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탐사 기획] 거마 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불법다단계 합숙소에서 대학생 15명(사진 왼쪽)이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압수수색에 나선 송파경찰서 수사팀이 옆방에서 장부 등을 보고 있다. [변선구 기자]


남녀 대학생이 합숙하면서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구에만 5000여 명의 남녀 대학생이 집단 수용돼 있다. 석촌·서초·수서 등 지역까지 포함하면 경찰 추산 1만 명이 넘는다. 올 추석에도 이들은 집에 가지 못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 장사를 하는 불법 다단계 업체의 세뇌와 감시 탓이다. 업체들은 허황된 대박의 꿈을 미끼로 대학생을 유혹했다.

 8월 24일 오후 6시, 본지 취재팀은 마천동 다세대 주택가 골목의 15평짜리 지하 합숙소를 급습한 수사팀을 동행 취재했다. 20대 초반의 남녀 대학생 14명이 합숙하는 현장이다. 주방 싱크대 통 안에는 50개 정도의 칫솔이 촘촘히 꽂혀 있다. 칫솔을 공동사용하는 구조다. 학생들이 업체로부터 구입한 건강음료·비누세트 등이 한쪽에 쌓여 있다. 위생상태는 형편없다. 더러운 빨래, 불결한 그릇, 음식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변기, 세면대에도 오물이 끼어 있다. 경찰이 압수한 장부에 따르면 15명이 식료품비로 지출한 금액은 한 달 20여 만원에 불과했다. 라면으로 때우거나 밀가루를 포대째 사두고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깃밥이나 반찬도 정해진 양 이상은 먹지 못한다. 이들은 이를 ‘칼밥’이라고 부른다.

 합숙소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대출을 받거나 집에서 돈을 끌어와 실적이 올라야 직급이 올라간다. 자기 밑으로 회원을 데려와도 마찬가지다. 중간 관리자 격인 방장은 합숙소의 최고 권력자다. 방장 출신인 유모(29)씨는 “내가 왕이고 내 말은 곧 법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내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 방장은 독방을 쓰고 나머지는 한 방에 모여 잔다. 하위 직급자들이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담당한다. 식사도 내가 숟가락을 들어야 시작된다”고 증언했다.

 부산이 고향인 대학생 김성철(24)씨는 올 추석을 마천동의 다른 합숙소에서 보냈다. 동료 합숙생 10여 명도 마찬가지다. 방장이 이탈을 막았기 때문이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방장에게 ‘명절 시나리오’를 만들게 했다. 내용은 이렇다. 학생들이 집에 전화한다. 이때 방장이나 상위 직급자들은 통화 내용을 밀착 감시한다.

학생들은 시나리오에 따라 ▶출장 ▶행사 ▶여행 ▶연구 ▶자원봉사 등 다양한 핑계를 댄다. 또 다른 방장 출신 박모씨는 "가족과 친인척을 만나면 마인드(세뇌)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불법 다단계 업체의 유혹에 빠져드는 주된 이유는 가난이다. 마천 합숙소에서 1년6개월을 생활하다 빠져나온 대학생 하모(23)씨는 “학생 대다수가 가난한 지방대 출신”이라며 “졸업 후 취업을 못했거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까지 경찰이 조사를 마친 피해자 115명 가운데 85%가 20대 초반의 지방대 출신이다. 양극화 현상이 빚은 비극이다.

 취업 못 하고, 등록금 없는 젊은 영혼의 절망을 파고 드는 것은 동문이나 고향 친구다. 따라서 경계심은 애초부터 없다. 친구는 서울 강남권에 있는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꼬인다. 성공을 위해 고생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서울로 진출할 수 있다는 말에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교육과 설득,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자신에게도 길이 열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합숙소 생활이 시작되면 외부와의 소통은 차단되고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방장은 휴대전화부터 압수한다. 회원 유치 때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가족과 통화할 때도 시키는 얘기만 할 수 있다. 통화 내용도 함께 듣는다.

 신문이나 TV도 맘대로 볼 수 없다. 외출도 방장이나 상위 직급자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외출 시에는 감시자가 따라붙는다. 오전 4시 기상 후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장에서 세뇌교육이 실시된다. 합숙소로 돌아오면 다시 1대1 면담이 이어진다. 딴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들만의 폐쇄된 작은 세상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씨는 “처한 상황에 따라 맞춤형 대화와 설득이 제공되고 고민을 들어준다”며 “하루하루 지날수록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잘 대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송파경찰서 다단계 특별수사팀 황동길 경감은 “불법 다단계 피해자 가운데 자살하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매년 수십 명에 달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탐사기획부문 = 이승녕·고성표·박민제·이서준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다단계 판매=상품 소비자가 하위 판매원이 돼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 판매원 단계가 3단계 이상이다. 하위 판매원들 수익 중 일부는 상위 판매원들에게 연쇄적으로 지급된다. 다단계 판매회사는 한국 암웨이 등 72곳으로, 방문판매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불법 다단계 업체와는 구별된다.

▶중소기업 임원 22세 여대생 딸, 합숙 1년만에 결국…
▶거짓말·협박·강매 매뉴얼 담긴 노하우 노트 보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