이 대법원장이었다. 박 대법관을 사이에 놓고 이 대법원장과 양 차기 대법원장이 미묘한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이 대법원장은 취임 후 박 대법관이 회장을 맡았던 진보성향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중용하고 법원의 과거사 청산 작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편향 판결’ 논란이 일면서 여권에서는 “이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좌 클릭(click)’시켰기 때문”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이제 관심은 양승태 차기 대법원장이 향후 대법원 진용을 어떻게 짤지로 쏠리고 있다. 당장 오는 11월 퇴임하는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의 후임을 누구로 제청할 것인지가 ‘양승태 사법부’의 앞날을 보여줄 것으로 관측된다. 두 대법관은 서열과 나이 등 기존 잣대를 뛰어넘은 ‘파격’ 인사를 통해 발탁됐었다. 김영란·이홍훈 전 대법관,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진보 성향의 소수의견을 내면서 ‘독수리 5형제’로 불리기도 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했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와 달리 안정 속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며 “공판중심주의 등을 정착시키면서 내년 처음으로 배출되는 로스쿨 출신 법조인의 수급문제 등을 무리 없이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조강수·구희령 기자





◆사법파동=법관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파문을 말한다. 1971년 검찰이 시국사건에서 잇따라 무죄를 선고한 판사들에게 뇌물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전국 판사 150여 명이 사표를 내며 반발한 것이 1차 사법파동이다. 2차 사법파동 때는 판사 400여 명이 노태우 정부의 김용철 대법원장 유임 결정에 맞섰고, 3차 사법파동 때는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이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다. 4차 사법파동 때는 서열과 기수 위주의 대법관 제청에 반대해 판사 140여 명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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