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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 넓히는 서예, 고대 수메르 문자도 품다




전북서예비엔날레 2009년 개막 공연 ‘필가묵무(筆歌墨舞)’. 무대미술무대의상도 변용된 서예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다음 달 1일 시작되는 올해 행사에는 전 세계 30개국 작가들이 참여한다.


소전(素筌) 손재형(1903∼81). 한국 현대 서단의 기초를 닦은 거목이다. 그는 1945년 광복 직후 조선서화동연회(朝鮮書畵同硏會)를 조직, 서예(書藝)라는 용어를 창안했다. 서예가 문자예술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서도(書道), 중국의 서법(書法)과 대비된다.

 하지만 소전은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의 서예에 연연하지 않았다. 책표지·현판 등 실생활에도 다양한 글을 남겼다. 그의 글씨는 월간 ‘샘터’ ‘현대문학’ 표지로도 오늘날 달마다 새롭게 대중과 만난다.




하석 박원규가 쓴 수메르족의 쐐기문자.

 그의 제자 원곡(原谷) 김기승(1909∼2000)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성경전서’와 ‘찬송가’ 책표지 글씨로도 잘 알려진 원곡은 스승이 개발한 소전체를 토대로 역대 서예 고전을 재해석해 원곡체를 완성했다.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극대화로 힘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글자체는 폰트로도 제작됐다. ‘새문안교회’ ‘도산안창호기념관’ 등 직접 쓴 현판뿐 아니라 원곡체 폰트를 이용한 서울 서초동 ‘서울 삼겹살’ ‘흑염소집’ 등 동네 간판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서예의 죽음’ 운운은 언감생심이다. 서예, 즉 문자예술이란 당대 현실의 문자 문화와 정면 충돌해 대안을 낼 때 살아있다고 믿었다. 또한 이를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서예는 예술인가 기능인가, 한문 서예가 먼저냐 한자 서예가 먼저냐 따위의 작은 싸움에 대가들은 연연하지 않았다.

 예컨대 하석(何石) 박원규(64)는 인류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수메르족의 쐐기문자(기원전 3000년 무렵)를, 심은(沁隱) 전정우(62)는 소아시아 마그네시아에서 출토된 비석에 새겨져 있던 페니키아 알파벳을 서예로 되살렸다. 시공을 넘나든 이들의 서예 작품은 한자 문화권 밖의 옛 문자 또한 상형(象形)이라는 한가지로 통함을 보여준다.

 ◆서예, 뻗어나가다=그러니 서예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다음 달 1∼30일 전북 전주 일원에서 열리는 제8회 전북서예비엔날레(총감독 김병기)에는 세계 30개국 1849명의 작품이 나온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역동(力動)’이다. 여기서 서예는 미술의 한 부분으로 날로 작아지고 있는 장르가 아니다. 이곳의 서예는 크고, 다채롭게 뻗어나간다. 무대의상과 무대미술에도 널리 쓰인다. 서예가 784명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아 쓸 수 있는 모든 조합인 1만1172자를 나눠 쓴 초대형 병풍도 출품된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 조순 전 경제부총리,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가수 장사익 등 명사 30여 명의 서예 작품도 전시된다. 무료. 063-241-4507∼8.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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