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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정주영의 후예들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안철수 바람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꼭 20년 전, 정 회장은 대권도전에 나섰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정치 바깥 제3 세력이 정치에 도전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정주영은 안철수를 정치사적 맥락 속에서 보여주는 반사경이다.

 정 회장이 정치에 뛰어든 시점은 절묘했다. 정치적으로 힘의 이양기였다. 5·16 이후 30년 만에 군부 권력이 민간으로 옮겨가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민간 정치권의 역량은 취약했다. 양김(김영삼·김대중)은 민주화를 이끈 정치 지도자였지만 일부에선 구정치의 상징으로 비판했다. 소위 ‘양김 청산론’이다. 정치권의 이합집산과 밀약·폭로 등으로 불신이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의 등장은 충격적이었다. 민주화 이후 자리잡지 못한 민주주의, 취약한 민간 정치권력에 경제권력이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1991년 말 이후 굵직한 정치뉴스는 정 회장이 주도했다. “한국정치가 포니 수준만도 못하다”는 정치현실 비판(당시 현대차는 그랜저 신모델을 선보였다). 이어 “열심히 훑어보고 있지만 나라의 장래를 맡길 만한 지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지도자 부재론. 그리고 “경제인이 경험을 살려 정치발전에 공헌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는 대안론까지. 마침내 92년 초 ‘정치 부재 속에서 국민경제를 구원하기 위해’ 국민당을 창당했다. 집권당(민자당)의 재집권을 막는 길이 구국(救國)이라 외쳤다.

 여기까지. 안철수는 정주영의 데자뷰 같다. 물론 안 교수는 정 회장과 크게 다르다. 정 회장이 아날로그 시대 경제권력이라면, 안 교수는 디지털 시대 정보기술(IT) 권력이다. 정 회장이 현대그룹의 갑옷을 둘렀다면, 안 교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무기를 휘두른다. 개인 성격도 정반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정치행위는 매우 유사하다. 안 교수 역시 성공한 기업인으로 ‘무능한 정치인’에게 황당해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정치불신 세태’를 개탄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정치(집권 한나라당)에 대한 응징’을 언급하고, “수영하는 사람에겐 수심 2m나 태평양이나 똑같다”는 말로 자신의 능력을 확신했다.

 국민당 창당 이후 정 회장의 본격적인 정치행보는 안 교수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이다. 창당 직후 정 회장은 승승장구했다. 한 달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31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기존 정당에서 공천 탈락한 3군 후보들을 이삭줍기하듯 모아 치른 결과로는 놀라울 정도였다.

 대선 레이스가 이어졌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열린 ‘여의도 100만 집회’였다. 폭설이 쏟아진 겨울날, 여의도 광장이 인파로 메워졌다. 단상에 오른 정 회장은 이미 대권을 확신한 듯 목소리가 흔들렸다. 당시 현대계열 조사기관 등에선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물론 허상이었다. 여의도에 모인 인파는 현대그룹과 계열사 등에서 동원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여론조사는 맞지 않았다. 부동표는 양김 쪽으로 갈라졌다. 개표 결과 정 회장의 득표는 16.3%. 그해 봄 이삭줍기한 국회의원 후보들이 모아온 17.4%보다 적었다. 수천억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진 대권 프로젝트는 물거품이었다.

 이후 정 회장의 시련은 이어졌다. 선거법 위반과 횡령 등 혐의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하자 몰래 일본으로 떠나려다 공항에서 출국금지당했다.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국민당 의원들을 여당으로 보냈다. 그러고도 2년간 법정에 불려다닌 끝에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비난했던 양김이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 불편한 여생을 마감했다.

 정 회장의 모험은 개인과 기업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을 끼쳤다. 대선 패배 직후 칩거하다 나타난 정 회장의 멍한 눈빛은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정 회장이 보기에 무능하고 부패한, 그래서 바꿔야 하고, 또 바꿀 수 있는 듯 보였던 정치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정주영의 후예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안철수는 가장 주목할 만한 도전자다. 20년 전 정치권력의 전환기에 정주영이란 경제권력이 유력한 대안으로 보였던 것처럼 안철수라는 IT권력은 정보혁명의 시대적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당정치를 건너뛰는 정치권력의 탄생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한 ‘정주영의 후예’다. 이 대통령은 정주영의 국민당 참여요구를 뿌리치고 여당으로 달려가 15년간 담금질을 견뎌냈다.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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