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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08) 운명적인 만남(하)





엄앵란이 내 턱시도를 조각내버렸다



1972년 개봉한 신성일·윤정희 주연의 영화 ‘별이 빛나는 밤에’. 신성일은 이 영화가 나온 시점을 전후로 재미 유학생 김영애와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





김영애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1970년 여름 부산서 나와 시간을 보낸 후 서울로 돌아온 김영애는 반도호텔(현 롯데호텔)에 머물렀다. 나는 남들 모르게 데이트를 했다. 하지만 추적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숙소를 명동 로얄호텔로, 워커힐 빌라로 옮겼다.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 다녔던 그녀는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갔다.



 71년 미국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왔다. 한국일보에서 LA 재미교포 연례 행사에 출연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영애가 직접 구입한 왕복 비행기 티켓을 보내주었다. 주최측 티켓을 받으면 행사에 얽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첫 미국 방문이었다. LA 컨벤션홀에서 열린 행사 첫날 저녁, 무대인사와 함께 ‘맨발의 청춘’ 주제곡을 부른 후 행방을 감춰버렸다. 우리는 LA 산타모니카 해변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호텔 엘리베이터 바깥쪽이 통유리라 태평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환상적 풍경이었다.



 이후 재미동포가 상대적으로 적은 뉴욕으로 건너갔다. 헬리콥터로 ‘자유의 여신상’을 한 바퀴 돌며 뉴욕 시가지를 내려다보았다. 라디오시티홀과 오드리 햅번 주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첫 장면을 촬영한 57번가와 5번 애비뉴가 만나는 보석상 ‘티파니’도 구경했다. 뉴욕 관광을 마치고 LA로 돌아왔다. 이후 라스베이거스·팜스프링을 돌아보고 귀국했다. 미국에서 일주일 이상 체류했다.



 72년의 일로 기억한다. 그녀의 방학 때만 되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나는 그 해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미스코리아대회 심사위원이 됐다. 그날 따라 그녀가 심사 후 꼭 호텔에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파티가 있을 것 같아 어렵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생일이었다. 외면할 수 없었다.



 난 빨리 심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한국일보 장기영 사주의 부인이 내 바로 뒷자리에, 문희와 엄앵란 등이 그 옆에 포진하고 있었다. 여인의 장막이었다. 심사위원 바로 앞에 마련된 무대는 눈보다 훨씬 높았다. 한창 갈등하고 있을 때, 마침 그 부인이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경아 아빠, 행사 끝나고 우리와 함께 저녁 먹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내가 김영애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다. 뒤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무대로 뛰어올라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경아 아버지!”라고 부르는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영애는 샴페인과 촛불을 준비하고 나를 맞았다. 나는 조촐한 생일축하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했다. 아쉬워하는 그녀와 실랑이하는 과정에서 턱시도 뒤 오른쪽 등판이 뜯어졌다. 그녀가 꿰매주었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오전 1시 무렵이었다. 현관에서 날 기다리던 엄앵란이 소리쳤다.



 “당신 먼저 (2층 침실로) 올라가요!”



 화가 잔뜩 난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턱시도 등쪽을 들키지 않으려고 엉거주춤 게걸음 했지만 엄앵란 눈을 속일 순 없었다.



 “여보, 옷 벗어요!”



 엄앵란이 지어준 새 턱시도였다. 아내는 턱시도를 조각 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2층으로 올라가버렸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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