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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의 세상읽기] MB와 오바마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비교할 것을 비교하라고요. 예, 맞습니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는 격일 겁니다. 우리의 이명박(MB)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당선시켜준 지지자들을 갈수록 실망시키고 있는 점 말입니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렇더라도 지금 MB와 오바마 지지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실망감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오바마 진영 스스로도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대표 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에는 재선에 도전하는 것이 헌법적 의무사항은 아니라며 출마 포기를 권유하는 칼럼까지 실렸습니다.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미국처럼 대통령 중임이 가능하다 해도 MB가 재선을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요술 방망이가 없는 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의 ‘MB 이탈’이 집권당으로서는 위험 수위를 넘어선 듯합니다. 우리에서 뛰쳐나온 집토끼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다 광장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생긴 현상이 ‘안철수 신드롬’ 아닐까요.

 지난달 뉴욕 타임스에 실린 ‘오바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란 제목의 기고문이 미국인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에머리대학 드루 웨스턴(심리학) 교수가 쓴 이 글은 오바마를 지지했던 진보 진영의 실망감을 대변합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와 경제적 불평등에 직면한 미국을 오바마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했지만 보수와 진보 양측 모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초당주의 강박증’에 빠져 모순된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의료보험, 금융제도, 세제, 교육, 에너지, 이민 등 모든 정책 분야에서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반쪽짜리 개혁 정책을 쏟아냄으로써 진보와 보수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바마가 ‘타협을 위한 타협’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시도합니다.

 그가 제시한 첫째 가설은 재선 성공을 위해 오바마가 일부러 중도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중도파 유권자들은 중도적 정치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인을 좋아한다”고 비수 같은 일격을 날립니다. 경험 부족과 성격적 결함 때문에 대통령직을 수행할 깜냥이 못 되는 인물일 수 있다는 것이 둘째 가설입니다. 오바마의 매혹적인 연설에 속아 유권자들이 그의 결함에 눈을 감았다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부패한 정치시스템 탓이라는 가설도 제시합니다. 정치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전화기를 들면서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오바마는 ‘변화’를 선거구호로 내세웠습니다. 캐치프레이즈는 “예스, 위 캔(Yes, we can)”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건건 뒷다리를 잡는 공화당과 타협을 이뤄내기 위해 질질 끌려가며 양보를 일삼았습니다. 의보개혁법은 누더기가 됐고, 부시 행정부의 감세 기조를 철회하지도 못했습니다. 더블딥의 공포 속에 실업률은 9%대에서 요지부동이고, 미국인 6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일 정도로 경제난은 심화되고 있습니다.

 MB에 기대를 걸고 1번을 찍었던 유권자들 중에는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속은 기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판알을 튕겨 정치적으로 이문이다 싶으면 이것도 찔러보고, 저것도 찔러보는 식이다 보니 정책에 방향성이 없다는 겁니다. 친기업이 갑자기 친서민으로 바뀌고, 어제는 공정사회를 외치다 오늘은 공생발전을 떠드는 등 정책 기조가 수시로 달라지고 있으니 도무지 MB의 정체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갈팡질팡 행보를 실용주의라고 우긴다면 실용주의에 대한 모독입니다. 장사꾼의 천박한 포퓰리즘일 뿐입니다.

 ‘경제 대통령’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계경제 탓을 하고 싶고, 그래도 이만하면 선방(善防)했다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물가고와 취업난 속에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 앞에서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747’을 앞세운 ‘MB노믹스’는 이륙도 못한 채 활주로를 맴돌다 감세 유예를 끝으로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일관성을 갖고 추진한 게 있다면 청계천의 확대판인 4대강 사업과 대북정책입니다. 4대강의 성공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만 대북정책은 MB를 지지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결정타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동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면 누구나 앓는 남북 정상회담 증후군 때문입니다.

 정치 지도자 한 명이 세상을 바꿀 순 없습니다. 그런 기대를 품는 것 자체가 환상입니다. 그래도 지도자에게 방향성은 중요합니다. 타협에 대한 강박증이 오바마의 문제라면 MB의 문제는 철학의 부재일 것입니다. 철학의 빈곤으로 정체성을 의심 받는 것만큼 정치 지도자에게 치명적인 결함은 없습니다. 그런 결함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놓고 세상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입니다. 우리는 지도자를 꿈꾸는 정치인에게 수시로 묻고 확인해야 합니다. “너는 누구냐?”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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