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106) 운명적인 만남(상)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1971)의 주연 남궁원(왼쪽)과 윤일봉.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신성일은 절친한 선배 신영균·윤일봉·남궁원을 모두 출연시켰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70년 여름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의 이야기다.

 당시 멋쟁이들은 볼링장에 모였다. 60년대 미8군·워커힐 볼링장을 필두로 남산·오성·신스·한강볼링장 등이 잇따라 개장했다. 나중에 남산체육관으로 바뀐 남산볼링장은 레인 바닥이 훌륭했다. 명동1가 라데팡스빌딩 2층에 있던 신스볼링장은 선배 신영균이 운영했다. 건물 1층은 증권사였고, 지하는 선배 최무룡이 밤무대에 출연한 클럽이었다.

 나와 신영균·윤일봉·남궁원 사인방은 종종 신스볼링장에서 어울렸다. 그 중 내가 가장 잘 쳤다. 에버리지가 180을 넘었다. 영화배우 중에선 후배 신일룡이 최고였다.

 어느 날 늦게 갔더니 세 분이 볼링장 스낵코너에 모여있었다. 신영균이 날 보더니 “저기 잘 치는 사람 있다”며 눈짓을 했다. 한 여인이 저쪽 레인에서 볼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서로 인사를 했다. 그 여인은 날 살피더니 “절 아시겠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난 우물쭈물 했다. 여인은 “절 닮은 분을 생각하고 계시죠. 김경오씨 아시죠?”라고 물었다.

 김경오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파일럿이다. 미모가 뛰어났고, 세계여류비행사모임 회장도 맡는 등 국제적 활동도 했다. 유명인사 모임마다 인사를 해서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내 셋째 형이 파일럿이어서 각별한 느낌이 있었다. 그 여인이 김경오의 여동생이라니. 이름이 김영애라고 했다. 그날 신영균을 빼고 남자 셋이 김영애와 어울려 볼링을 했다. 게임이 끝나자 신영균이 “밥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김영애가 자기 소개를 했다. 미국 USC(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며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호수까지 공개했다. 외국 생활을 하는 여인의 자유스러움이 있었다. 유학 가기 전에 동아연극상 주연상을 받기도 하고, 동아방송 아나운서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첫눈에 반했다. 그녀가 볼링 치는 모습이 예뻤다. 많은 여인이 엄앵란을 의식해 내게 가까이오지 않았지만 김영애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는 며칠간 저녁마다 신스볼링장에 모여 볼링을 치고 저녁도 함께했다.

 하루는 부산에서 촬영을 하게 됐다. 3박 4일 일정으로 그날 저녁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신스볼링장에 들렸다. 다른 형들은 스낵코너에서 이야기를 했고, 나와 김영애만 볼링을 쳤다. 그런데 윤일봉의 눈빛이 김영애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내가 부산에 내려가면 그 여인을 윤일봉에게 빼앗길 것 같았다.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스 김.”

 “네.”

 “오늘 마지막 비행기로 부산 내려가야 해.”

 나는 내 이야기만 했다.

 “내일 오후 비행기 타고 부산에 왔으면 해. 극동호텔에 김영애 이름으로 예약해 놓을 테니.”

 김영애는 놀라는 눈치였다.

 “네?”

 나는 반문할 틈도 주지 않고 돌아섰다. 세 명에게 다가가 “형, 나 부산 가야 해”하고 인사한 후 급하게 빠져나갔다. 그녀는 과연 올까? 난 내 운세를 시험하고 있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