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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소장의 한국 자동차 비사(秘史) ⑦ 민간인 자가용 오너 1호




1915년쯤 의암 손병희 선생이 타고다니던 자동차. 귀족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처음 자가용을 이용했다.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는 1915년을 넘어서자 부호·지주·선교사·사업가 등 민간인도 타기 시작했다. 광업을 하던 박기효, 대지주 배석환, 서울 갑부 김종성과 백명권이 미국제 포드와 쉐보레를 탔다. 초대 미국 전권 공사였던 앨런과 성이 같은 금광업자인 미국인 사업가 앨런은 미국제 맥스웰을, 연세대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는 오버랜드를, 배재학당(배재고) 창설자인 아펜젤러는 포드를 탔다. 그러면 국내에서 순수한 민간인으로 자가용을 탄 첫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놈의 냄새 나는 연기 방귀 뀌고, 빵빵거리며 돌아다니는 자동차를 대궐의 임금이나 왕자가 아니면 저 망할 왜놈 총독이나 일본 병정 대장 놈만 타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세.”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벼슬도 못 하고 돈도 없는 우리 같은 천민 중에 타고 다니는 작자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내가 놀라는 것일세. 코 큰 선교사들도 타고, 돈푼 만지는 부자 놈들도 인력거를 팽개치고 자동차를 들여다 타고 다니며 거들먹거리고 있다네.”

 “예끼 이사람, 별걸 가지고 핏대를 세우네. 그래 코 큰 선교사들이야 자기네 나라서 만든 차니까 돈도 있겠다 타고 다니는 게 어련한 일이겠지만, 그 비싼 자동차를 타고 거들먹거리는 이는 누군가.”

 “서울 갑부 김종성 아닌가. 그 양반이 얼마 전 미국에서 자동차를 들여왔다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천도교주 손병희 선생이 벌써 10년 전 일본 도쿄에서 자동차를 타고다녔다는 소문이 있구먼.”

 “뭐여, 그것은. 또 무슨 홍두깨 같은 소린가. 아 이제 막 자동차가 시작하는 판이 아닌가. 10년 전이라면 우리 임금님도 자동차가 없을 때 아닌가.”

 이처럼 비싼 자동차를 누구보다 먼저 구입해 자가용으로 탔던 최초의 민간인은 제3대 천도교 교주이며 독립운동가였던 의암 손병희 선생이었다. 의암은 정치 부패, 적서 차별, 반상 제도 등 봉건적인 악습을 배척하고자 노력했던 인물이다. 부의 축적과 교육, 그리고 항일운동에 일생을 바쳐 나중에 3·1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애국자다.

 35세 때인 1897년부터 민족 종교인 동학을 이끌어 왔다. 그런데 동학혁명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런데 1905년쯤 도쿄에서 민간인 처음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때 일본에도 겨우 10여 대의 자동차밖에 없었다고 한다.

 망명을 끝내고 귀국한 직후인 1915년쯤 다시 일본에 갈 일이 있었다. 마침 ‘공진회’라는 국제 산업 박람회가 도쿄에서 열렸는데 여기에 출품된 미국제 캐딜락을 사와 자가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암은 자신의 자동차가 고종의 차보다 고급인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어찌 임금의 자동차보다 좋은 것을 타리오” 하고는 차를 바꿨다고 한다. 의암이 타던 캐딜락은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두꺼운 유리벽이 있었다. 그래서 의암의 말을 운전사가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의암은 운전사에게 행선지를 지시할 때는 앞뒤로 설치된 소리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시 운전사가 귀해 중국인 운전사를 고용했다. 의암의 캐딜락이 서울 가회동 자택을 드나들 때마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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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